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삼위일체 대축일) 신명 4,32-34.39-40; 로마 8,14-17; 마태 28,16-20

실패보다 뼈저린 게 후회라고 합니다. 지난날 내가 저지른 교만함, 허영, 허세와 잘난 척도 꽤 아픈 후회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자주 묵상하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필리피서의 ‘일치와 겸손’에 대한 부분입니다.(2,1-11) 기도와 성찰 속에서 교만하고 어리석었던 저 자신을 반성하며 이 말씀들을 절절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리 2,6-8)

 

왜 예수님께서 비천한 구유에서 나시고(루카 2,7)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자라셨으며(2,51)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요한 12,14) 그것은 초라해 보이지만 위대한 길이며 바로 낮춤과 겸손, 사랑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낮아질 것과 섬김을 받지 말고 섬길 것을 말씀하신 것은(마태 20,28) 그것이 참된 왕의 길, 하느님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모든 이에게 양식을 값없이 나누어 주며, 모든 이에게 생명을 줍니다. 정녕 주님께서 걸으시는 길이고 그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이미지 출처 = Flickr)
(이미지 출처 = Flickr)

하느님께서 사람들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의 극한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참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권위와 위엄 속에서 당신이 왕임을 먼저 드러내신 게 아니라, 비천함을 스스로 선택하시고 낮음, 겸손, 사랑을 통해 참된 왕의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분을 주님이라 고백합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내려오셨고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이 드러나고, 성령은 하느님의 영이자 그리스도를 인도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출근하지 말고 실컷 잠을 잤으면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고(특히 비 오는 날), 산더미 같은 일들일랑 내버려 두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직장인들의 로망이자 소확행입니다. 직장인들뿐일까요? 힘든 육아에 지친 부모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동경한다고 하지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해야 함은 알지만 가끔은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쉼만이 우리 인생의 전부만은 아니겠지요. 누구나 좀 더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민을 통해 우리가 시도해 보고자 하는 것, 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주고, 욕심이 아닌 나눔을 선택하는 사람, 사랑의 삶, 겸손과 낮춤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삼위일체의 신비를 더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필리 2,5)

 

이주형 신부(요한)

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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