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 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 “내년에도 일할 수 있게"
여성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의 기록

엘지트윈타워 청소 노동자 30여 명은 지난 12월 16일부터 ‘트윈타워 내 고용유지’를 요구하며 철야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직장 내 괴롭힘에 맞서고자 2019년 노조를 결성했고, 1년 2개월 뒤, 용역업체 교체를 이유로 집단 해고됐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현장에서 듣고 기록한 내용을 기고 받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싸우는 여자들의 활기로 가득 찬 농성장

2020년 12월 16일, LG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이 집단해고 철회와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LG트윈타워 로비에서 파업 농성을 시작한 날, 처음으로 농성장을 방문하게 됐다. 그 짧은 방문 중에도 농성장 분위기는 인상적이었다. 조합원들의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고, 대중가요 가사에 자신들의 요구를 담아 열심히 유쾌하게 노래를 부르느라 흥이 넘쳤다.

두 번째로 농성장을 찾은 날은 12월 21일. 저녁 농성 당번인 조합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10년 동안 야간조(오후 9시 출근)에서 근무하던 이순예 조합원, 주간조(오전 6시 출근) 4년차 최명자 조합원, 8년차 안진숙 조합원, 세 사람은 앉자마자 이야기를 쏟아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여기 와야 동료들 얼굴 보고 농담도 하고 수다도 떨고.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고 노조를 하니까요. 감독이고 소장이고 뭐라 하든, 너무 재밌어요. 그냥 노래만 나오면 그저 흥분되고. 요즘은 머릿속에 노조 생각밖에 없어요.”(안진숙)

“악에 받쳐 살다가 그래도 우리가 같이 이겨야지.”(이순예)

노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들은 어떻게 “노조 생각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생활임금보다 사람 대접받는 게 더 속 시원하고, 징글맞게 갑질 하던 감독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된 듯 아무 소리 못하는 게 더 신이 난다고도 했다. 노조 덕분에 ‘존엄한 사람’으로 새로 살게 된 기쁨이 농성장의 에너지로 표현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들은 적어도 70까지는 일하고 싶고, 거뜬히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엘지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은 '갑질'에 저항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고, 1년 뒤, 청소의 질이 떨어져 용역업체를 바꾼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속했던 용역업체는 엘지 구광모 회장의 고모들이 운영한 가족 회사였다. (사진 출처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엘지트윈타워 청소 노동자들은 '갑질'에 저항하기 위해 노조를 만들었고, 1년 뒤, 청소의 질이 떨어져 용역업체를 바꾼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속했던 용역업체는 엘지 구광모 회장의 고모들이 운영한 가족 회사였다. (사진 출처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노동관리 : ‘감독’들의 갑질

“여기는 전에 다니던 데처럼 성추행 같은 건 없는데 갑질을 너무 하는 거에요. 처음에 딱 왔는데 소장이 대통령보다도 더 이거야(엄지손가락을 세운다). 방에 뺑 둘러앉아서 고개 한 번을 못 들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한번은 싸움이 난 거에요, 여사님들끼리. 그런데 누가 그랬냐 하고 물어봐도 50명이 누구 하나 말 한마디를 못하고 다 벌벌벌 떨어.”(안진숙)

두 시간을 거의 다 채운 인터뷰는 내내 이들이 참고 견디던 순간들에 대한 ‘증언’으로 채워졌다. 조합원들이 ‘갑질’이라고 부르는 관리자들의 횡포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찍 소리 못하고 듣기만 하던 소장의 훈계나 5년 동안이나 입만 떼면 욕설을 퍼붓던 남자 감독(중간 관리자) 이야기는 상상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그 감독은 어깨에다 힘을 딱 주고. 오십서넛 정도밖에 안 됐는데도 입만 떼면 ‘00년’. 한번은 조합원 한 분이. 바지락 칼국수를 먹고 나서 갑자기 한밤중에 탈이 난 거에요. 조개가 잘못됐는지 응급실에 119 불러 가지고 가서 일주일을 못 나왔어요. 관리자라면 전화 한 통이라도 해서, 좀 몸이 어떠십니까. 인사라도 해야죠. 근데 “이 00년이 뭘 처먹고 배탈이 나서 나오지도 않아” 그러는 거야. 또 다른 사람이 아프다고 전화를 하니까. “00년이 말이야. 전화할 기운이 있으면 기어 나와서 일을 하지” 이러지를 않나.”(안진숙)

사실 엘지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의 이런 경험을 개인의 ‘갑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괜찮은가 하는 고민을 인터뷰 내내 하고 있었다. 관리자들의 횡포를 회사는 정말 몰랐을까? 만약 알았다면, 왜 회사는 모른 척 내버려 두었을까. 노동자들이 움츠러들어 있는 편이 회사에게는 이득이 될 테니, 노동관리의 방편으로 활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노동관리’라고 부르는 게 훨씬 적절해 보인다. 억압적 노동관리는 조직적이고 환경적인 ‘일터 괴롭힘’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우리의 경험에 제대로 이름을 붙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붙여진 이름에 따라 걸맞는 대응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갑질을 해대는 관리자는 몰아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회사가 그를 내보내 주지 않는다면? 폭력적인 관리자를 내세워 노동관리를 하는 회사에 대한 대응은 관리자 하나를 내보내는 것과는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

열등하고 존중할 가치가 없는 존재로 만드는 일 : 괴롭힘

‘괴롭힘’(harassment)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원치 않으리라고 간주되는 위해적인 행위”다. 별 의도 없이 툭 던진 말이어도 그 말을 듣는 이가 모욕을 느꼈다면, 괴롭힘이라고 판단해야 한다. 피해자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가 가해자(가해집단)의 고의성과 의도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다.

“저는 야간조인데, 저녁 여덟 시에 와서 카페트 흡진을 해요. 네 명이 한 조로 네 조가 있어요. 동관, 서관 나눠 가지고, 한 열다섯 개, 열여섯 개 층을 해요, 네 사람이 저녁 내내. 엄청 넓어요, 우리가 카펫 청소를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야근하는 사원들이 과자도 먹다 흘리고, 왔다 갔다 하면 발에서 모래 같은 거 떨어지잖아요. 그러면 여자 반장이 바로 ‘기계 끌고 몇 층으로 오세요!’ 이게 뭐냐고, 다시 하라고, 저희가 눈 붙이고 자고 일어나서 간식이라도 먹으려고 하면, 자기는 자야 된다고 방에 불을 못 켜게 해요. 어두운 데서 밥을 먹었어요. 그러면 비닐 소리가 나잖아요? 그러면 아유! 시끄럽다고, 비닐 소리 난다고.”(이순예)

이순예 조합원이 근무하는 야간조에는 상대적으로 노동조합에 가입한 조합원이 적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주간조에서 거부한 왁스 작업을 야간조가 하기도 한다.

“왁스는 특수한 작업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가 없는 작업인데 회사에서 시킨 거죠. 회사는 약품과 도구만 사서 지급하고, 우린 노동 대가도 못 받는 거야, 여기는 양쪽에 식당 바닥 왁스를, 우리 주간 여사님들이 토요일 아침에, 3개월마다 한 번씩 했어요. 그거 하면 점심도 안 줘요. 천 원에 몇 개짜리 빵 하나씩, 우유 200미리 하나씩 주고. 우리가 노조를 하고 나서 계산을 해 보니까, 자기네들은 업체에서 평당 얼마씩 하고 일을 땄을 거 아니에요. 그런데 자기들은 재료만 사 주고 노동은 우리한테 시켰잖아요. 돈은 자기네들이 다 받아먹고 우리는 최저임금, 약속한 그것만 주는 거에요. 주간은 고객들도 많고 보는 눈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한테 막 못해요. 주간조가 ‘못 해 우리는!’ 하니까 야간은 사람도 없지. 고객들도 없지. 그러니까 그걸. 야간에 시킨 거지.”(최명자)

노조 조합원들에게만 힘든 주차장 팔레트 청소를 배당해 주었던 일도 노조 활동을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이자 과중한 업무로 압박을 가하는 괴롭힘이다.

“비노조원들은 따뜻한 층에서 일하게 하고, 우리는 그 엄청 큰 주차장 빠레뜨를 다 닦아야 됐어요. 빠레뜨라는 그 쇳덩어리. 우리가 작동을 해서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머리 위에 차가 쫙~ 있는 그 속에 들어가면, 차가 위에서 뚝 떨어질 것만 같은 거에요. 남자들도 무섭고 힘들어서 한 달을 못 버티고 나가는 곳을 우리 여자 셋을 보낸 에요. 보호장비도 주지 않고, 지난 겨울에는 발이 너무 시리고 아픈 거에요. 참 많이 울기도 하고.”(이순예)

일터괴롭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터괴롭힘과 관련된 행위들에 ‘우연적, 우발적’이라는 말보다 ‘체계적, 구조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소수자(여성, 이주민, 비정규직 등)인 경우가 많고, 괴롭힘은 노동 여건이 열악하거나 사회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조건의 주변화 된 노동자들에게 더욱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고용 승계,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이들은 회사 로비에 감금된 것과 마찬가지인 채로 싸우고 있다. 이들은 밥과, 전기, 물이 끊겨도 싸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진 출처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고용 승계,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이들은 회사 로비에 감금된 것과 마찬가지인 채로 싸우고 있다. 이들은 밥과, 전기, 물이 끊겨도 싸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진 출처 =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청소노동은 어느 자리에 있는가

“처음에 (청소 일 알아보러) 소개소 사무실을 갔는데, 이런 일을 안 할 것 같다면서 안 쓰려고 해요. 그래서 일주일만 딱 지켜보세요. 제가 못하면 나가겠습니다. 그랬죠. 그런데 일을 작정하고 온 것 같아서 시켰대요. 그런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나는 이 청소를 하면서 한 5년 정도는 정말 창피하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어깨에다 힘을 팍 주고 다녀서. 고객들한테도 마음속으로 그러죠. “내가 청소하는 아줌마같이 네 눈에는 보이지만 내가 저 현관문만 열고 나가면 내가 더 잘 살아” 내가 깨끗하게만 해 놓으면 아무 문제가 없고 정신적으로 신경 쓰는 게 없으니까 이 일이 너무 좋은 거에요. 그래서 내가 창피하다는 생각도 안 하고 재밌게 했어요.”(안진숙)

청소업무가 마음이 편했던 것은 아마도 사람들에게 덜 시달렸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가 무역회사를 다닐 때보다 신경 쓸 일이 적고, 깨끗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안진숙 조합원은 툭 던지듯 말했다.

“근데 시간이 가다 보니까. 내가 너무나 거만했었구나. 한 5년 정도 지나니까 지금에 와서 고객들이 보면 부끄러운 것도 알게 되고. 어떨 때는, 명절 때 돈 봉투라도 주면, 아 저 사람이 내가 청소를 하고 그러니까 좀 불쌍해서 나한테 봉투를 주나 이런 생각까지도 들었어요. 제가 어떨 때 낮아지냐면. 전철을 타러 가면 그 여사님들이 청소하는 걸 보는데, 다른 사람들도 저런 눈으로 나를 보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낮아지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청소한다는 소리 안 해.(웃음)”(안진숙)

호방하고 당당한 진숙 씨가 자기 마음이 오그라들었다는 말을 너무 무덤덤하게 웃으며 했기 때문일까. 숙연하기도 하고 서늘하기도 한 공기가 갑자기 훅 느껴졌다. 머릿속에는 그이의 말이 맴돌았다. 진숙 씨의 마지막 이야기는 청소노동을 좋아했던 노동자가, 끝까지 당당하고 싶었지만, 왜 그럴 수 없는지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그의 말마따나 낮은 자리에 청소노동이 있다. 어쩌면 일터괴롭힘이 지속적으로 청소노동자들에게 벌어지는 이유는 이 사회가 청소노동의 자리를 이미 정해 놓았고, 그 자리를 바꿀 마음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기 때문이 아닌가.

진숙 씨가 간파한 청소노동자의 자리에 대한 세간의 시선이, 그 시선을 만들어내는 어떤 힘이, 엘지트윈타워분회 조합원들과 다른 사업장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괴롭힘 경험을 닮은 꼴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청소노동자들이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비슷한 괴롭힘과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서울중앙우체국 청소노동자, 대한항공 기내청소노동자, KBS와 부산지하철 청소노동자들이 우리를 ‘사람’으로 대하라는 요구를 하며 싸우고 있다. 이들 노동자들이 저항할 수 있는 힘의 뿌리는 바로 노동조합이라는 조직과 조합원 동료들과의 유대관계다. 지금 싸우고 있는 모든 청소노동자들이 내년에도 일할 수 있게, 아프지 않다면 70살까지 일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고용승계와 집단해고 철회에 엘지 구광모 회장이 답할 차례다.

림보

'싸우는여자들기록팀 또록'에 참여해 <회사가 사라졌다>를 펴냈다. 노동자로 살면서도 나를 노동자로 부르지 않았던 때, ‘청소년노동인권’이라는 말을 만났다. 인권교육과 일하는 청소년의 인권문제에 대응하는 활동을 주로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늘 오리무중. "십 대 밑바닥노동", "체벌 거부 선언"을 함께 썼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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