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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만들기[기고] 이원규 시인이 노숙인에게-2
  • 이원규 ( . )
  • 승인 2010.02.21 14:18 | 최종수정 2010.02.2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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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한상봉

핸드폰 문자는 상대방 배려 없어

대안학교에서 아이들한테 글 쓰는 자세를 가르치는데요. ‘글짓기’는 거짓말이다. 글은 쓰는 것이다. 사는 만큼 쓰는 것이다. 보고 알고 깨달은 만큼만 옮겨 적어라. 모르는 것은 쓰지 말든가 모른다고 써라. 아니면 물음표를 붙여라. 이런 것들이 글쓰기의 기본이거든요. 어린 아이라도 쓸 게 너무 많아요. 쓸 게 너무 많은데 엉뚱한 걸 쓰려니까 안 되고 글 쓰는 게 생활화되어 있지 않아서 못 쓰는 거지, 감동적인 일은 너무 많아요.

밥 먹는 것 가지고도 책 한 권을 쓸 수 있어요. 그대로 베껴 적어도요. 밭에서 농부가 타작하는 게 생각나고, 그러다보면 농사짓던 우리 아버지가 생각나고, 이런 걸 모두 받아쓰면 나만의 밥상에 대한 글이 탄생해요. 베껴 쓰는 게 99%고 1%가 내 생각이에요.

예전 사람들은 편지를 많이 주고받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핸드폰으로 문자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문자는 몇 글자 안 되잖아요. 그러다보면 너무 요약이 돼서 시도 아닌 것이 이상한 말이 돼요. ‘연락주삼’ ‘밥먹었삼’ 같은 핵심만 들어간 말. 그건 사람을 귀찮게 하고 감시하는 듯한 게 돼요.

‘너 뭐하냐, 왜 연락 안 하냐.’ 협박하는 듯한 게 돼요. 직설적으로 가슴에 와서 콕콕 찔러버리니까요. 옛날의 편지는 안 그랬어요. 써서 상대가 받는 날짜가 빠르면 3일이에요. 쓰는 자세가 달라요. 답장이 오는 게 빠르면 일주일이에요. 더 집중하지요. 편지를 쓰다 보면 상대가 보면 기분나쁠까봐 고치고 또 고치고, 감정도 누르고, 그러면 상대가 편지를 받았을 때 ‘아 이 사람이 화가 많이 난 줄 알았는데 화를 많이 참네. 정말 고맙네.’ 이렇게 돼요.

저는 싸움닭으로 많이 살아왔는데, 싸움만 가지고는 해결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일시적인 승리도 했었고, 주로 패배를 많이 했지만요. 저는 주로 약한 쪽에 붙었어요. 제 태생과 체질이 그러니까요.

지리산 둘레길 만들기

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을 돌아다녔어요. 한 70만km는 돌아다녔어요. 전국에 찾아가지 않은 당산나무가 없습니다. 시골의 웬만한 좋은 당산나무 그늘에 텐트 치고 안 자본 데가 없습니다. 이번에 서울 올 때에는 오토바이를 안 타고 왔어요. 서울에 눈도 많이 왔다고 했고, 서울은 좀 무섭거든요. 시골은 어딜 가도 경치도 너무 좋고 다 아름다워요.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다 달라요. 말씨나 생활상이 다 달라요. 사람들도 다 다르고요.

지금 저는 지리산의 마을 100개를 잇는 둘레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요. 이 일을 2004년에 처음 제안했는데요, 이 일에 산림청이 돈을 많이 들고 오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순수하게 걷는 길을 만드는 데 35억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돈을 안 만지던 제 후배들이 돈을 만지니까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문제가 있었던 사람 다 그만두게 하고, 돈 필요 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지방자치단체와 산림청과 이야기해서 ‘걷는 사람’의 입장에서 길을 만들자고 했어요. 수동적인 길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우리가 만드는 길이요. 지금 관광이 된다니까 제주도 올레길부터 해서 전국에 난리가 났는데요. 제주도 올레길은 돈 안들이고도 모범적으로 잘 했어요. 그런데 지리산의 걷는 길은 관광하러 오는 길과 달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리산을 한 바퀴 돌려면 아무리 빨라도 20일이 걸리거든요. 20일이라면, 인생의 전환기가 온 사람, 예를 들면 퇴직을 했다든가 하는 사람들이 와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 생각해 보는 길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수행자의 입장으로 오라는 것이지요.

지리산, 불복산(不服山)

한국전쟁이 1953년에 끝났는데, 지리산에서 전쟁 청소가 끝난 것은 1963이나 되어서였죠. 그래서 지리산은 전쟁의 흔적이 가장 오랫동안 남아있던 곳이기도 해요. 역사적으로 보면 이성계가 고려를 정복하려고 할 때 지리산에서 기도를 올렸는데 지리산이 기도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이성계 이후의 피의 냄새를 맡은 거예요. 그래서 나중에 이성계가 지리산에 명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어요. ‘불복산.’ 그리고 지리산 근처의 인물을 쓰지 말라고 교지를 내릴 정도였어요.

그때부터 지리산 부근에는 정치적 차별이 있었지요. 그리고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시도하다가 실패했을 때도 사람들이 숨을 수 있는 가장 큰 산이 지리산이었어요. 제주4.3사건, 여순사건 등 한국전쟁 전에 지리산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어요. 제가 지리산 마을들을 많이 가봤는데 가본 곳마다 학살을 안 당한 곳이 없어요. 한국전쟁 후에 빨치산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바비큐 작전이라고 해서, 공중에서 기름을 뿌려서 지리산에 불을 질러버렸어요. (계속)

이원규 (경북 문경 출신으로 노동해방문학 창작실장, 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중앙일보 및 월간중앙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지리산에 입산해서 12년째 살고 있다.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버림으로써 가벼워지고 비움으로써 여유로워진다고 하며, 쉬지 않고 걷고 걸어 손이 아닌 발로 시와 편지를 쓴다. 최근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생명평화순례에 나서기도 했다. 제16회 신동엽 창작상과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강물도 목이 마르다>,<지리산 편지> 등의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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