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영화 '하모니' 음악감독, 신이경 씨

청주교도소의 재소자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하모니'. 윤제균 감독 사단인 강대규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교도소에서 아기를 낳은 정혜(김윤진 분)가 18개월이 지나면 입양보내야 하는 아이를 위해 합창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전직 음대교수 출신의 지휘자로 등장하는 문옥(나문희 분)과 의붓아버지에게 폭행당하다 살인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유미(강예원 분)를 마음으로 만나는 과정이 그려진다. 절대 음치였던 정혜는 합창단 연습을 통해 목청이 터지고, 문옥은 20여 년 동안 손에서 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만지게 되고, 성악과를 나왔다는 유미는 정혜와 문옥을 통해 상처가 치유되어 소프라노로 합창단을 빛낸다.   

이 영화가 합창단을 소재로 하는 만큼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여기서 음악감독을 맡은 신이경(엘리사벳) 씨를 만나보았다.

신이경 감독은  본래 피아니스트로서 2001년에 피아노 솔로앨범 1집 ‘비오는 숲’과 2005년에 2집 ‘포옹’이란 음반을 냈다. 그리고 오랜 친구이자 동료였던 이병우 음악감독이 만든 영화음악 ‘그들만의 세상’(1996), ‘스물넷’(2001), ‘마리이야기’(2001), ‘장화홍련’(2003),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2003),'연애의 목적(2005)','분홍신(2005)','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2005)', '왕의 남자(2005)'에 조감독으로 참여해 왔다. 현재도 이병우 음악감독과 함께 뮤직도르프를 운영하고 있는 신이경 감독은 2007년에 '가면'을 통해 음악감독으로 데뷔했으며, 이번에 '하모니'를 통해 두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는 '하모니'에서 음악을 통해 여성재소자들의 희망과 소통을 천착해 들어갔다.

▲ 신이경 감독이 작업실로 쓰고 있는 뮤직도르프에서.

이 영화에서 테마로 쓰인 곡은 '비오는 숲' 앨범에 들어있는  '햇빛이 내린다 (In the Shower of Sunlight)의 변주곡들이었다. 신이경 감독의 ‘비오는 숲’에 나오는 곡은 대체로 우울한 처연함이 배어 있는데, 유독 이 곡만은 밝은 톤을 지니고 있어서, "재소자들의 암울한 현실을 비추는 햇살같은 음악을 넣고 싶었다."는 말이 간절해 보였다. 

재소자들처럼 신이경 감독의 음악은 상처에서 멀리 있지 않다. 상처를 온전히 드러내며 젖어드는 '비오는 숲의 나무'들처럼 말이다. 나무들은 비가 오면 나무 기둥의 짙은 빛깔과 그 어두운 무늬들로 가장 처절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낳는다. 여기서 신이경 감독은 비가 오면 "늘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고 하는데, 나무들에게서 일생을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지키고 서있는 지독한 순종을 보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서 "감춰있던 내면의 혹독한 상처와 정화된 영혼이 비로소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을 본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비가 곧 음악이며, 음악은 비오는 나무였다. 그리고 그 매개는 피아노였다. 문옥이 교도소에 들어와서 20년 만에 처음으로 강당에 놓여 있는 피아노에 손을 대던 장면은 자아의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던 자신과 만나는 순간을 잘 포착하고 있다. 또한 징벌방에 갇혀서 아픈 목소리로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던 유미가 상처를 어루만지며 울었던 자리도 피아노 앞에서였다. 한바탕 싸우고 찾아온 유미에게 문옥이 말한다. "내가 우리 아이하고 늘 치곤 하던 곡이 있었지"하며, 딸네미와 그러했듯이 유미와 함께 피아노에 앉아 슈만의 트로이 메라이를 연주한다. 그래서 상처입은 재소자들의 슬픈 주제곡 같았던 솔베이지의 노래가 영화 후반부 대공연장에서는 클라이막스곡이 되어 "음악으로 치유된 승화된 슬픔이 되었다"고 신이경 감독은 말한다. 피아노 그리고 음악은 유미나 문옥에게 "닫힌마음을 열고 비로소 사람들과 소통하는" 매개가 되는 것이다. 신 감독은 솔베이지의 노래를 다시 번역해 삽입했다.

▲ 영화 '하모니의 한 장면, 유미
한겨울 지나고 봄 돌아오면 봄 돌아오면
그 여름이 시들어 세월흐르네 세월흐르네
그대 돌아오리라 오리라 오리라 나의 그대여
나 기다리겠네 우리 약속했듯이 그대 기다리리

하늘은 항상 그댈 도와주시리 그댈 도와주시리
마음 모아서 기도드리면 도와주시리
그대 올때까지 나 기다리네 나 기다리네 

덧붙여 신이경 감독은 피아노가 이미 국민악기가 되었고,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특별한 수단이 된다는 것을 지적했다. "요즘은 어느 집이나 피아노가 있지요. 아이들은 어린시절부터 피아노를 접하고, 피아노를 배우면서 혼쭐도 나고, 그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엄마들은 자신이 배우지 못한 피아노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아이들을 닦달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이들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면서 피아노를 중도에 포기하지만, 더러는 대학에서 피아노를 계속 배우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 사람들은 또 또래 중에서 외국에 유학간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한번 더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 절망과 아픔이 피아노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죠. 이 영화에서는 어린시절의 그 피아노가 주었던 절망 가운데서 소통의 고리를 찾아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어렵사리 만든 합창단이 부르던 노래는 '현실에 대한 전복'이었다. 암울한 재소자의 삶을 뒤집을만큼 경쾌한 노래였다. 이문세가 부른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이란 노래였다. 

▲ 교도소에서 아이를 분만한 정혜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돈보다 더 귀한 게 있는걸 알
게 될 꺼야 사랑놀인 그다지 중요하진
않은 거야 그대가 마음먹은 대로
이 세상 살아가다 보면 슬픔 보단
기쁨이 많은걸 알 게 될 꺼야 인생이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중요해 얄미웁게
자기가 맡은 일들을 우리가 맡은 책임을
그대가 해야 할 일을 사랑해요 어둔
밤하늘 날으는 밤 구름 아침이 되면
다시 하얗게 빛나지 새로웁게


이 영화를 보게 되면, 우리는 여러번 눈시울이 젖는다. 합창단 공연이 성공해서 정혜는 아들 민우와 외출을 허락받지만 그날은 곧 민우를 입양 보내야 하는 날이었으며, 서울에서 큰 공연을 앞두고 벌어진 몸수색 과정에서 재소자들은 너무 쉽게 범죄자로 몰린다. 그리고 유미가 상처를 딛고 엄마를 다시 만나고, 사형수의 자식이라는 수치심에 웅크렸던 자식들을 다시 만나 잠을 청하는 문옥. 이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가장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다. 문옥의 사형집행이다. 문옥은 집행을 예감하는 순간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묵주를 거머쥐고 어쩔줄 몰라 하면서도 오히려 남은 자들을 위로한다.    

이 슬픔에 대해 신이경 감독은 "저는 눈물을 통해 많은 치유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며 많은 눈물을 흘릴때 마치 죄가 씻겨져 나가는 것 처럼 가벼워지잖아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며 많은 관객들이 울길 바랬고 극장을 나갈때는 치유된 마음이 이제 선해지고 따뜻해져 있음을 느끼길 바랬습니다."라고 말한다.

정혜가 아들과 헤어질 때는 "눈치안보고 맘껏 울수있도록 최대한 비통하고 비극적인 선율로 밑바닥을 치는 깊은 슬픔으로 가게 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신이경 감독은 지휘자였던 문옥이 사형집행을 받으러 떠나갈 때 정적 속에서 가느다란 피아노 선율 하나가 힘없이 따라가게 했다. '하모니'라는 영화의 메인테마인 '햇빛이 내린다'를 "슬퍼도 슬프지 않은 것처럼, 마치 가장 행복한 곳에 있는 것처럼 편곡했다"고 말한다. 그녀는 슬픔이 갖는 치유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의 제목이 '하모니'인 것은 음악을 통해 재소자들이 갈등하고 다투던 현실을 중단하고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으며, 유미와 문옥처럼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엄마와 또는 자식들과 화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어쩔 수 없는 슬픔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 슬픔을 통해 더 깊이 사랑하는 길을 열어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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