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이 글은 <빛두레> 제1507호에 실린 글입니다. 게재를 허락해 주신 조영대 신부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 3월 18일. 문재인 정부를 광주 시민을 폭행하던 계엄군에 빗대어 비난하는 만평 게재 △ 3월 19일.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한 신문사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 개시(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 3월 20일. 해당 만평 삭제. △ 3월 21일. <매일신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조세 정책을 최고 강도로 비판한 것이나 취지와 다르게 광주 시민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건드리고 들춰낸 점이 있다면 사과드린다”는 입장 발표 △ 3월 22일. 5·18기념재단 등에서 <매일신문>의 공식 사과를 요구. 만평 관련 국민청원에 2만 5183명 서명. △ 3월 29일. <매일신문> “비판과 질책을 달게 받겠다. 만평으로 5·18 희생자와 유가족, 부상자들에게 고개 숙여 깊이 사과드린다”는 사과문 게재. -<빛두레> 편집자 주

대구대교구가 운영하는 <매일신문>(사장 이상택 신부)이 “이번 사태”(3월 29일자 사과문)를 일으켰다. 해당 만평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건강보험료를 각각 광주 시민을 폭행하는 공수부대원으로 묘사했다. 바닥에 웅크린 채 두들겨 맞는 시민에게는 “아닌 밤중에 9억 초과 1주택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최근 발표된 아파트와 연립, 다세대주택에 대한 공시지가가 19퍼센트 상승했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가 늘어나고 일부 고가와 다주택 보유자들의 세 부담이 커진다. 그들의 건강보험료도 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폭탄’(!)을 맞는 부자는 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보유세 인상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전두환의 학살에 비유하다니 지나쳤다. 과연 끔찍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3월 18일자 매일신문에 실린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 매일희평. (이미지 출처 = 매일신문 갈무리)
3월 18일자 매일신문에 실린 '집 없이 떠돌거나 아닌 밤중에 두들겨 맞거나' 매일희평. (이미지 출처 = 매일신문 갈무리)

“이번 사태”

분개한 시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5·18 민주화운동을 모욕한 신문사 처벌”을 청원하는 등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매일신문>은 만평을 온라인에서 삭제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 코로나바이러스 2차 유행의 직접적 원인이 된 8·15 광복절 집회를 허용한 판사에게 비난 여론이 쏟아지자 <매일신문>은 이른바 ‘친문’을 계엄군으로, 판사를 몽둥이에 얻어맞는 광주 시민으로 묘사한 바 있다.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사과문을 발표했으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힌 대구 특유의 왜곡된 역사인식에 과연 얼마나 어떤 변화가 생겼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이럴까?

오늘까지 나는 한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그리고 형제로서 대구대교구의 처신을 늘 불안하게 지켜보며 살아왔다. 나뿐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구 시민사회는 새삼 천주교 대구대교구의 전력을 문제 삼을지도 모르겠다. 80년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당시 <매일신문> 사장인 전달출 신부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무총장을 지낸 이종흥 신부가 가담했던 일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국보위에 참여한 덕분인지 모르나 신군부의 언론사 통폐합 때 <매일신문>이 대구·경북 지역 일간지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게 된 사연, 팔공산 골프장이 어째서 대구대교구의 소유가 됐는지 그리고 최근 불거졌던 희망원의 비리 등 이런 떳떳하지 못한 일들이 꾸역꾸역 구린 냄새를 피우는 일을 나는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며칠 전 5·18 기념재단이 “그동안 <매일신문>은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 조롱하고 반인권 반윤리적 만평 등으로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에 한국신문윤리위원회에서 <매일신문> 이상택 신부의 이사장 직위 박탈과 신문의 상식적인 윤리 실천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촉구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을 때, 얼마나 낯뜨겁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대구대교구의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매일신문>사가 내놓은 사과문을 여러 번 읽었다. 이만하면 진정이겠지 믿고 싶다. 하지만 지금껏 분노가 가시지 않고 있다. 제1면에 실어도 모자랄 판에 신문 2면에 보일 듯 말 듯 사과문을 실었다. 내용은 더 아쉽다. “사과드립니다.... 많은 분들로부터.... 지적과 질책, 그리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청원도 있었습니다. 5·18 기념재단과 5·18 관련 단체에서도 따가운 비판과 호된 질책을 주셨습니다. 국정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지만.... 만평의 소재로 쓰기에는 부적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매일신문>은 이런 비판과 질책을 달게 받겠습니다. 겸허히 수용하겠습니다.” 겸허한 수용은 천만다행이나 남들의 지적을 피동적으로 나열하기보다 자기 잘못을 적극적으로 뉘우쳐야 옳았다. 그래도 “희생자와 그 유가족, 그리고 부상자 여러분들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시는 광주시민 여러분들께도.... 사과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잊지 않고 짊어지고 가겠다. 그리고 그 아픔도 함께 할 것임을 약속드린다”고 하였다. 이만하면 됐지 싶다.

그런데 광주의 아픔과 함께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우리 광주를 불쌍히 여길 필요 없다. 그럴 마음이 있다면 세상의 약자들을 위하면 된다. 교회가 유력 일간지를 소유하는 이유를 잊지 않으면 된다. <매일신문>의 사시가 천명하였듯이 “땀과 사랑으로 겨레의 빛”이 되면 족하다. 그런데 광주 정신을 망각하지 않겠다면서 어째서 <매일신문>은 보유세 인상에 저항함으로써 한사코 종부세를 낼 자격이 있는 상위 2퍼센트 부자들의 심기를 경호하려 드는가. 교언영색하는 위선이 아닐 수 없다. 이참에 <매일신문>이 다음과 같은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지 한 번 묻고 싶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사유 재산권을 절대적이거나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다.... 재화의 공동 사용 원칙은 윤리적 사회적 질서 전체의 제1원칙이다. 이는 다른 것에 우선하는 자연권이자 타고난 권리이다.” 지금까지 <매일신문>이 굳게 지켜온 입장으로는 몹시 거슬릴 게 분명하다. 미안하게도 교종 프란치스코의 회칙 '모든 형제들'(120항)에 나오는 말씀이다. 많이 받았으면서 조금도 내주려 하지 않는 ‘수퍼리치’들의 비위를 맞추는 언론을 굳이 교회가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 대오각성을 촉구한다.

고립에서 벗어나라

1955년 9월 14일 <매일신문>은 사설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 때문에 국가보안법의 공격을 받았고, 4·19 혁명을 유발시킨 2·28 대구 학생의거의 선봉이 되기도 했으며, 1963년에는 군정 연장을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땀과 사랑으로 겨레의 빛이 되리”라는 사시(社是)를 어서 회복하기 바란다. 기왕지사 “이번 사태”를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을 겸 이상택 사장 신부부터 편집국장, 만평을 그린 김경수 작가 등은 아무도 거느리지 말고 광주 망월동을 다녀가기를 바란다. 비 내려서 한적한 오후도 좋고 달빛 희고 맑은 밤도 좋다. 어제의 패착을 내일을 위한 바른 기초로 삼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구차한 변명문 쓰다가 떠밀려 사과문이나 싣는 옹졸한 <매일신문> 말고, 예언자의 불호령 같은 <매일신문>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조영대 신부

광주대교구 담양 대치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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