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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담서원의 새로운 실험 '작은 공간의 가능성'[인터뷰] 박성준, 길담서원 서원지기
-최초의 발상에 누구나 참여하는..즉흥성과 공동체의 센스가 중요해

   

서울 경복궁 근처, 통인동에 있는 길담서원을 찾았다. 우리은행(효자동지점)옆 작은 꽃집 골목에 들어서면, 이런 후미진 곳에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골목 왼편 끝자락에 이르면 아늑한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길담서원'이다. 절친한 두집 아이들의 이름에서 한 글자 씩 따와서 ‘길담’이라는 이름을 지었다는데, 시골 고샅길 사이로 둘러쳐진 낮은 흙담장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편안한 곳이다. 말 그대로 '서원', 책방이라서 같은 '서원'을 운영하는 성바오로딸 수녀들이 이따금 찾아오곤 한다는 것이 서원 지기의 말이다.

우리시대의 길찾기, 인문학 책읽기

서원지기인 박성준 씨(70)는 2009년까지 성공회대학교 NGO대학원에서 평화학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길담서원에만 집중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경제복지회’에서 활동하고, 선배에게 빌려 읽은 금서 몇 권이 화근이 되어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면서 13년 6개월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지금은 특별히 퀘이커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박성준 씨는 옥중에서 성경과 신학 공부에 집중했고, 출소 후 한백교회에서 8년간 목회를 했다. 1997년 릿쿄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유니언신학대학원 등에서 평화학을 공부했다. 그가 인문학 서점인 길담서원을 시작한 것은 2008년 2월 25일부터였다.

박성준 씨는 책방을 열면서, 프랑스 파리의 영문학 전문서점인 ‘셰익스피어&컴퍼니’가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F. 스콧 피츠제럴드 등 지식인들과 작가들의 사랑방이었던 점에 자극을 받았다. 또 부산의 '인디고서원'과 서울 대학로의 '이음아트도서'를 참고했다.

박성준 씨는 먼저 자기자신을 ‘길잃은 자’로 인식한다. 그래서 자신처럼 길잃은 자들이 서로 어깨를 다둑거리며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길찾기’에 나설 수 있는 쉼터이자 ‘베이스 캠프’가 될 공간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는 길담서원이 인문학적 책읽기를 통한 우리시대의 길찾기를 위해 열려진 우정의 공간이 되길 희망한다.

<기독교사상> 2009년 3월호에 장동석 씨가 인터뷰한 내용에 따르면, 박성준 씨의 인문학적 상상력은, 그의 이력에서 예감할 수 있듯이, 성경에서 비롯했다. 1968년 8월 여름, 박성준 씨는 "유토피아적 환상과 열정에 들떠" 친구들과 금서를 읽고 토론하다가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서대문구치소와 대전 교도소에서 13년 6개월을 복역해야 했다. 서대문구치소에서의 처음 6개월은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가 수감되었던 서대문구치소 9사 6방은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0.75평 되는 작은 방이었고, 그곳에는 변기통 하나와 낡은 성경책 한 권 밖에 없었다. 그는 몸으로 성경을 읽었고, 자유를 위한 몸부림 속에서도 성경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했다. 그때처럼 지금 그는 인문학과 우정어린 소통을 통해 새로운 길찾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 박성준 길담서원 지기

"내가 열었다" 말할 수 없어... 나는 n분의 1일뿐

박성준 씨는 길담서원을 열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부터 의도나 목적을 세워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런 공간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서원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작은 공간 하나를 그저 '열어놓은‘ 것이다. 어떤 공간이든 나름의 힘, 나름의 숨결과 향기를 가지고 있다. 또 공간은 사람들을 보듬는 ’품‘이기도 하다. 그 품 안에서 사람들의 관계가 이루어진다. 공간의 힘, 숨결, 품은 어느 한 사람이 만들 수 없는 것이고, 그 공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더불어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박성준 씨는 길담서원의 성격에 관해 말하면서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거미가 쳐둔 ‘거미줄’ 같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만일 그런 것이라면, "그런 공간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 "목적이 없는 게 목적"이 되고, "길이 없는 게 길"이라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덧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을 믿는다.

그는 2008년 2월 25일에 길담서원 오프닝(openning)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오프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내가 열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고, "지금도 열어가고 있다.“ ”우리 함께 열어가자!"고 초대하는 공간이 길담서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길담서원이 의미있는 공간이 되는 것은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그 자신 역시 서원에서는 n분의 1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여러분이 오셔서 주인이 되어 주세요"하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그들이 이 열려진 공간에 와서 이 공간의 인격과 품을 만들어가기 바라는 까닭이다. 이곳에서 모두가 쉬고 위로를 받고 희망의 근거가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낡은 시대의 지도력으로 새로운 세대 끌어안을 수 없어..

박성준 씨는 길담서원이 하는 일이나 꿈, 아이디어, 모든 생각을 열어놓고 함께 하자고 청한다. 무슨 일을 하든 "처음 아이디어를 내는 단계에서부터 함께 하자"는 것이다. 뭐든지 ‘최초의 발상을 누가 했는지'가 중요하며, 최초의 발상에 내가 참여했을 경우 그 일 또는 생각의 주인이 ’나‘라는 자각을 갖게 되고 자기 안에서 신명이 솟아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길담서원에서는 되도록이면 발상의 단계에서부터 여럿이 함께 하기 위해 노력하며, 생각의 주체를 그 공간에 찾아오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두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각자 주인이고 주체인 참여자들의 안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신명은 길담공간을 ‘신명나는 문화놀이터’로 만들어 간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그동안 그가 몸담았던 현실, 그중에서도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보적 운동영역에서도 관계맺는 방식과 의사결정 방법, 집행과정 등이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잔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낡은 방식으로는 새로운 세대를 품어 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박성준 씨는 자신 역시 그 낡은 방식에 대체할 새로운 방식에 대한 "답을 모른다"면서, 단지 자신도 "그 답에 목말라서, 자신이 외롭고 답답해서, 길담서원이란 공간을 열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먼저 '지도력(리더십)'의 문제에 관해 말한다. "최근엔 섬김의 리더십 등 새로운 지도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도자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어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 보다 비록 우수하다고 해도 그 우수한 한 사람이 주도하는 집단이나 사회에서는 여러 사람들 속에 내재하는 창조적 잠재력이 억압되기 쉽다. 리더 한 사람이나 소수가 다수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지배논리’가 깔려있다"면서, 지금까지는 이런 지도력(자)을 사람들이 견뎌 왔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한다.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가 가능한 곳이어야..

그는 좋은 지도력은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와 선배를 능가하는 후배들을 길러내는 지도력이라고 한다. 지도자를 능가하는 지도력을 가진 제자와 후배들을 기르지 못한다면 스승이나 선배로서 결격사유가 있다"면서, "과연 우리시대의 스승들은 어떠한가?" 묻는다. 길담서원도 이 물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는 과연 우리 사회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 곧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이 가능한가? 물으면서, 어떤 패러다임에서 불가능하지만, 다른 패러다임에서는 가능하리라 본다. 즉, 참여자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각 사람의 창조적 잠재력이 꽃피어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북돋우는 새로운 소통과 의사결정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한다. 뛰어난 지도자의 능력이 여러 사람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쪽으로 작용하는 그룹이나 사회는 오히려 "리더의 능력이 클수록 더 문제가 많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남대문이 불탔을 때, 우리는 남대문 재건과정을 국민적 축제로 만들 수 있었다. ‘남대문이 불탄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나에게는 책임이 없는가?’라는 물음과 고민에서부터 시작하여 남대문을 재건하는 방법과 절차에 대해 시민들과 전문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시민들이 이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까를 논의했어야 한다. 그러나 불탄 남대문에는 즉각 담이 둘러쳐졌고, 남대문은 시민들의 눈으로부터도 마음으로부터도 격리되어 버렸다. 불탄 남대문을 나의 문제, 우리 공동체의 문제로 승화시켜 참회와 소통의 기회로 삼고, 남대문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재건의 과정에 관심과 열정으로 함께 참여하는 길은 영원히 차단되어 버렸다. 그 이후는 행정관료와 소수 전문가 사이의 밀실에서의 논의 결정에 내맡겨지게 되었다.

불탄 남대문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재건에 함께하는 국민적 참여의 과정은 소멸하여 버렸다. 가장 중요한 과정은 생략되어 버리고 관료적인 재건의 결과만 ‘짠’하고 전시될 것이다. 전문가라는 사람들끼리 뚝닥거리고, 조만간 짠하고 결과만 선보일 것이다. 그렇게 재건된 남대문은 우리들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건된 남대문은 이런 낡은 시대의 사고와 일처리 방식의 사례와 증거로서 길이 남게 될 것이다.

박성준 씨는 서울시에서 청계천을 개발할 때도, 최근 광화문 광장을 만들 때에도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었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최초의 발상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박성준 씨는 창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초의 발상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거듭 말한다. 매사에 발상에서부터 완성까지의 전 과정을 여러 사람이 함게 하는 것은 더디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좋은 스승(리더)은 제자들의 잠재능력과 창조력을 고무하고 격려하면서, 제자들을 일의 중심에 주인으로 서게 하여 스스로 신명이 나서 능률적으로 일하게 한다. 제자들은 스승이 생각한 것을 수동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함께 생각하고 때로는 스승의 생각을 넘나들면서 창조적으로 일하게 된다.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청출어람의 리더십’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지도자의 권력이 과잉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박성준씨는 "권력이 적을수록 좋은 지도력이다"라고 말한다.

즉흥성, 느낌, 센스가 중요하다

   
길담서원은 겨우 두돌 난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길담 카페(http://cafe.naver.com/gildam) 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여기저기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푸성귀 같은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작년에 시작된 청소년인문학교실에 이어 어른들을 위한 인문학교실이 활발히 기획되고 있는데 참여의 열기가 뜨겁다. 음악회, 영화감상모임, 공부모임, 독서모임, 걷기모임, 밤을 함께 새우는 ‘백야제’등 다양한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아무도 기획을 책임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카페를 통해 누군가 제안하면, 덧글을 달고 하면서, 관심이 고조되고 이야기가 무르익으면 오프라인 준비모임으로 진화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즉흥성'(improvisation)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처음부터 어떤 사람이 주도적으로 의도하고 기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누구라도 어떤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그게 '느낌'이 썩 좋으면 카페를 통해 운을 띄워보는 것이다. 나와 우리에게 좋고 의미있는 일은 신명을 돋구어 준다. 미리 가진 용의주도한 생각이나 사상, 기획으로 조직하는 게 아니라, 의도하거나 예상하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오른 생각이나 그 생각의 실마리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갑자기 뭔가 하고 싶어서 근질근질해질 때 하나의 발상(idea)이 생겨난다. 즉흥성을 중시하면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인데 길담서원은 이런 즉흥성과 시행착오를 창조의 한 엣센스로 받아들인다. 자신들이 시작한 일이어서 결과에 상관없이 모두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된다.

"즉흥성, 느낌" 이런 말들은 박성준 씨가 퀘이커의 전통으로부터 배운 것이기도 하다. 퀘이커들은 350년 전부터 '센스(sense)'란 말을 중시한다. ‘공동체의 센스(sense of the meeting)'란 말인데, 공동체가 원하는 것을 함께 감지한다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내게 꿈이 있어요(I have a dream)'라고 말했을 때 그 '꿈'에 해당하는 말이 ’sense‘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함께 꾸는 꿈이다. 그게 어떤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일 때 '참 좋은 일'이 된다.

예를 들어 청소년인문학교실도 그렇게 탄생했다고 한다. 중학교 1-2학년생이 어른들과 대등하게 준비 모임에 참석해 발언도 하고, 여기서 나온 이야기를 대표 집필해서 카페에 올리기도 한다. 함께 회의에 참석했던 어른들이 댓글로 청소년의 글을 격려해주고 보완도 해주면서 진행된다. 그래서 길담서원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은 모두 '과거와 다른 방식이 가능한지 묻고 찾아가는' 놀이이며 실험이고 연습이다. 그리고 이래야 재미가 있고, 좋은 내용의 기획이 나온다. 그 과정이 즐거운 놀이가 되고 우정의 공간이 된다. 이렇게 놀이와 축제의 요소, 즉흥성의 요소가 없으면, 창조는 일어나지 않는다. 주도면밀하게 기획된 프로그램엔 수동적인, 때로는 동원된 청중이 참가하지만, 거기엔 진정한 참여는 없고 신명이 없어서, 자기 생각으로 참여하고 창조의 주인이 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누구나 틈입하고 주인이 되는 서원을 꿈꾸다

그런 의미에서 길담서원은 여느 책방과 다르다. '서원(書院)'이라고 이름 지을 때부터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서원의 의미와도 다른, 우리시대의 문화를 호흡하고 우리시대의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진지'라고나 할까.    

박성준 씨는 "한 사람의 생각은 한 사람의 경험에 갇힐 수밖에 없으므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는 구상을 열어놓고 해야 하며,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수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서원을 통해 꿈꾸고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이도 많고 앞으로 서원에 오래 머무를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공간의 주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이곳에 참여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런 개방성이 중요한데, 누군가 용이주도하게 기획하면 이렇게 다른 이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진다."

박성준 씨는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만남도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갑작스럽게 모임이 만들어지는 그런 서원을 꿈꾼다. 그리고 이런 서원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많아질 때 우리사회가 새로운 꿈을 꾸기 사작할 것이라고 예감한다.

   
▲ 박용수 선생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박성준 씨

남은 이야기

인터뷰 중에 박용수 선생이 불쑥 길담서원의 문을 밀고 들어왔다. <민중의 길>이라는 사진첩을 내고, <우리말 갈래사전>까지 집필한 이다. 가까이에서 처음 뵌 어른이지만, 너무도 친근한 얼굴. 그는 박성준 씨 옆구리를 툭 치고 들어가더니, 인터뷰 중인 걸 알고, 이내 쪽지를 탁자에 놓고 나간다. "대충 하고 나머지는 소주 먹으면서 하지."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주로 필담(筆談)을 나눈다는 박용수 선생. 박성준 씨가 짧은 시간에 요점을 추려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술을 잘 못한다는 박성준 씨는 늘 술 권하는 박용수 선생한테 미안하다고 한다. 눈발이 내리는 저녁무렵, 길담서원 맞은 편 오리탕 집에서 산사춘 한 잔 기울였다. 박용수 선생은 예전에 영보수녀원 수녀들의 사진을 찍어서 사진집을 낸 적도 있는 가톨릭 신자임을 그날 알았다. 박용수 선생은 "민주화운동에서나 , 우리 사회에서 가톨릭이 한 일이 많아. 그걸 기록해야 되는데......" 하며 술잔을 기울인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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