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 사진/한상봉

“호 신부님 정도의 간절한 말씀과 눈물어린 호소를 할 수 있는 신부님들은 대체 한국교회에 몇 분이나 계실까요? 실로 호 신부님은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보배요 땅에 묻힌 보물이자 진주이시지요!!! 그리고 계속 우리의 심금을 울리셔서 더 이상 잠들지 않게, 깨어있도록 해주세요. 보배 중 보배이신 호 신부님, 사랑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의 최근 칼럼 ‘자가용과 시내버스’에 ‘눈사람’님이 달아주신 댓글)

세상에! 이렇게 민망하고 쑥스러울 데가 있나. ‘눈사람’이 누군지 조금도 짐작이 안 가지만 지금까지 사제생활을 하면서 내가 받은 찬사 중에 가히 최고 수준이다. 기가 막히다. 아무리 본색을 못 본 때문이라 쳐도 그렇지 나라는 인간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그런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찬사가 슬그머니 내 입을 벌어지게 만드니 이를 어쩌나.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이런 사람도 있는데 왜 누구누구는 나를 몰라주냐는 한탄도 새나온다. 아, 약도 쓸 수 없는 중증 속물이여!

사제생활 34년 차다. 결코 짧지 않은 기간이다. 돌이켜 보면 나는 가는 데마다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사제는 못 되었던 것 같다. 본당마다 문제를 일으키고 미운 털이 박혀 쫓기 듯 떠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눈에 띄는 업적을 남기거나 특출한 표양을 보여 여러 교우들이 작별을 아쉬워한 적도 별로 없지 싶다. 나는 잘하는 강론은 신자들이 좋아하는 강론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필요한 강론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고, 사제는 신자들의 인기에 연연하기보다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것은 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씀을 명심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든 교우들의 마음에 쏙 드는 본당사제 생활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듯하다. ‘가’가 좋아하면 ‘나’가 싫어하고 ‘다’가 박수를 치면 ‘라’가 눈을 흘겼다. 그럴 때마다 예수님도 모든 이들에게 환영을 받았던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다독거렸지만 그런 자위가 나의 생각과 행동거지를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의 뒷심은 되지 못했다.

본당사제로 정해진 임기 동안 옳은 일을 옳게 하면서도 모든 교우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을 수는 없을까? 어떻게 하면 노무현을 지지하는 교우들과 이명박을 지지하는 교우들에게, 조선일보 구독자와 한겨레신문 구독자에게 함께 갈채를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과 맘몬을 섬기는 전혀 다른 두 부류의 사람들에게 공히 아멘! 하고 외치는 함성을 들을 수 있을까? 5만원 낸 아이와 5천원도 없는 아이가 어깨동무하고 여름캠프에 가게 할 수 있을까? 하느님은 착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볕과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라 했거늘....

생각해보니 애초부터 나는 도무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을 목표랍시고 세워놓고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끌탕을 하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소신학교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사제의 임무라는 가르침도 크게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유언처럼 남겨주신 쪽지편지에 노인들부터 아이들까지 많이 사랑하고 강론 준비 열심히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잘 듣고 열심히 믿고 살도록 도와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나 그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시건방을 떨었던 게 결정적인 나의 불찰이었다.

이제는 누가 봐도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적은 나다. 전에 비해 몇 배나 게으르고 구태의연한 거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지금도 나는 예수님처럼 우리의 이웃,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살려고 애쓰는데 누군가가 등 뒤에서 욕을 하고 비난을 퍼부으면 억울해서 방방 뛴다. 그게 오해에서 비롯되었을 경우는 더욱 못 참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이해시키고 동조를 얻고 싶은데 화부터 난다. 아직도 다하지 못한 숙제다.

호인수(신부, 인천교구 고강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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