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장기풍)

“기도는 의식이 아니라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는 호흡”

교종, 6월9일 수요 일반 교리교육 ‘일과 기도의 상호관계’ 설명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9일 바티칸 성 다마수스 정원에서 진행한 수요 일반교리교육에서 지난해 5월부터 1년 이상 계속된 기도에 대한 주제 마지막으로 ‘인내의 기도’와 ‘지속적 기도’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교종은 인내와 지속적 기도를 설명하기 위해 성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함께 1853년과 61년 사이에 쓰인 러시아 순례자의 금욕 텍스트인 영적 여정을 인용했다. 가르침 내용.

기도는 ‘매일의 근면함’, ‘일상의 많은 의무와 약속’ 등 모든 삶의 행동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모순되지 않습니다. 성 바오로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말한 것처럼 ‘끓임 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5,16-17참조)하지만 일에 몰두하여 더 이상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기억할 시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면 너무 비인간적입니다. 우리의 삶은 여러 순간에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어떻게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19세기 러시아 순례자의 '마음의 기도'를 여러 번 반복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믿음으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들었습니까? 같이 해 볼까요? “하느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죄인인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는 간단하지만 매우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호흡의 리듬에 조금씩 적응하면 종일 계속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잠자는 동안에도 호흡이 멈추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생명의 숨결입니다. 또한 기도는 우리 마음에 타오르는 성스러운 불입니다. 고대 사원에 보관된 성스러운 불이 방해 없이 계속 타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도 그 어떤 것도 끌 수 없는 지속적으로 타오르는 성스러운 불이 있어야 합니다. 4세기부터 5세기 초까지 살았던 주교이며 의사인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말은 기도의 불변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시장이나 혼자 걷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열렬하게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쇼핑이나 근무 중이거나 요리하는 동안에도, 상점이든 어디든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는 여전히 우리 삶에 멜로디를 들려주는 일종의 성가입니다. 이러한 원칙을 실행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일상의 의무에 사로 잡혀 하느님을 생각하기 힘들 때, 하느님은 창조의 모든 면을 돌보시면서도 우리 각자를 개인적으로 기억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항상 하느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일과 기도는 상호보완적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숨'이며, '살아 있는 배경'입니다. 일에 몰두하여 더 이상 기도할 시간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수도자들은 일과 기도 사이 '내적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너무 추상적인 기도는 현실과의 접촉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삶의 구체성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는 기도는 영성주의, 더 나쁜 것은 형식주의가 됩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다볼산에서 제자들에게 영광스러운 변모를 보여 주신 후 그 황홀경의 순간을 연장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의 황홀한 경험이 그들의 믿음의 빛과 힘으로 마음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매일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있는 데 헌신하는 시간은 신앙을 되살려 삶의 구체성에 도움을 주고, 신앙은 중단 없는 기도를 키워 줍니다. 그러므로 신앙과 삶과 기도 사이의 순환성 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불이 계속 켜져 있는 것입니다.

 

“가족 사랑의 경험은 교회생활을 위한 영원한 힘의 원천”

프란치스코 교종, '사랑의 기쁨' 반포 5주년 웹비나 영상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 반포 5주년을 맞아 바티칸 평신도 가정 및 생활위원회가 주최한 웹비나(역자 주 : 인터넷상 회의) 포럼 참가자들에게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복음화 사명을 위한 성직자와 평신도 부부와 가족들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6월9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웹비나에는 세계 60여 개 주교회의와 30개 이상의 국제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에 ‘우리는 '사랑의 기쁨'과 함께 어디에 서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종의 사도적 권고의 적용을 위한 전략’을 주제로 토의를 진행하고 있다. 메시지 내용.

이번 웹비나 포럼은 제가 지난해 12월27일 삼종기도 메시지에서 발표한 ‘사랑의 기쁨’ 가족의 해에 맞춰 바티칸과 각국의 주교회의와 운동 및 가족연합 간의 필수적인 대화의 순간을 대표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교회와 사제, 평신도들이 함께 모여 가정의 구체적인 필요사항을 듣고 교회의 선포를 갱신하는 데 필요한 과정을 수행하는 서로에 도움이 되는 유익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모임은 새로운 복음화의 관점에서 가족에 대한 목회적 돌봄의 스타일과 목표에 대한 교회의 유익한 인식과 가족에 대한 교회의 분별력을 자극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적 권고 ‘사랑의 기쁨’은 결혼과 가족에 대한 총체적 성찰의 결실이며, 따라서 실행과 선교적 회심을 위한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번 포럼은 지역교회에서 실행되어야 할 실천사항과 연계되어 ‘협력, 책임분담, 분별력 및 가족과 가까워지려는 의지’를 요구합니다.

특히 가족의 삶과 삶의 친밀한 친교를 악화시키는 전염병으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 교회는 가족의 말을 사랑으로 적극 경청하고 그들을 목회적 돌봄의 대상으로 참여시키라는 교회의 초대를 강하게 받습니다. 가족과 젊은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우리는 가족들 자신의 도움, 삶과 친교에 대한 구체적 경험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제들과 함께 가족들의 동반자가 필요하며, 다른 가족들과 함께 걷고, 약한 사람들을 돕고, 어려움 속에서도 그리스도께서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움과 인내와 희망을 주실 수 있도록 결혼성사에 임재하셨다고 발표해야 합니다. 세례받은 모든 사람이 '복음화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사람들의 실제 문제와는 관련이 없는 이론적 메시지와 복음화는 사목 엘리트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으로 제쳐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결혼의 성사는 사제서품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을 세우는 역할을 하며, 부부들에게 교회의 특별한 임무에 대한 공동책임을 부여합니다.

따라서 가족은 그리스도의 성사적 임재로 배우자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작용하는 '가정교회'이며, 가족사랑의 경험은 교회생활을 위한 영원한 힘의 원천입니다. 결혼성사 덕분에 모든 가족이 교회에 좋은 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선교에 대한 공동책임은 부부와 서품받은 사제와 주교가 가정교회를 돌보는 데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성령에 의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구원의 선포가 종종 준비가 되어 있지만 부름받지 않는 부부들에게 실현될 수 있습니다. 가정은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상호 보완성에서 결합하여 가족의 조화로운 하모니를 구성합니다. 따라서 성서와 결혼의 성사는 가족으로서 교회를 건설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입니다. 더 나아가 ‘사랑의 기쁨’ 안에 표시된 사목적 우선순위 중에서 각 지역교회의 구체적인 필요에 가장 잘 부합하는 우선순위를 확인하고 창의력으로 그들의 선교적 열성을 추구하기 위해 '사랑의 기쁨'의 권고를 새롭게 살펴보도록 해야 합니다.

저의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의 프로그램적 가치와 ‘사랑의 기쁨’은 가족 목회를 돌보는 구체적인 목회 프로그램의 결과로, 저는 모든 공동체가 이를 바탕으로 목회 및 복음 선교의 길을 따라 전진하는 데 지금과 같이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랍니다. 또한 평신도들은 특히 배우자와 가족의 양성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신앙에 대한 헌신의 중요성과 결혼한 부부와 가족에서 파생된 사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촉구합니다. 또한 결혼 준비와 젊은 부부들을 위한 교육, 노인에 대한 관심, 상처 입은 가족과의 친밀감, 가족과의 친밀함을 포함해 결혼이라는 새로운 조합에서 그리스도인의 경험을 온전히 누리고자 하는 목회적 자극이 필요한 가족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도전이 필요합니다. 이번 웹비나 포럼이 서로의 생각과 사목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시대의 징조에 대응하여 가장 효과적 방법으로 가족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성모님과 성 요셉의 중보에 의탁합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으로 함께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종, 그리스도교 일치 ‘요한 17’ 회원들에 비디오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9일 그리스도교회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의 친교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교회일치운동인 ‘요한 17’ 회원들에게 비디오 메시지를 보냈다. 요한 17 회원들은 미국 뉴욕 용커스에 있는 성 요셉 신학교에서 6월9일과 10일 이틀간 수련회를 개최하고 있다. ‘요한 17’운동은 2013년 오순절교회 조 토시니 목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개신교 목사임에도 당시 새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종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끼고 그후 교종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는 요한 복음 17장 특히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23절)는 예수님의 기도에 영감을 받고 교회일치 운동에 헌신하기 시작했다. 교종은 이들에게 보낸 비디오 메시지에서 “모든 것은 형제적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사랑은 세상을 바꾸지만 먼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라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종의 메시지는 스페인어로 전달되었다. 메시지 내용.

‘요한 17’ 운동은 테이블 주위에 카푸치노, 저녁식사 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자신이 형제라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피부색, 국적, 출신지 또는 신앙생활의 다양한 형태 때문이 아니라 ‘동일한 아버지의 자녀’인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난이나 전쟁 때문에 테이블, 카푸치노, 아이스크림, 커피가 없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형제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말해야 할 말을 기억해야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출신지, 국적, 피부색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는 한 아버지의 자녀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심오한 신학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먼저 예수님 인격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만남에서 우정, 형제애, 같은 아버지의 자녀라는 확신이 태어납니다. 모든 것은 형제적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삶을 공유하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헌신하면 사랑은 세상을 바꿀 수 있지만 먼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사랑으로 함께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우리 자신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17 운동과의 만남과 그들의 증언은 저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계속 함께 걷고 삶과 형제의 사랑을 나누도록 격려합니다. 종종 사랑은 플라토닉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철학과 혼동됩니다. 그러나 사랑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에 구체적입니다. 사랑하든 아니든 육신이 된 사랑, 우리를 위해 생명을 준 사랑이 길입니다. 사랑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 17 운동은 사랑을 살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양의 냄새를 가진 목자가 되십시오."

교종, 프랑스 유학사제들에게 이상적 사제상 강조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7일 로마에 있는 프랑스 유학사제들을 위한 성 루이스 호스텔 커뮤니티에 거주하는 프랑스 유학생 사제단을 접견하고 미래의 사목활동과 지역사회에 대한 증언에 대해 충고했다. 교종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제상인 성 요셉을 인용하며 사제들은 양 떼의 무리에서 ‘양 냄새를 맡는 목자’가 되라고 촉구했다. 말씀 내용.

여러분들이 이곳 로마의 여러 대학에서 수행하는 연구는 목회자로서의 미래 과제를 준비하고 기쁨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름받은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곳 로마와 여러분이 일할 프랑스의 환경의 차이나 자신에게 맡겨진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고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현장에 나가서는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양의 냄새'를 가진 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목회자들은 여러분에게 맡겨진 하느님 백성과 의사소통하는 가운데 함께 웃고, 울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제들 가운데는 때때로 하느님께 대한 성찰을 실험실 샘플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같이 하느님 백성으로부터 분리된 사제는 가톨릭 목자가 아닙니다.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을 일상적 관심의 중심에 두기 위해서는 미리 구성한 아이디어, 위대함에 대한 꿈과 자기주장을 벗겨 내십시오. 사제란 하느님의 거룩함을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중심에 충실한 사람들. 목자가 아닌 지식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제보다는 평신도인 것이 낫습니다. 사제는 하느님께서 그를 택하셨기 때문에 하느님 백성 가운데 목자가 되어야합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개인주의, 자기주장, 무관심은 함께 사는 데 따르는 어려움 중 일부입니다. '작은 폐쇄집단'을 만들고, 자신을 고립시키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자신이 더 우월하고 총명하다고 믿고 싶은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에 대한 험담과 비방은 모든 것을 훼손하는 학사사제들의 폐쇄된 집단의 고질적 습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습관을 버리고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보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항상 서로를 선물로 환영하기를 원합니다. 진실로 살았던 형제회, 관계의 진실성과 기도의 삶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부드러움의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의 공동체는 기쁨을 나누고 기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사제들은 복음에 비추어 하느님의 맛을 전하고 불안한 마음에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 다양한 형제애의 복음적 가치를 전할 수 있으며, 하느님 사랑과 친밀함의 충실함을 느끼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같은 모델로 성 요셉을 제시합니다. 성 요셉은 ‘신앙의 사람, 부드러운 아버지, 충실함의 모델,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포기를 신뢰하는 이의 얼굴을 재발견’하도록 우리를 초청합니다. 성 요셉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는 두려움과 약점을 통해서도 그분이 일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포함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연약함은 ‘주님과의 만남의 신학적 장소’입니다. 훌륭한 사제는 자신의 약점을 알고 주님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약한 사제’입니다. 그러나 ‘슈퍼맨’ 사제들은 결국에는 나쁘게 됩니다. 성 요셉과 함께 우리는 단순한 수용, 부드러움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한 저는 여러분들에게 더욱 형제적이며 연대하는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를 건설할 것을 촉구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의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형제자매와 교회를 섬기는 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음을 확신하면서 위험을 감수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 기쁨에는 유머감각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유머감각이 없는 사제는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저의 사도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에서 지적했듯이 다른 사람, 자신, 심지어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웃는 위대한 사제들을 본받으십시오. 유머감각은 거룩함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기뻐하십시오. 기쁨과 유머감각은 사제상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은 기쁨으로 기름부음 받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으로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두어야만 진정한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직자의 기쁨은 여러분 시대의 선교사로서 여러분 행동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사제들의 또 다른 미덕은 여러분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계와 연약함, 여러분의 고난’에는 항상 여러분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랑의 시선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감사는 ‘언제나 강력한 무기’입니다. 감사는 절망과 외로움, 시련의 순간에도 항상 희망의 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지와 미얀마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프란치스코 교종,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 신자에 호소

프란치스코 교종은 6월8일 트위터를 통해 모든 신앙인을 ‘평화의 장인’으로 초청하고 자신들의 종교전통에 따라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고 촉구했다. “오늘 오후 1시 국제 가톨릭행동은 각자 자신의 종교적 전통에 따라 ‘평화를 위한 1분기도’를 바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지와 미얀마를 위해 기도합시다”라며, 종교를 초월한 전 세계 신앙인의 기도를 호소했다. 국제 가톨릭 행동연맹 마리아 그라지아 테발디 사무총장은 교종의 메시지를 감사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교종께서는 모든 신앙인이 일상생활에서 평화의 장인이 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특히 올해는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에 미얀마에 특별한 관심이 있을 것이며, 이날 오후 1시 필리핀에서 시작되는 ‘평화를 위한 위대한 집단기도’는 각 시간대로 세계를 일주하며 계속된다고 밝혔다.

장기풍(스테파노)
전<평화신문> 미주지사 주간
2006년 은퇴. 현재 뉴욕에 사는 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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