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사폐소위 등 사형 대체형벌 세미나

사형제도폐지특별법 발의가 준비되는 가운데, 사형제 폐지 뒤 대체형벌로 떠오르는 절대적 종신형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을 실현하는 대안인지 묻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사형제도폐지소위원회(이하 사폐소위)가 5월 31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국회의원실과 함께 세미나를 열었다. ‘사형 대체형벌의 조건과 전망-사형확정자 생활실태조사와 비교법 분석을 기반으로’가 그 주제다.

세미나에 앞서 김선태 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상민 국회의원, 박병석 국회의장,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이 인사말을 통해 인권존중 및 사형제 폐지 입법을 촉구했다.

김선태 주교는 사형제를 반대하는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한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인 만큼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 사형제도를 완전히 없앨 때”라면서 현재 준비 중인 사형제도폐지특별법 발의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적극 동참하도록 요청했다. 

이어 김 주교는 “참혹한 범죄를 참혹한 형벌로 응징하는 폭력의 악순환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면서 “범죄 발생의 근본 원인을 해소하고 사회 구조적 모순을 풀어 나가며 범죄 발생 자체를 줄여, 진정한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와 토론은 사폐소위 총무 김형태 변호사(사형폐지범종교인연합 집행위원장)가 진행했다.

먼저 김대근 연구위원(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해 사형확정자 30여 명을 심층 인터뷰해 그들의 생활실태를 조사, 연구한 내용을 발표했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사형확정자의 법적 지위가 지닌 한계와 절대적 종신형의 반인권성을 살폈다. 이어 절대적 종신형에 위헌 결정을 내리고 대체형벌을 도입한 유럽 사례를 통해, 사형제 대체형벌로 가석방이 가능한 상대적 종신형을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모두 60명의 사형확정자(2020년 기준) 가운데 32명을(군교도소 4명 제외) 면접 조사했다. 이들은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평균 50-60대 남성이며, 최소 5년에서 최장 26년까지 복역 중이다. 이들의 생활을 심층 파악하기 위해 교도관과 교정위원도 면담했다. 

(왼쪽부터) 김형태 변호사, 현대일 신부, 이경화 검사, 김대근 연구위원, 이석배 교수, 이재영 입법조사관, 김준우 변호사. (사진 제공 = 천주교인권위원회)<br>
(왼쪽부터) 김형태 변호사, 현대일 신부, 이경화 검사, 김대근 연구위원, 이석배 교수, 이재영 입법조사관, 김준우 변호사. (사진 제공 = 천주교인권위원회)

사형 미집행, 구금은 장기화.... 사형확정자의 삶은?

이들은 1997년 마지막 사형집행 뒤로도 몇 년간 집행에 대한 두려움과 살아 있다는 안도감 사이를 오갔다. 또 사형 미집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정시설에서의 삶의 방향과 모습, 수용자들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수용 직후 5년 동안 불안감과 부적응 등 여러 감정을 겪은 뒤 대개는 신앙을 갖게 됐으며, 배우자나 자식과 관계는 대부분 끊어졌지만 부모와의 관계는 이어지는 편이었다. 자녀에게 자신의 존재가 알려지거나 자신의 죄 때문에 가족이 비난받을까 봐 자책했다.

연구에서는 사형에 대한 생각, 범행 당시 감정, 재판과정 가혹행위, 판결, 피해자에 대한 문제, 범죄에 대한 트라우마 등을 질문했다. 이들 가운데 범죄 시 사형을 고려한 이는 거의 없었다. 약물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에 의존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경우 많았다. 범죄 당시 행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장 컸고, 체포나 발각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다. 연쇄적 범죄자는 첫 번째 두 번째 범죄 사이에 많은 방황과 음주에 의존한 경향이 있었다.

피해자에 대해서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기도 했지만 기억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도 했다. 지인이나 가족이 피해자라면 꿈에 나타나거나 계속 고민하게 되지만, 노상 강도나 야간 범행을 한 경우는 피해자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다.

한편 20년 전 사형집행을 경험했던 교도관들은 공통적으로 “가석방 없는 형태의 종신형에 대한 사형확정자의 박탈감을 교정 당국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또 사형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교도관들조차도 같이 생활하는 사형확정자에게 사형이 집행된다면 “곤란하고 참혹할 것”이란 반응이었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사형확정자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미결수 신분이라 교육 또는 교화 프로그램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무엇보다 사형확정자에 대해서는 기결수처럼 처우급을 나누지 않기 때문에 교정 성적에 따른 처우를 달리 받을 여지없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형확정자는 미결수이지만 실질적 생활은 기결수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결수처럼 모범적으로 수용 생활을 하더라도 향상된 처우나 감형, 가석방 등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는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지 20년이라 이들이 장기 구금 상태에 있기 때문에 사형확정자의 삶과 교정 관리의 문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면서 “이들에 대한 처우는 다른 수용자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 존엄 침해하는 절대적 종신형, 대안 아니야....

일부 나라는 종신형에 평생을 의미하는 요소가 있지만, 대다수 나라의 종신형에는 수형자가 생을 끝낼 때까지 구금한다는 의미는 없으며, 가석방 기준, 최저 복역 기간 및 가석방 이후의 부과 처분은 나라마다 다르다.

김 연구위원은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유럽인권재판소가 절대적 종신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사례를 통해, “사형제 대체형벌은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절대적 종신형이 아닌 가석방이 가능한 상대적 종신형의 형태가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1977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무기 자유형 선고자에게 다시금 자유를 누릴 기회를 남겨야 하며, 사면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결정했다. 또 2017년 유럽인권재판소는 무기형은 법률상, 사실상 감경될 수 있다는 수감자의 석방에 대한 전망 및 심사의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결정했다

그는 “우리 현행법상 무기징역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규정하거나 최저 복역 기간을 상정한 형태의 가석방이 가능한 무기징역형을 설정하는 것이 대안”이라면서 “사형제가 폐지되고 무기징역형이 법정 최고형이 되면 기존 사형확정형의 선고는 무기징역형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 경우 특별법 형식이나 법원 판결로 바꾸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토론에는 현대일 신부(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장), 이경화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 이석배 교수(단국대), 이재영 입법조사관(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 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수용자인권증진모임)가 참여했다. 

김선태 주교(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사진 제공 = 천주교인권위원회)

교정을 통한 변화, 가석방 기회 중요
절대적 종신형, 인간 존엄 침해 

현대일 신부는 4년 동안 교정시설에서 무기수, 사형확정자 등을 면담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정을 통한 변화 가능성과 가석방의 기회가 매우 중요하며, 인권과 생명존중 차원에서 절대적 종신형은 사형제의 대체입법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 신부는 교정은 사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며, 교정의 역할은 사회에서 격리하고 그 존재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이끌어 주는 것이라면서, “절대적 종신형에 비해 상대적 종신형이 가벼워 보이지만 결국 같은 종신형이자 엄벌인데도 굳이 가석방의 기회조차 박탈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70-80대인 사형확정자들에게 “최소한 죽음만큼은 가족과 함게 맞을 기회 정도는 줄 수 있어야 한다. 절대적 종신형은 평생을 감옥에 가두고, 희망을 제거한 채 열악한 환경에 두는 것이며 이는 끊임없이 고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사형제 폐지의 이유가 인권존중, 생명존중이라면, 절대적 종신형은 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형법학자인 이석배 교수(단국대)도 실제로 여러 나라가 사형제 대체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했고, 우리 사회도 이를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지만 “종신형 제도는 재사회화라는 현대 형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사법살인과 오심의 피해를 막고, 비례성의 원칙 면에서 사형제보다 절대적 종신형이 조금 나아 보이지만 사형제나 절대적 종신형은 모두 ‘흉악한 범죄자는 우리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있고, 우리 사회를 흉악범들에게서 지켜주는 유용한 도구이자 필요악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 교수는 “인간의 존엄을 논하며 사형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절대적 종신형을 대체형으로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면서 현재 우리 형법의 무기, 유기징역 상한선 규정에 비춰 볼 때 결코 형량이 낮은 나라가 아니며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하면 가석방으로 사회에 복귀할 길이 막힌다고 설명했다.

2010년 형법 개정으로 모든 범죄의 유기징역 상한선이 15년에서 30년이 됐고, 경합범으로 가중되면 45년, 누범으로 가중되면 5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또 이 형량을 넘어서면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기 때문에 성인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면 대부분 종신형에 해당하는 효과 발생한다. 무기징역의 경우 20년 수감 뒤에야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어 김준우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수용자인권증진모임)도 절대적 종신형 제도에는 위헌적 요소가 있는 만큼 국민적 논의와 적극 입법을 통해 적정한 대체형벌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절대적 종신형이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크고, “사실상 절대적 종신형 주장은 현실적으로 사형제 전면 폐지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현실에 맞선 절충론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종신형의 경우 최소한의 가석방 금지 기간을 어느 수준에서(25년에서 30년 사이) 적정하게 설정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고, “가석방 없는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함으로써 현실적으로 사형집행을 하지 않는 한국에서 무늬만 사형제 폐지에 그치는 입법이 되지 않도록 정부, 여당 및 사회운동과 학계가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재영 입법조사관(국회입법조사처 법제사법팀)은 사형제 대체형벌에 대한 국민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곧바로 상대적 종신형 도입을 추진한다면, 현실적으로 국민 동의를 얻기에 어렵지 않을까 우려”되며, 기존 사형확정 판결의 변경, 사면, 감형, 복권 시 입법부와 사법부의 역할에 따른 권력분립 원리의 충돌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논의에 대해 이경화 검사(법무부 형사법제과)는 현재 사형제에 대한 찬반을 넘어 사형대상 범죄, 집행 여부, 대체가능성 등이 논의되고 정부도 지난해 유엔 사형집행 모라토리움(유예) 결의안에 찬성하는 등 정책적 변화가 있었다면서, “사형제 폐지 여부, 대체형벌 도입에 대해서는 사형제의 형사정책적 기능, 국민법감정 등을 종합 고려해 검토하고, 국회 입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형태 변호사는 흉악범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인식과 그들을 영원히 가둬 두는 것은 반인권적이란 지적 사이에서 균형점 찾고, 범죄에 대한 강경 처벌만이 근본적 해결책인지 성찰하고, 사형제 폐지에 대해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숙고해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2021년 1월 29일 기준 사형확정자는 모두 59명(민간인 55명, 군인 4명)이다. 한국은 1997년 12월 30일을 마지막으로 23명을 사형 집행했으며, 1998년부터 2018년까지 사형 선고를 받은 자는 120명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체형벌을 전제했을 때 사형제 폐지 의견은 66.9퍼센트다. 사형제 필요성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범죄 억제 및 응보라는 형벌제도의 목적에서 사형제의 효력을 만족할 대체형벌 있다면 폐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한편 이날 세미나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청중 없이 진행됐으며, ‘CBCK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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