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 이성과신앙연구소, 개교 37주년 학술발표회

수원가톨릭대 이성과신앙연구소가 개교 37주년을 맞아 기념 학술발표회를 열었다.

6일 수원가톨릭대 하상관 토마스 홀에서 열린 학술발표회는 ‘팬데믹 시대의 위기와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주제로 연구 발표 5개, 질의응답 및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황치헌 신부(수원가대 교수)가 전염병의 역사와 교회의 삶, 박찬호 신부(수원가대 교수)가 팬데믹 시대의 삶과 그리스도교 윤리, 김일권 신부(수원가대 교수)가 코로나 시대로 인해 드러난 오늘날 전례의 위기를 발표했다.

최영균 신부(수원교구 호계동 성당 주임)와 변미리 겸임교수(서울시립대)가 코로나 시대의 신앙과 가톨릭 교회를 수원교구 중심으로 살폈으며, 이어 임동균 교수(서울대)가 미국교구의 사례를 임채윤 교수(위스콘신대)와 공동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발표했다.

6일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곽진상 신부(수원가톨릭대 총장)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수원가톨릭대학교)<br>
6일 열린 학술발표회에서 곽진상 신부(수원가톨릭대 총장)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수원가톨릭대학교)

팬데믹 시대,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세로
그리스도인의 윤리, “자유로운 포기와 배려”

먼저 황치헌 신부는 ‘전염병의 역사와 교회의 삶’을 주제로 고대부터 근대까지 유럽을 휩쓴 흑사병의 역사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보여 준 형제애적 실천 사례를 살폈다.

감염을 피해 도망간 이교도와 달리 자신조차 죽어 가면서도 이웃을 돌보고 간호하며 애덕을 실천했던 고대 그리스도인들, 중세 때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지에서 서로를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생겨난 형제회, 자비회, 알레시오회 등이 그 예다.

황 신부는 팬데믹 시대에 교회는 “모든 사람의 취약성을 연대와 배려의 자세, 곧 착한 사마리아인이 지녔던 이웃됨의 자세로 돌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박찬호 신부가 팬데믹 시대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적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윤리적 가치는 무엇인가를 자유, 규범, 양심의 차원에서 짚었다.

전 세계적 감염병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윤리 기준은 “타인의 구원을 위해 수덕의 차원에서 우리 권리를 잠시 보류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약한 이들을 배려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포기한 바오로 사도나 의무가 아닌데도 자율적으로 법을 지킨 예수의 모범은 윤리 기준의 지침이 된다.

박 신부는 무엇보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 따라 양심에 따르는 행위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양심 양성’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약자를 위한 자유로운 포기와 배려뿐 아니라 이들을 교육하는 것도 양심 양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수원교구 6개 본당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변미리 겸임교수(시립대)와 최영균 신부(호계동 성당 주임)가 코로나19로 인한 수원교구 신자들의 신앙생활 변화와 교회의 역할을 발표했다.

먼저 변미리 교수는 최근 5년간 가톨릭 신자 비율에서 20대 여성이 다소 증가한 양상(서울시, 2015-20년), 코로나 이후 온라인 미사 등 비대면 방식의 확장, 가톨릭 신자들이 다른 종교보다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더 크게 인식하는 것, 미사 참석, 교회 활동 위축으로 인한 사제 리더십에 대한 기대 등을 교회가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방역에 적극 협조한 가톨릭 교회의 모습을 사회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신자들 역시 종교의 사회적 영향력을 크게 인식하는데, 이는 교회가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적 요구를 수용하는 정도가 높은 것이며, 교회가 미래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지속해야 할지 답을 찾는 조건이다.

이어 최영균 신부는 코로나 이후 사제의 리더십과 교회의 공공적 역할을 강조했다.

수원교구 설문조사에서 신자들은 ‘친절하고 신자들과 소통을 잘하는 사제’, ‘본당의 체계를 잘 관리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사제’, ‘신자들을 잘 관리하고 개인 생활이 철저한 사제’, ‘성경과 교리 지식에 해박하고 강론을 잘하는 사제’를 사목자의 리더십으로 꼽았다.

코로나 이후 필요한 사목으로는 ‘약한 유대의 증가와 공동체의 변화를 감안한 사목’, ‘다양한 욕구와 상황, 시대 변화에 유연한 교회 공동체 모델 개발’, ‘민주주의적, 합리적 교회 운영’, ‘교회 내 평등과 보편적 참여’, ‘정보기술 도구 활용’, ‘교회의 공공적 책무에 대한 응답과 사회적 공헌’을 제시했다.

그는 “설문 응답자 절반 이상은 코로나 이후 미사 참석이나 교회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봤다”면서 “사목에서 합리적 소통과 사제 리더십에 대한 기대가 크다. 경제, 인권, 환경, 정의 등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가톨릭 신자들의 신앙은 코로나로 어떤 변화를 보였을까.

이 주제는 임동균 교수(서울대)가 1972-2018년까지 미국종합사회조사 자료, 퓨 리서치 센터의 패널 설문자료 등을 기초로 가톨릭, 개신교, 무종교인과 비교해 살폈다. 

그에 따르면, 미국인의 종교적 정체성이나 참여는 코로나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미사 참여는 제한됐지만, 코로나 때문에 종교적 믿음이 오히려 더 강해졌다는 비율이 약해졌다는 비율보다 25퍼센트 높았다.

이는 종교성이 높은 미국의 특성으로, 종교성이 강화됐다는 응답은 개신교에 비해 가톨릭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재미 한인과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에서 종교 참여가 가장 높은 집단으로, 개신교가 가장 활발하다. 가톨릭은 1.5세와 2세대에서 무종교가 늘고 있다. 코로나 전부터 1985-94년에 태어난 세대의 종교 참여가 줄고 있는데 종교성 감소는 세대 내보다 세대 간 변화가 더 크다.

한편 미국에서 종교는 정신건강에도 큰 도움이 됐다. 무종교인보다 가톨릭, 개신교 신자들이 긴장, 우울, 외로움, 불면 등을 겪는 비율이 낮고 미사나 예배 참여가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양호한 정신건강 상태를 보였다. 그 가운데 개신교 신자의 정신건강이 가장 높았다. 반면 기도를 매일 여러 번 하는 이들은 정신적으로는 더 어려운 상태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강한 종교성, 정신건강 등 긍정적 수치를 보이는 부분에서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낮은 점은 코로나 이후 교회의 역할로 고민해 볼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코로나 전후로 공동체적 종교 활동은 줄어든 반면 기도나 개인의 영적 생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데, 이 같은 신앙생활의 개인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날 발표자인 (왼쪽부터) 최영균 신부, 변미리 교수, 박찬호 신부, 황치헌 신부, 임동균 교수, 김일권 신부. (사진 제공 = 수원가톨릭대학교)

성전에 국한된 성찬례와 전례, 삶 속으로 확장돼야....

교회는 코로나를 겪으며 다양한 비대면 방식으로 신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지만, 단절된 전례 생활은 온전히 채워지기 어려웠고, 많은 신앙인이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이루지 못해 고립되기도 했다.

김일권 신부(수원가대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짚은 뒤 성찬례와 공동체라는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을 어떻게 이어 갈지 물었다.

김 신부는 기원전 586년 신앙의 구심점이었던 성전이 이방인들에 의해 파괴되자 하느님의 말씀인 토라를 중심으로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켜 갔던 이스라엘 역사, 예루살렘 성전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아닌 스스로 거룩한 성전이 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그 답을 모색했다.

이스라엘 성전 파괴는 “삶의 영역에서 하느님과 관계 맺을 수 있음을 알게 된 사건”이자, “신앙생활의 확장을 이룬 사건”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 역시 “그리스도 파스카 사건으로 예수님 스스로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 인격적 관계를 맺는 거룩한 성전이 되었다”.

그는 성찬례적 삶의 확장도 강조했다. 그는 “본당에 국한하지 말고 가정과 일터, 우리 삶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면서 그 확장을 위해 “가정 공동체와 보편사제직”을 제시했다. 성전에 갇힌 성찬례의 삶을 성전 밖으로 확장할 때 그리스도교 정체성이 강화되고, 전례생활의 단절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질의응답에서는 급속한 신앙의 개인화 상황에서 사목활동은 다양한 개인의 욕구와 교회의 공적 역할 모두를 다뤄야 한다, 깊이 없는 생활양식에 그치는 영성의 소비, 공동체를 기피하고 무해한 관계만 맺으면서도 연결됨의 욕망으로 불안해 하는 젊은 세대의 특성이 논의됐다.

이에 대해 변미리 교수는 개인주의적이지만 관계에서 분리됐을 때 큰 불안을 느끼는 한국의 MZ세대(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걸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는 여전히 종교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강하다면서, 교회가 이들을 위해 더 적극적 시도를 하고, 코로나 블루로 가장 높은 자살율을 보이는 20대 여성을 위한 역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교회, 자기 폐쇄로 가지 않으려면 객관적으로 세상 인식해야
시장인 바깥세상에 안식과 가치 주는 유일한 공간으로 

이어진 종합토론에서는 온라인 미사의 성사성, 세상의 변화와 종교의 변화 간 상호작용, 신학과 사회학의 협업, 자본주의 시장성이 강력한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 등이 논의됐다.

먼저 김일권 신부는 코로나 전부터 환자 등 물리적으로 미사 참례가 어려운 신자들에게 방송미사가 유효했다면서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등 방식 자체보다는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지가 중요하므로 미사의 성사성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박찬호 신부는 “코로나 시국 비대면 미사가 종교에 미친 영향, 대면 예배 강행으로 종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변화처럼 종교를 변화시키는 세속, 세속을 변화시키는 종교 두 차원의 상호작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겠다”고 말했다.

최영균 신부는 “다양한 관점, 현상의 동기와 원인, 변화의 흐름을 인식하고, 이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사회학적 방법이고 신학은 최종적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동일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상을 사회학적 방법으로 객관적으로 인식한 뒤 신학적 가치판단을 내리고, 교회의 실제적 사목, 복음화로 구성해 가야 한다면서 “객관적 인식을 빼놓는다면 세상과의 대화가 단절되고 교회가 자기 폐쇄적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임동균 교수는 “바깥세상은 시장이다. 중산층의 삶에 가깝게 가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상품화해야 하는 현실이다. 모든 것이 자본이 되는 사회에서 순수한 자유와 안식, 해방은 어렵다”면서 “비 시장인 교회는 가치와 안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닐까. 이 점에서 교회는 다양한 대중과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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