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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란 하느님 안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인간들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인터뷰]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도원 장요세파 수녀-2

   
종신허원자는 속되어 보여도 거룩하다

장 요세파 수녀는 "중세 유럽에서는 수행전통을 너무 강조해서 오히려 '우정'이나 친밀함이 주는 인간적 요소들을 너무 무시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로는 반대로 너무 지나치게 인간적 측면을 강조하다보니 수행전통이 퇴색된 감이 있다"고 말했다. 요세파 수녀는 수행전통과 인간적 요소가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요즘은 인간적 측면의 중요성을 오해한 결과, 수도회들도 업적과 성과, 사업을 중시하는 기풍이 만들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도자들에게 수행적 요소가 빠져버리면 당장에 찾아오는 것이 '정체성 위기'라고 말하는 요세파 수녀는 한국교회에서 수녀들이 유기서원을 마치면 바로 본당에 투입하는 관례는 위험하다고 말한다. 청원기, 지원기, 수련기 등 3년 정도의 수도생활로는 도무지 수도생활의 맛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자로서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좋은 수도자로 처신하고, 깊은 수도자로 수행하는 게 현장에서 가능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생활은 서열이 중시되고, 밥그릇 수를 헤아리는 것이라 한다. 이는 삶에서 누적된 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도원 안에서 도는 말 중에 "수련자는 거룩해 보여도 속되고, 종신허원자는 속되어 보여도 거룩하다"란 말이 있다고 한다.

수행자가 자기 바닥을 볼 때까지

요세파 수녀는 300명이 넘는 대수녀원에서 요즘 성소가 별로 없다고, 지원자가 줄어들었다고 걱정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트라피스트 수녀원에서는 한 해에 2명 이상 수련자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지원기, 청원기, 수련기 때마다 담당수녀가 바뀌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수련장 수녀 등 담당자가 자주 바뀌면, 수련자들은 얼마든지 자신의 모습을 숨기면서 이 기간을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수련장은 수련자들을 깊이 파악하기 어렵고, 수련자는 수련장 앞에서 자기 진면목을 보고 영혼의 바닥을 볼 기회를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도 서원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 수련장은 한 주일에 한번 정도 수련자와 면담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많은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요세파 수녀는 "수도자뿐 아니라 인간이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는 참자기를 보기 위함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고 싶어하지만, 정말 자기 자신을 알아야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장 요세파 수녀가 수련을 받으러 일본에 갔을 때 이야기다. 일본 홋가이도오 시토회 천사의 성모수도원은 중세풍의 엄격한 100년 된 수녀원이었다.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어느 수녀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했다가 4년 내내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 옹이진 마음이 풀리지 않곤 했는데, 요세파 수녀는 무조건 웃기로 작심했다. 그 수녀는 "무엇이 좋아서 웃냐?"하고 인상을 썼지만, "네가 좋아서.."라고 답하며 4년을 보냈다. 그런데 4년 뒤에 이 수녀가 요세파 수녀를 보면서 "너, 참 좋은 사람이다." 단 한마디 하고는 그렇게 잘 대해 주었다고 한다.

"수련자한테 4년은 영원과 맞먹는 시간"이라는 장 요세파 수녀는 수도생활 안에서 아무 소리 안 하고 인내하고 지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그렇게 노력하는데, 내 마음을 들여다 보니, 그렇게 웃으면서도 일을 해주면서도 상대방 수녀를 위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진심이 없었던 거지요. 그러니 그 사람과 통할 리 없죠. 그걸 깨닫는 순간 번개에 맞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 수녀가 성격 안 좋은 사람인 것은 맞지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행동을 하면서 속으론 끝없이 비난하는 자만에 가득 차 있던 거죠. 내가 너무나 창피했어요."

그 순간에 예수께서 빵을 나누어 주시며 "이는 내 몸이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항상 일상 속에서 부딛치는 모든 만남 안에서 내면의 소리를 듣고자 하니 심심할 틈이 없었다고 한다. 요세파 수녀는 네스토리우스파였지만 지금도 많은 가톨릭 수도자들에게 존경을 받던 니니베의 이삭의 하느님을 만나면 "파충류조차도 싫어할 수 없게 된다"고 한 말을 인용하며 "인간성을 이해하는 만큼 하느님을 이해하게 된다"고 표현했다.

   

하느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쉽지만..

"하느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쉽다"고 요세파 수녀는 말한다. 이웃과 상관없이, 함께 사는 형제 자매들과 상관없이 착각하고 살기 때문이다. 수행이란 결국 인간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인간들 안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들이 STX기자재공장 유치와 관련해서 거리로 나오게 된 것은 잠시 침묵을 접어두고 사람들 안에서 그분을 만나기 위해서다. 수정마을의 가난한 노인들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그들처럼 똑같은 처지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관상수도원이 갖는 의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느님은 누구이신가?"라는 근본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이제는 현대인들에게 절실한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 그 문제에 여전히 목숨 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돈 없으면 인간도 아니라는 생각에 무심결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요세파 수녀는 "과연 돈 있다고 행복한가?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왜 아직도 돈을 벌고 있는지? 아직, 행복하지 않아서?" 라고 묻는다.

매스미디어가 부추기고 만인이 자동으로 응답하는 맘몬(물신주의)의 가치관이 차지한 세상 한가운데서 관상생활은 더욱 중요하다. "아무리 세상이 못 알아들어도 산 위의 마을에 사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바라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래도 언젠가 빛이 되어줄 날이 있을 것이다"라고 믿고 그저 내 길을 갈 뿐이다.

요세파 수녀는 트라피스트회가 900년이 되었고, 깔멜회가 600년이 되었지만,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그 시대의 흐름을 비껴나 건재한 이유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다시한번 강조했다. 말하자면 삶 자체가 목적인 삶이다. 뚜렷한 목적을 가진 수도회는 세월이 지나면 사라지게 되지만, 존재 그 자체에 주목하는 공동체는 계속 남아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것이다.(끝)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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