[인터뷰]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홍성남 신부

"교회는 바리사이콤플렉스가 있어요. 심리학을 공부하고 알게 된 것은 교회가 사람 마음에 대해서 무지했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아니라 사람에게 집중했고 그 마음을 깊이 파악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인 우리는 율법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바리사이에 가까워요. 우리가 예수가 아닌 바리사이를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성남 신부(서울대교구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 소장)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심리학으로 바라본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말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심리학을 배우고 사목에 적용하면서 홍 신부는 이제야 비로소 예수가 사람들을 만난 방식, 그리고 지금 사목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다시 바라보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던진 질문은 “교회가 신자들에게 행복을 주고, 또 행복에 대해서 전하고 가르치는가?”라는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일례로 사순시기에 죄를 강조하는 모습, 또 고해소에서 신자들의 고백을 듣고 판단하고 보속을 주는 것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았다. 줄기차게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다”고 가르치고 그 때마다 “죄인”으로 불리는 이들이 다음 날 부활 대축일을 맞는다고 해서 기쁘고 행복할 수 있겠냐는 그는 “가벼운 우울증까지 앓게 하는 죄의식은 우리 자신과 하느님 사이의 관계를 더 멀어지고 부담스럽게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하나는 교회가 복음 해석을 너무 편중되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중점을 두면서, 정작 예수가 공생활 내내 설파했던 “행복”이라는 핵심은 뒤로 밀렸다. 산상수훈에서 말했던 진복팔단은 결국 “행복하라”는 당부이자 요청이다.

홍성남 신부. ©️정현진 기자
홍성남 신부. ©️정현진 기자

또 다른 교회의 명령체계, 권력화와 관료화의 결과

“신자들이 죄를 짓지 않고 살려는 모습이 타인의 시선에서는 바르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삶이 오래 지속되면 여러 신경증, 심하면 정신병도 생깁니다. 실제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 가운데 조현병을 앓는 경우가 많고, 그런 상태를 잘 모르거나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은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심리상담을 하면서 많은 이를 만난 홍 신부는 신앙이 오히려 신자들을 행복하지 않게 만들고, 심지어 아프게 만드는 상황은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실까요”라고 묻는 그는 “강론 때마다 하느님의 뜻을 이야기하는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라는 것은, 내 의지는 중요하지 않고 하느님의 의지만 중요하게 된다”면서, “그렇게 되면 복음의 글들은 우리에게 행복이 아니라 당위이며, 의무가 된다”고 말했다.

또 “그런데 교회는 하느님의 뜻을 떠나 또 하나의 명령체계를 만든다. 그것은 종교가 권력화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며, 종교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그는 교회의 관료화가 그 이유라고 지적했다.

“미친놈, 이단, 마귀의 자식” 심리학을 배우면서 느끼고 알게 된 것들을 이야기하고 기존 교회의 틀을 벗어버리자는 홍 신부를 향한 비난의 말들이다. 어느 신부는 홍 신부의 책을 ‘금서’라며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저항이 심했어요. 나도 복음을 이야기하는데 가장 먼저 들은 말은 복음적이 아니라는 항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 안에 있는 바리사이콤플렉스를 건드린 것이 아닐까요. 올바로, 복음대로 살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불쾌감을 준 것이죠. 내가 보기에 가톨릭교회가 죄를 짓지 않으려는 것은 좋지만 내적인 상태는 바리사이와 같은 유아적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모습, 처지, 속도로 살아가고 있지만 복음을 보는 시각은 편중되고 편협하다고 지적했다. 복음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봐야 할 때가 됐다는 그는 “기도를 얼마나 하느냐, 했느냐 하지 않느냐 또는 죄의 여부를 묻는 것에서 각자 다른 상처와 콤플렉스를 지니고 사는 이들을 치유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복음의 메시지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봅니다. 제자단에게 해당되는 하드 트레이닝에 대한 내용, 그리고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을 위한 내용이죠. 그런데 지금 교회는 그 두 부분을 따로 식별하지 못하고 뒤섞어서 전달합니다. 몸이 약한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해야 할 운동량, 방식이 다른 것처럼 신앙 생활의 처방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처방은 하나고,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은 스스로 ‘죄인’이라며 넘어지고 마는 것이죠.”

홍성남 신부는 이런 맥락에서 교회는 거대한 치유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목 대상의 상황과 상태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처방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목자들의 양성과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이에 대해 제안을 했지만 여전히 심리나 상담 교육은 뒤 순위로 밀려나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홍 신부는 “사제가 되는 순간 사목 현장에서 하는 일은 주로 상담이다. 신학교 시절에 배운 신학, 구약학과 신약학, 철학 등은 너무 고급학문이기 때문에 구체적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다”면서, “나 역시 신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상담공부를 하면서였다”고 말했다.

그는 예수님이 모두가 광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공동체에서 내친 사람을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 주었기 때문이고, 그 이전에 그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알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됐을까? 왜 저렇게 힘들어 하고 고통받고 있을까?”라고 그의 삶에 대해 질문하며 관심을 갖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한 일을 따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이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넘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다수 속에 존재하는 하나가 아니라 그 개별 존재를 일대일로 존중받고 돌봄받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개신교는 그런 시스템을 상당히 구축했지만 가톨릭교회는 그 대응에 무척 더디다는 것이 홍 신부의 판단이다.

교회가 치유센터가 되고, 바리사이 방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홍성남 신부는 “관료화된 시스템, 그리고 그 아래서 단정론적으로 이야기하는 태도”라고 짚었다.

홍 신부는 “본당, 교구청 나아가 교황청까지도 상당히 관료화됐다. 본당 사목을 하다 보면, 본당 재정과 운영에 대한 걱정과 업무가 너무 많아서 ‘사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다. 신자들의 삶이 아니라 성당에 나오느냐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고 본당 업무 외에는 피곤한 일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신자들도 신부가 본당업무 외의 문제에 마음을 쓰고 활동하면 본당을 소홀히 한다고 지적하죠. 상호작용인 거에요. 또 교회는 어떤 현상이나 이슈, 문제에 대해 답을 내리는 존재가 아니라 들어 주는 존재여야 합니다. 하지만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이 없으니, 우선 단정하고 규정하고 답을 내려 버리죠. 하지만 그것이 복음적일까요?”

홍성남 신부는 이런 부분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보다 복음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 변화의 단초는 마음 공부에 있다고 믿는다. 행위의 결과를 단죄하고, 교리를 어기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벽을 쌓기 보다는 모든 일의 과정, 신자 여부를 떠난 모든 이들의 삶의 과정에 교회의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만약 잘못한 이, 죄를 저지른 이가 있다면, “왜, 어느 시점부터 이런 일이 시작된 것일까?”를 묻고 교회의 책임을 통감하는 것,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과 마음이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홍성남 신부. ©️정현진 기자
홍성남 신부. ©️정현진 기자

정의로 포장된 적개심 경계해야

“어떤 사람을 대할 때, 그를 잘 모르면서 낙인을 찍고, 미워하거나 적개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그런 마음을 “정의”라고 포장하기 쉽습니다. 그런 적개심이 상당히 무서운 것인데, 나와 같은 생각이면 옳고, 그렇지 않으면 악이 되는거죠. 사람에 대해서 어떤 고정관념으로 쉽고 빠르게 판단하는 이유는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정보를 읽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피곤하기 때문이죠. 어떤 집단주의 의식에 빠지고, 편파적인 행동, 사고하는 이들은 다른 생각을 듣지 않고 토론하지도 않습니다. 배제하고 처단할 뿐이에요. 가장 대표적인 예가 히틀러인데, 의식수준이 아주 낮은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또 효율성을 따지기 시작하면 판단이 빨라지죠.”

홍성남 신부는 쉬운 판단, 배제와 단죄는 낮은 의식수준 그리고 사람이 아니라 일의 효율이 우선일 때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는 효율을 위한 공동체가 아니므로 아주 느리게 가더라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깊이 고민할 수 있고, 그렇게 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경영자 마인드를 가지면 생각과 판단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논리에 빠지는 것이다. 사제들이 한가하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많이 모여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하며 사고의 틀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사목을 하면서 이런저런 간접 경험을 한 것을 두고 ‘알고 있다’, ‘안다’고 말하는 사제들이 있는데, 사실 안다는 것은 무언가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무지하다는 것, 내가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지의 지’ 그것이 앎이죠.”

홍 신부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하고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지 않는다면서, “우리의 몸에 대해서 다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듯, 마음도 마찬가지다. 몸도 마음도 일부 지식으로 알 수 없는 것인데, 다 알고 있다는 것은 오만함”이라고 지적했다.

또, 교회가 ‘세속’이라는 말을 쓰면서 성과 속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하는 것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속에서 살아간다. 그런데 성과 속을 분리하고 ‘저것을 세속’이라고 하면 스스로 성스럽다는 것이 아닌가”라며, “그런 선민의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신부는 가톨릭교회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최고의 치유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미사, 고해성사, 그리고 성모 마리아의 모성성 등.... 특히 고해성사의 치유력은 정신과 의사들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 운영자들이 이런 자원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홍 신부는 “고해성사를 할 때, 사제는 치유자의 입장이 아니라 재판관이 되고 보속은 죄에 대한 형량이 된다”며, “이런 모습이 상당기간 지속되어 왔지만 이제 신앙은 의무가 아니라, 신자들의 삶에 정말 필요한 것이 되도록 설명해 줘야 할 때다. 이 부분을 이해시켜 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맥락에서 고 이태석 신부가 남긴 유산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내전 상황의 남수단에서 양쪽을 모두 치료해 주고, 감정이 메마른 소년병들의 감성을 되살리고, 나환자들의 손을 잡고 치료한 모습은 바로 영혼으로 영혼을 만나는 모습”이었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특히 각 개인의 영혼을 바라보는 것, 이쪽과 저쪽을 구별하지 않고 치유하는 것, 교회 안의 사람과 밖의 사람을 구분하고 경계짓지 않는 것을 통해 교회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신부는 “교세를 확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교회가 자기 존재감,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기 존재 이유를 진정성 있게 추구하고 살아갈 때, 비로소 교회를 따르고 인정하는 이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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