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7일(사순 제3주일) 탈출 20,1-17; 1코린 1,22-25; 요한 2,13-25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2코린 6,16)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성전

가장 아름다운 성당은 어디일까요?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피렌체 대성당, 프랑스의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의 쾰른 성당, 스페인의 세비야 대성당, 그 밖에도 영국 성공회의 켄터베리 대성당, 우크라이나 키예프 동방 정교회의 성소피아 대성당 등을 꼽습니다. 또한 성지 중의 성지인 이스라엘의 예수님 공생애를 살펴볼 수 있는 성당들도 있습니다. 예수님 탄생 성당, 카나의 혼인 성당, 겟세마니 성당, 주님 무덤 성당 등입니다. 저도 여행이나 성지순례를 통해 가 본 곳도 있습니다. 예술과 역사를 간직한 이런 유서 깊은 성당은 모든 사람이 가고픈 곳입니다. 성당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 지정된 거룩한 건물로서 미사나 전례에 참여하기 위해 모이는 장소이며,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이 거처하는 장소입니다.

넓은 의미에서 성당은 하느님 경배를 위해 지정된 모든 건물, 대성전, 경당, 사설 예배실 등도 이에 포함됩니다.(가톨릭 대사전) 그런 성당의 기원은 구약시대 성전에서 시작됩니다. 성전은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꼽힙니다. 기원전 20세기 무렵 아브라함이 떠난 메소포타미아에는 각 도시마다 수호신을 모시는 성전이 있었고 신의 축복과 보호, 다산과 풍작을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반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족장들은 특별한 성전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는 어디에나 현존하시고, 그렇기에 하느님이 나타나신 곳에 제단이나 돌기둥 같은 것으로 기념할 따름이었습니다.(창세 28,22)

역사의 성전

그런데 가나안 정착 후 이스라엘 12지파가 합쳐져 부족에서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통일 민족의 구심점이 될 만한 성전이 필요했습니다. 광야 시대부터 가나안 정복기, 판관 시대에는 성막이 그 역할을 했고,(탈출 25)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한 지 약 300여 년 만인 968년 솔로몬 성전이 지어졌습니다.(1열왕 6,37-38) 솔로몬 성전은 즈루빠벨 성전, 헤로데 성전과 함께 성서 시대의 세 성전이라 일컬어지는데 강대국의 침략으로 숱한 약탈과 파괴의 시련을 겪었습니다. 오늘날 예루살렘 옛 도시 동쪽 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이슬람교 성전인 알아크사 모스크가 있습니다.

성전의 역사는 인류의 정치, 경제, 문화 발전과 맥을 같이합니다. 수많은 아름다운 종교 음악과 예술, 성화와 성상의 집합체이자 신앙이 표현되고 고백되는 장으로 존재하고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성당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신앙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문명과 국가 간 갈등과 전쟁 속에서 파괴의 우선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예루살렘은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 3개 종교의 성지로서 통곡의 벽, 알아크사 모스크, 주님 무덤 성당이 공존하며 자연스레 종교적 긴장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1898년 5월 29일 완공한 주교좌 명동 대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주교좌 명동 대성당이 준공된 뒤 그 지하 묘역에는 기해 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왔다.<br><br>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입국해 1839년 9월 21일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는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의 형을 받은 뒤 한강변 모래밭에 매장됐었다. 순교한 지 약 20일 후 신자 7-8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 분의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서강대학교가 있는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 그 후 유해는 1843년에 삼성산으로 이장됐다가 1901년에 이곳으로 모셔졌다.<br><br>(명동성당의 역사, 사적지로서 명동 대성당) ©️이주형<br>
1898년 5월 29일 완공한 주교좌 명동 대성당은 순수한 고딕 양식 건물로 그 문화적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사적 제258호로 지정된 주교좌 명동 대성당이 준공된 뒤 그 지하 묘역에는 기해 병인박해 당시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의 유해를 안치해 왔다.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입국해 1839년 9월 21일 순교한 앵베르 주교와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는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의 형을 받은 뒤 한강변 모래밭에 매장됐었다. 순교한 지 약 20일 후 신자 7-8명이 죽음을 무릅쓰고 세 분의 유해를 거두어 지금의 서강대학교가 있는 노고산에 4년간 매장했다. 그 후 유해는 1843년에 삼성산으로 이장됐다가 1901년에 이곳으로 모셔졌다.

(명동성당의 역사, 사적지로서 명동 대성당) ©️이주형

신앙의 표현, 정성과 사랑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종교의례가 진행되지만 전례 거행을 위해 여전히 성전(또는 성당)은 중요합니다. 또한 안전과 효율성을 위한 공간이자, 지역의 이웃들이 소통할 수 있고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연한 공간이 될 필요도 있습니다. 또한 노후화를 대비한 리모델링, 신축과 같은 부분도 합리적으로 고려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종교 본연의 의미 안에서 성전은 이해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려는 이들, 침묵 속에서 거룩한 전례에 참여하려는 이들에게, 그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인 성사의 집전 장소로서 성전은 언제나 가장 확실한 표징입니다.

한 가지 더 제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성전은 시대와 역사 속에서 빚어진 아름다움, 예술, 시대의 정신과 혼, 가치들, 역사와 신앙의 숨결이 녹아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역사의 고난과 아픔도 아로새겨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전이 훌륭한 잘 관리된 건물로만이 아니라 우리의 정성과 마음이 담긴 소중한 공간으로 간직되면 좋겠습니다. 용역업체만 청소하고,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줍지 않는 그런 곳이 아니라, 또한 폐쇄되고 고립된 고층 건물이 아니라 모두의 진지한 관심과 애정이 닿는 곳, 그래서 그 안에서 서로 따스하게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신분과 처지를 넘어 서로 사랑을 나누는 그런 공간으로 말입니다. 그런 우리의 마음과 정성, 손길과 사랑이 녹은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부활이 담긴 희망과 믿음도 그 안에 충만하면 더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느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떻게 뜻을 같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이르신 그대로입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 가운데에서 거닐리라.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2코린 6,16)

 

이주형 신부(요한)

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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