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탈출 24,3-8; 히브 9,11-15; 마르 14,12-16.22-26

최근에 겪은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 하나

지난 주일 동생이 결혼을 했습니다. 5년 넘게 사귀었던 대학교 후배랑 결혼을 한 것이지요. 친동생 부부의 결혼식을 주례하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미사를 공동 집전 해주신 신부님만 16명이나 되었습니다. 축하와 축복의 장이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동생 결혼 스토리가 아닙니다. 사실 저희 가족이 가장 고민했던 문제 중 하나는 손님들의 식사 문제였습니다. 다행히 결혼 직전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1.5단계로 하향되었지만 성당에서 혼배성사 후 하객들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하고 한참을 고민했지요. 인근 뷔페나 식당을 통째로 예약하려 했지만 그것도 할 수 없었고 도시락을 준비하자니 혹시나 하는 위생사고가 신경 쓰였습니다. 결국 식사 대접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순히 말하자면 함께 먹음을 통해 기쁨이 커지는 자리에 먹는 것이 빠진 셈이지요. 최근에 집안에 결혼을 치르는 분들 이런 고민 많이 하시지요?

(이미지 출처 = Pxhere)
(이미지 출처 = Pxhere)

최근에 겪은 먹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 둘

제가 머물고 있는 학습관에서는 89세의 원로 신부님께서 함께 지내고 계십니다. 신부님과 식사를 하다 보면 옛날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당신께서 어릴적 겪었던 일제 강점기 말기 이야기부터 말이지요. 얼마 전 신부님께서 19살에 체험하셨던 한국전쟁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신학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피난을 떠나 수녀원과 성당을 떠돌았던 이야기들 말이지요. 정말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옛날 이야기들 속에는 항상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말이 있습니다.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는데 무엇을 제대로 했겠냐?’ 한창 이야기를 진행하시다가도 추임새처럼 들어가는 말씀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께 옛날 이야기를 듣는 손자, 손녀 시절의 기억에 이런 말씀이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입니다.

먹는 감각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감각입니다. 동시에 가장 위험한 감각이기도 합니다. 바로 생명과 직결된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그 감각에 맞지 않은 것이 들어가면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게 되는 것이 바로 먹는 행위입니다. 그러기에 제대로 먹는다는 것은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바로 내가 먹는 것 중 가장 완벽한 ‘먹을 것’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인간이 먹는 목적이 제대로 살아가기 위함이라면 주님의 몸과 피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가장 제대로 된 ‘먹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완벽한 ‘먹을 것’을 두고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식당을 갈 때의 설레임처럼 주님의 몸을 모시러 성당을 갈 때 기대와 설레임을 가지고 계십니까?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뒤에 그 식당과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을 칭찬하지요. 주님의 몸을 모시고 난 뒤에 하느님과 교회에 감사를 드리십니까? 완벽한 ‘먹을 것’이 주어진 우리는 그것을 마주하기 전, 그리고 마주한 후의 모습에 대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먹을 것’은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십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한 ‘먹을 것’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계약의 피’라는 말씀도 오늘 대축일에 새겨 볼 만합니다. 통상적으로 계약은 ‘권리’와 ‘의무’를 동반하지요. 매번 완벽한 ‘먹을 것’을 마주한 나에게 이와 관련된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에 충실하게 될 때 이 ‘먹을 것’은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상우 신부(광헌아우구스티노)

부산교구 감물생태학습관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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