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선실 천주교여성공동체 전 대표

11년째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의 대표 역할을 맡고 있던 김선실(54) 씨를 '카페-H'에서 만났다. 지난 1월 30일 18차 정기총회에서 박영옥, 우정원 씨가 새로운 공동대표로 선출되었고, 김선실 씨는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하고자 한다. 이 공동체의 창립멤버이기도 한 김선실 씨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천주교여성공동체의 지향과 관심사를 나누어 보았다.

도서관 사서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로

▲ 김선실 천주교여성공동체 전 대표
김선실 씨가 천주교 여성들과 만나기 시작한 것은 1991년 봄 서울 명동 전진상교육관에서 열린 '가톨릭여성신앙강좌'를 통해서였다. 이 강좌는 AFI(국제가톨릭형제회)에서 주관한 것이었는데, 한겨레신문에서 광고를 보고, 교육적 관심보다는 "여기서 가톨릭여성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욕구가 더 컸다.

이당시 김선실 씨는 미국에서 도서관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단국대 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상태였는데, '결혼퇴직제'로 자리가 나서 쉽게 취업한 경우였다. 당시 도서관뿐 아니라 대학의 대부분 여성들이 결혼하면 자동으로 퇴직하는 제도가 있었고, 이 문제는 정작 새로 입사한 김선실 씨에게도 충격이 되었다. 여성으로서 직장 안의 성차별에 눈뜨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1988년에 단국대학 안에 교직원 노동조합이 생기면서 그녀는 도서관 대표로 참가해서 노조설립을 도왔다. 그런데 정작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는 10%밖에 안 되는 여성들의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했다. 다행히 그녀가 교섭위원으로 참여해 학교측에 호봉제 단일화를 이루고, 여성들 역시 근로기준법에 준해서 대우하도록 만들었다.

여성의 눈으로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학교문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영적 갈증을 느끼던 김선실 씨는 1991년부터 '여성신앙강좌'를 듣게 되면서, 새로운 자극에 눈을 뜨게 된다. 개신교인이었던 안상임 선생에게서 '여성과 성경'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여성의 눈으로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배우고, 여성신학(feminist theology)을 접한 것이다.

그녀는 대학시절에 '대학생성서모임'을 시작해서 미국으로 유학을 갈 때까지 만 7년 동안 성서모임에서 봉사를 했지만 이런 관점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성경을 읽으면서도 한 번도 그 안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강좌의 후속모임에는 60명 중 20여 명이 남았다. 이들과 매주 한 번씩 전상교육관에서 <우리와 같은 여성들>이라는 책으로 독서모임을 시작했는데, 참가자가 점점 늘고, 이들은 루카복음을 통독하기도 하고, 여성신학자로 알려진 로즈마이 류터나 레티 러셀 등의 신학을 공부했다.

이 모임이 모태가 되어 '가톨릭여성신학모임'을 만들어 회비도 자발적으로 모으고, 당시 김승오 신부가 추진하던 '우리밀살리기운동'에 출자도 했다. 다음해인 1992년 6월부터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자고 해서 준비모임을 시작해서 1993년 4월에 60여 명이 모여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를 창립했다. 그 과정에서 일년에 한번 씩 헬렌 그레함 수녀를 초청해 여성신학도 배우고, 한참 논란이 되었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관여했다. 성탄절에는 여성전례도 만들어서 봉헌했다.

▲ 2008년 부활피정(사진출처/천주교여성공동체 홈페이지)

평신도 여성 중심, 실천활동 겸하는 공동체

당시 여성공동체를 준비하면서, 먼저 '가톨릭여성의 정체성'을 먼저 생각했고, 주교회의나 교구 등 교회 제도권에 소속되지 않는 자율적 조직으로 가자고 합의했다. 이 공동체는 평신도 중심이어야 하고, 실천활동을 겸하는 여성단체여야 했다. 그들은 모여 살지는 않지만, 단체의 차원을 넘어서는 의식의 차원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싶어했다. 이때 창립총회를 준비하면서 만든 '여성의 기도'는 아직도 사용된다.

여성을 창조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느님,
모든 여성이 여성됨을 은총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을 위해 기도합니다.

이 사회에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하여
그 부조리가 삶의 곳곳에서 아픔으로 다가와도
하느님의 모상대로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깨닫기에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평등을 추구하는 여성이게 하소서.

일상의 흐름 속에 안주하는 삶이 아니라
이 사회의 주체로 서서
모든 사회 현상과 문제를 직시하고 고민하며
맑은 의식으로 깨어 사는 여성이게 하소서.

무관심의 벽을 헐고
소외된 이웃의 삶을 함께 나누며
가난하고 외로운 이들 가운데서
하느님을 발견하게 하소서.

역사와 이 사회의 구조악에 희생된
여성들의 고통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주시고
이 세상의 모든 아픔을 더불어 치유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듯
우리 여성들을 성령으로 항상 새롭게 이끄시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사도로서
새 세상을 열어가는 예언자로서
희망으로 여성공동체에 투신하게 하소서.

아멘.

새 세상을 여는 여성공동체는 여성 스스로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자기성장을 위해 노력하며, 깨어난 여성으로서 자신과 같은 여성들의 문제를 돌아보고, 그들과 연대하며, 이를 통해 교회쇄신과 사회정의를 이루자는 목표를 세웠다. 자기 자신에서 시작해 교회와 세상으로 자아를 확장해 가자는 것이다.

스스로 여성됨을 자각하기 위해, 공동체에서는 먼저 여성의 눈으로 성경을 보자는 취지에서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라는 책을 공부한다. 여기서 만나는 12명의 성경 속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나 자신과 여성을 응시하는 것이다.

이 교재를 처음 만드는 과정부터 '공동체적'이었다. 6명의 회원들이 성경 안의 2사람씩을 맡아서 연구해 초안을 작성하면, 서로 만나 검토하고 토론해서 수 차례 수정을 거쳤다. 2년 만에 완성된 이 교재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하게" 서술했다. 책 제목을 정할 때에도, 몇 가지 추천된 제목을 사무실 벽에 붙여놓고 회원들에게 투표를 하게 해서 결정했다. 그래서 여섯 사람이 집필했지만, 사실상 모든 회원들이 집필에 참여한 셈이다. 모임은 늘 '소모임' 형태로 진행했다. 회원들이 각자 원하는 주제를 내오면, 그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모임을 시작했다.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든 여성신학을 공부하든 갖가지 소모임이 그래서 생겨났다.

제도적 교회 안에서 갑갑해 하던 여성들이 하나 둘씩 여성공동체로 찾아와..

공동체에서는 그후 '새 세상을 여는 여성강좌'라는 대중강좌를 열기도 하고, 본당으로 찾아가는 강좌를 하기도 했지만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걸 경험했다. 광명, 부산, 성남, 목포, 광주에서도 지역조직을 만든자는 차원에서 모임을 시도해 보았지만 지역 안에서 활동가들이 양성되지 않고, 서울에서 계속 관여할 수도 없어서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본당 여성들은 본당 일 하기에도 바빠서 따로 모임을 꾸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다만 본당에서 일하다가, 제도적 교회 안에서 한계를 느끼고 갑갑해 하던 여성들이 하나 둘씩 주보 등의 공지를 보고 여성공동체로 찾아왔다. 그들은 대개 본당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누구와도 자신이 느끼는 개인적 교회적 문제를 나눌 수 없었다. 여성공동체에 와서야 공감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가부장적인 사회문화 속에서 겪는 아픔을 나누고 새로운 전망을 가졌다.

현재 후원회원까지 합해 200여 명의 회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실제로 소모임 등 활동을 하는 회원은 80명 가량이다. 연령층도 다양해서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40대에 활동을 시작한 회원들은 벌써 환갑잔치를 연이어 열어야 했다. 대개 여성들은 활동이 좀 들쭉날쭉한 편인데, 20대에 열심히 활동하다 결혼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좀 쉬고, 40대에 들어서 다시 활동하기 시작하는 사례가 많다. 그리고 이중에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지만 여성공동체에 접하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여기서는 새로운 신앙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변화의 핵심

2002년부터는 여성공동체 활동 10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고 김선실 씨는 고백한다. 과연 여성공동체를 계속 유지해야 하나? 대중성의 문제도 고민했다. 그러나 여성공동체가 신앙과 사회적 실천을 겸비한 공동체로서 고유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부쩍 성장했음을 깨달았다.

처음 몇년 동안은 사람관계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 MBTI, 에니어그램이며, 파트너십에도 관심을 가지고 되었다. 여기서 깨달은 것이 "내가 변화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내 스타일을 바꾸어야 했다. 이 때에 가장 많이 참고한 책이 라르슈 공동체를 세운 장 바니에가 쓴 <공동체와 성장>이다.  여기서 공동체의 의미를 발견하고 사람들과 나 자신을 들여다 보는 기회를 얻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면서 그 다양한 사람들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김선실 씨는 "그제서야 공동체가 뭔지 알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여성공동체에서 활동하면서 소모임 하나쯤은 언제 놓치지 않고 참여했다. 소모임에서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서로 기도해 주었다. 이러면서 깊은 유대감과 타인에 대한 이해가 생겼다. 소모임은 대중강좌가 줄 수 없는 구체적인 관계와 위로가 있었다. 김선실 씨는 "적어도 1주일에 한번씩 3개월은 만나야 느낌이 온다"며,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고 성령이 주는 끈 같은 것을 깊이 체험했다고 말하며 "아마도 라틴아메리카의 기초공동체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 맛을 깊이 느껴야 여성공동체에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세월과 더불어 영적인 성장이 이뤄짐을 느꼈다. "이게 영성이구나" 예감했다. 그동안 한번도 영성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지만, 이미 영성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신앙에 대해 직접 논하지 않더라도, 현대사를 공부해도 그 안에 성령이 함께 있었다고 믿는다. 그때서야 비로소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이 올라왔다. 

▲ 제18차 천주교여성공동체 전체총회(사진출처/천주교여성공동체 홈페이지)

여성=영성, 한끗 차이

그녀는 여성신학을 하더라도 전통에 기반한 공부가 옳다고 믿는다. 그래서 일단 거기에 젖어보기로 하고, 2003년에 서강대 신학대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여성 영성에 대한 이해-여성신학적 관점에서"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썼다. 여성들은 고유한 문화적 역사적 체험에 따라서  하느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는 가운데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서 나오는 영성은 평등, 평화, 우주적 전망을 갖는다.

김선실 씨는 "그럼에도 교회는 영적 성장을 말하면서 여성의 자각에 대해서는 빼먹고 간다"고 비판하며, 여성의 눈으로 성경을 볼 때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번에 여성공동체의 대표직을 물러났지만, 앞으로는 여성의 영성을 계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수도자들은 그래도 수녀원에서 영적 훈련을 할 수 있지만, 평신도 여성의 경우엔 이런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녀가 파트너십을 공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성의 영성은 심리정서적 통합과 치유적 차원이 배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여성공동체에서 해온 여성전례도 정리해보고, 여성들의 신앙생활에 대한 실증적 연구도 해보고 싶어한다.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김선실 씨는 "공동체라는 말의 뜻도 모르면서 우리는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여성공동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10년이 지나고서야 그 뜻을 알 것 같다. 그만큼 영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공동체를 체험하려면 적어도 2-3년 동안 여기에 머물며 친교를 체험해야 한다. 그래야 참신앙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이 주는 충만함 안에서라야 지치지 않고 기쁘게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특별히 여성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이미 원로회원이 된 나이 많은 어머니들에게 배운 게 많았다고 덧붙였다. 그분들은 배운 게 없고 가정형편도 어려운데, 그분들이 나눠주신 사랑 때문에 항상 가슴이 뭉클해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오는 내적 충만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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