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놓기" 번역한 심종혁 신부(예수회) 인터뷰

“다리 놓기-가톨릭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가 서로 존중하고, 공감하며, 민감하게 관계 맺기 위하여”(Building a Bridge-How the Catholic Church and the LGBT Community Can Enter into a Relationship of Respect, Compassion, and Sensitivity)가 한국에서 출간됐다. 한국 가톨릭교회 출판사에서 성소수자 관련 책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다리 놓기”의 저자 제임스 마틴 신부(예수회)는 미국 가톨릭 주간지 <아메리카>(America)의 편집자며, 교황청 홍보국 자문위원이다. 그는 30여 년간 사목활동을 하며 비공식적으로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와 제도교회 사이에 다리 놓는 일을 해왔다.

그러던 2016년 미국 올랜도의 게이 클럽에서 총기 사건이 일어났을 때 주교 몇 명만이 성소수자 공동체를 지지하고 나선 것을 보고 두 공동체 사이에 큰 단절을 느꼈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대화가 나아가지 않는 것을 보며 이 책을 썼다.

"다리 놓기", 제임스 마틴, 심종혁 옮김, 성서와함께, 2021. (표지 출처 = 성서와함께)<br>
"다리 놓기", 제임스 마틴, 심종혁 옮김, 성서와함께, 2021. (표지 출처 = 성서와함께)

4월 30일, 책을 번역한 심종혁 신부(예수회, 서강대 총장)를 만났다. 

이 책은 성소수자 공동체와 가톨릭 교회 공동체 사이에 ‘존중’, ‘공감’, ‘민감함’을 토대로 ‘양방향 다리’를 놓자고 제안한다. ‘존중’, ‘공감’, ‘민감함’은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 가져왔는데, 각 장에서 마틴 신부는 두 공동체가 서로를 어떻게, ‘존중’하고, ‘공감’하고, ‘민감함’을 가지고 만나야 할지 이야기한다. 약하고 소외된 이들을 대하는 예수의 여러 모습 그리고 마틴 신부 자신이 성소수자 또는 그 가족과 만나면서 경험하거나 들은 것 등을 통해 교회가 성소수자를 어떻게 대할지 풀어냈다.

심종혁 신부는 저자가 성경을 지금의 우리 삶에 비춰 성찰하는 것이 “굉장히 매력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은 교리나 심오한 철학이 아니라 사제, 수도자가 사목 현장에서 어떤 태도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한다. 사목자는 그 시대 가장 소외당하는 이에게 먼저 다가가고, 편견 없이 포용하고, 어루만져야 하는데, 이 책이 이런 면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책이 나온 뒤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존중은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고, 공감은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면 민감함은 어떤 의미일까? 제도교회가 성소수자에게 민감함을 지닌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마틴 신부는 “가톨릭교회 교리서” 2358항에서 나온 “객관적으로 무질서”(objective disordered)라는 표현을 들어 설명한다. 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경향성을 묘사하는 것이지만, 많은 성소수자가 이 표현에 불필요한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120쪽)

책에 따르면, 가정에 관한 세계 주교 시노드에서 “이런 표현들을 수정하거나 새롭게 표현하고, 폐기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는 “열네 살 아이에게 그런 표현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람들이 도대체 알기나 할까요? 그런 말이 그 아이를 파괴해버릴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라고 말했다. 마틴 신부는 “이런 영향을 이해”하고, “이 어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민감함이라고 이야기한다.

앞서 말했듯이, 두 공동체 사이의 다리는 ‘양방향’이다. 교회의 노력만으로는 다리가 놓일 수 없다. 마틴 신부는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공동체도 제도교회와의 관계에서 ‘존중’, ‘공감’, ‘민감함’을 성찰하도록 “초대”하지만, “많은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가 교회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취급되었는지 생각하면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그들을 이해한다. 그래서 그는 ‘다리 놓기’에 따르는 책임이 교회에 더 크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동안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을 주변으로 내몰아 소외감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리 놓기"를 번역한 심종혁 신부. ⓒ배선영 기자<br>
"다리 놓기"를 번역한 심종혁 신부. ⓒ배선영 기자

저자는 성소수자 신자가 제도교회에 ‘민감함’을 지니는 것으로 “예언적 직무”를 든다.

심종혁 신부는 “비록 변방에 있더라도 교회와 접촉하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 바뀌도록 (성소수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예를 들어, “예언적 직무”는 ‘내가 이 책을 번역하거나 인터뷰에 응해서 성소수자에 비판적인 사람들로부터 공격받으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이 들더라도 이를 이겨내고, 하느님이 주신 소명, 예언적으로 초대받은 일에 응하는 것이다.

심 신부는 “다리 놓기”를 읽고, 주변에 이 책을 추천하곤 했는데, 이때 이 책을 출간한 '성서와함께'를 만났다. 처음엔 그 자신이 직접 번역할 생각은 아니었다. 한국 천주교회 차원에서는 성소수자 관련 책이 처음인 만큼 출판사 측도 조심스러웠고, 심 신부가 번역해 주면 책을 내겠다는 말에 그가 나섰다.

심 신부는 성소수자 이슈와 관련해서 “사람들이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는 것을 보며, 이 모습들이 가톨릭 교회와 성소수자 공동체 사이를 반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변에서 책을 번역한 것 때문에 항의 전화를 받을까 봐 걱정하고, 성소수자 관련 모임에서 만남을 요청하면서 혹시 그에게 폐가 될까 우려하는 것을 보고, 그는 의아했다. 정작 그는 이런 부분을 전혀 염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자 또한 언론에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이 될까 봐 조심스럽게 요청했는데, 막상 인터뷰를 수락하는 그의 첫마디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였다. “욕하면, 욕먹지, 뭐....”

그는 방학 때 사제, 수도자, 평신도 피정을 지도하면서, 성적 지향으로 고민하는 당사자 또는 그 가족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가, 편견 없고 자연스러운 심 신부를 보고 안심한다. 심 신부가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가 있듯이, 왼손잡이를 나쁘다고 할 수 없지 않냐고 하면, 그의 개방적인 태도에 놀라면서 자신의 고민을 편안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심 신부는 성소수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며, “나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내가 아는 10명 가운데 2-3명은 성소수자라고 염두하고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명감 때문에 책을 번역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성소수자 이슈를 조심스러워하는 상황인데도 번역을 맡았고, 출판사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예언적 직무”로 한국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처럼, 이 직무를 이어갈 누군가가 계속 있길 바란다.

성소수자 공동체와 교회 공동체 사이에 정말 다리가 놓일까? 마틴 신부는 이 책이 다리의 “완벽한 설계도”가 아니고, “대화와 성찰을 향한 출발점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 책이 교회에서 많이 환영받을수록, 다리가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믿는다. 완성된 다리를 함께 걷는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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