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오랜만에 학창시절 단짝 친구와 만나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흘러간 시간만큼 우리들은 변해 있었다. 눈에 드러나는 주름살보다 더 분명한 시간의 흐름이 새겨진 몸과 마음을 느끼며, 새삼 시간의 위력에 놀랐다. 친구와 만나는 내내, 꽃이 피어난 과수원 옆을 지나가는 기분에 잠기며 커피 한잔이 독한 술인 양 취기에 빠졌다. 나이 들어가며 친구들은 일가(一家)를 이루어가고 있었다. 그들 자신의 포근한 가정과 세상을 대하는 시선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도 같은 여신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친구는 눈가에 주홍빛 홍시를 연상시키는 아이 샤도우를 바르고 나왔다.
찻집으로 옮겨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중간 중간 눈을 감았다 떴다 하는 모습은 저녁노을 같다, 일출을 물들이는 붉은 빛으로 다가왔다.


가장 흠이 없는 감을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셨다

햇빛을 먹고 자랐음을 거짓 없이 토로하는 감은 고지식한 시골사람을 연상시킨다. 시골에 고향을 둔 서울사람들은 고향집에 내려갔다 올라오며 감이 달린 가지를 하나 꺾어다 벽에 걸어놓고 홍시가 되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일본사람들이 분재를 하여 산천을 방안에 들여놓는 마음처럼, 이 사람들은 고향집을 감나무가지에 담아다 안방이나 서재에 걸어놓을 것이다.

어느 가을, 시장 모퉁이에서 아는 할머니를 만났다. 예닐곱 살 된 두 손자를 데리고 할머니는 취로사업을 다녀오시다 과일을 흥정하고 계셨다. 시장 입구 좌판에는 감들이 쌓여 있었다. 할머니는 이 감 저 감 값을 물어보고 만져보더니, 상인들 용어로 '팟찌, 삐급'으로 골라놓은 허름한, 생채기 난 것들을 떨이로 사셨다. 어디서 풀을 베는 일을 하셨는지 낫이 들어 있는 가방을 벌려 할머니는 무더기로 놓여진 감들을 집어 넣으셨다. 그러다 그중에서 가장 흠이 없는 감을 하나 내 손에 쥐어 주셨다.

주홍빛 감을 쥐고 나는 혼자 황홀해서 여러 골목을 쓸데없이 걸어 다녔다.
태양을 선물 받은 듯 하늘의 별을 하나 가슴에 품은 듯 행복하고 슬펐다.

할머니의 고향은 충청도 청양이신데, 고향집에는 감나무가 많아 할머니의 아버지는 늦가을이면 밤마다 감 한 접(100개)을 깎아 곶감을 만드셨다고 했다. 그런데 고향집에선 그 흔하던 감을, 낯선 도시에서 할머니는 멀쩡한 건 사먹을 여유조차 없었다.


연민이나 동정은 일시적인 시혜의 성격을 띠지만

“선한 사람은 박복하다.” 엊그제, 친구가 농담인지 선문답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졌다. 내가 지켜본 할머니의 삶은 박복함을 시공간에 재현해 내신 분이셨다. 할머니에게 도움을 드린다고 나름대로 애를 써보았지만 건너다보는 삶에 불과했다.

늘 고통에 찬 사람들을 보면 가까이 교회의 존재이유와 하느님의 유무까지 머릿속에서 회오리친다. 그러다 아이들과 책읽기를 하며 만나는 설화의 세계에서 잠시나마 머릿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얻었다.

금붕어아가씨, 우렁각시 또는 비슷한 유형의 이야기는 물고기, 우렁이 혹은 제비로 살던 전생에 생사가 갈리는 지경에 처해 은인의 도움을 받고 목숨을 건진다. 그 후 그들은 그들의 왕 혹은 신의 허락을 받아 사람의 모습으로 바뀌어 은인들을 찾아온다. 그래서 배필이 된 그들은 한 세상을 함께 살아간다.

함께 살아가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건 같이 살아가기로 결정하는 마음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여로에 그들의 사랑은 펼쳐질 것이다. 쉽게 촉발되고 쉽게 사그라지는 연민이나 동정은 일시적인 시혜의 성격을 띠지만 사랑은 삶을 함께 하는 차원으로 상승한다.

박복하신 할머니의 한 생애를 서사로 엮어보면, 마디마디 선량하지 않았다면 가난함에서 벗어나 유복한 세계로 날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부족한 자식들을 거두고 자식을 버리고 떠나간 며느리 대신 손자들을 품으며 자신의 인생은 헐벗음과 박복함으로 채워가셨다.

흠 있는 과일은 내가 먹고 향기 나고 반듯한 것은 남에게 주라

설악산을 오르다 오세암에서 잠깐 쉴 때였다. 어느 대학의 불교반 학생들이 몰려와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우리 일행에게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나눠 주었다. 잠깐 펴보는 중, 한 구절이 마음에 닿았다. 임신한 사람들은 보통 반듯한 아이를 낳기 염원하며 비뚤어지게 앉기를 삼가고, 흠이 간 과일을 먹지 않으려고 한다. 닭고기를 먹으면 닭살을 가진 아이를 낳을까 두려워하던 풍습이 바로 그런 것인데, 부모은중경에는 아이를 위하여 비뚤어져 흠이 난 과일은 내가 먹고 향기 나고 반듯한 것은 남에게 주라는 구절이 담겨있었다.

우리가 흔히 풍수 좋다는 집 자리와 묘 자리를 탐내는데, 옛글들을 읽다보면 일부러 지세가 거친 땅을 골라 절을 짓는 스님들 이야기가 나온다. 스님들은 요망한 땅의 기운을 부처님의 기운으로 다스려 명당으로 만들어갔다.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과일나무는 바로 감나무일 것이다. 감나무는 스스로 애써 농사지은 일 년의 결실인 감을 하나도 먹지 않고 사람들에게 다 준다. 할머니의 삶은 세속에 찌든 눈으로 보면 박복할지라도, 그 분은 고향집 감나무가 햇빛을 닮은 잘 익은 감들을 달고 있는 것처럼 어린 손자들을 탐스럽게 키워내셨다. 선하심이 두드러진 분이셨다.


사회적 약자를 동정심에 사무쳐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노무현 정권 5년을 해석하는 글들이 시사잡지의 주 메뉴가 되고 있다. 잡지의 성향에 따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인 결론을 도출하는데, 저명한 어느 정치학자의 분석은 이러했다. “...김대중 정권까지 내리 10년은 운동권 운동가들의 수위에 미치는 민주주의에 도달했지, 정작 정치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민주주의에서 수렴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유권자의 분노가 2007년 대선의 결과다.”

막 스무 살을 넘긴 운동권 남학생들이 대학 근처 술집에서, ‘엘레나가 된 순이’를 열창하는 모습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노동운동의 한계를 나는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서 느끼며 회의(懷疑)를 잠재우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를 동정심에 사무쳐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어딜까? 그 종착지는 서로의 결별로 이어질 수밖에.

사회운동은 물론이고 어떠한 분야의 예술도 그 시대 삶을 외면하고 우뚝 선 경우는 없다. 최근에 알게 된 화가 윈슬로 호머(Winslow Homer, 미국 보스턴 1836-1910)는 실제의 평범한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라 이해하기 쉬웠다. 서부개척시대 소박한 생활인들을 주체적 존재로 인식하는 화가의 시선과 고집이 담겨있어 그림은 독특한 존재감을 뿜어냈다.


자연과 노동하는 인간을 그려나간 윈슬로 호머

그는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로 어떤 외부의 영향이나 이론에도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자연과 그 안에서 살고자 노동하는 인간을 그려나갔다고 한다. 27살에 그는 아무 선생도 없이 혼자 유화 기법을 익혔는데, 호머의 친구들은 유럽의 미술작품과는 너무도 다른 그의 그림들이 우스꽝스럽다고 비웃었지만 호머는 여전히 자신의 방법을 고집했다고 한다.

로버트 프루스트나 휘트먼의 시가 주는 질박함과 강건함이 이 화가의 매력 포인트다. 그래서 그가 그린 바다와 어부들 그리고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은 미국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그림에서 유럽이라는 탯줄을 끊어내고 막 형성되어가는 미국적인 것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작가이다. 실제적이고 겉치레 없는 그림은 전문적 소양을 지닌 사람들보다 보통사람들이 더 애호하는 화가로 우뚝 서게 했다.

윈슬로 호머가 한국인이었다면 감나무가 들어선 우물가에 동네사람들이 빨래를 하는 그림을 그렸을까? 흡사 우리의 박수근 화백처럼. 할머니는 눅눅한 지하단칸방을 전전하다 돌아가셨는데, 할머니의 눈에도 윈슬로 호머는 낯선 미국사람이라기보다 옆집 그림쟁이로 정겨울 것 같아 그의 그림을 찾아 옮겨왔다.

윈슬러 호머


한 생을 장엄하게 이끌어주는 우주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며 늙어가는 것

친구와 할머니 얘기를 나누며 우리로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할머니가 지닌 삶의 우아함을 이야기했다. 썬 라이즈 썬 셋. 하루를, 한 생을 장엄하게 이끌어주는 우주의 흐름에 맡기며 늙어가는 것과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한 그루의 감나무처럼 아름답게 맞자는 약속을 나눴다.

할머니에게 다음 생이 주어진다면, 마당에 감나무가 있어 봄이면 그 잎이 피어나는 황홀경에 취하고, 초여름이면 미색의 감꽃을 실에 꿰어 진주목걸이로 목에 걸고, 가을이면 어느 밤길 적막한 길목에 서 있는 나트륨등 같은 감나무를 동무삼아 사는 달콤한 날들이 펼쳐지길 기도한다. 그 분의 일생에 일어났던 박복한 일들은 하느님이 부르는 손짓이었으리라. 박복함은 그분을 흙처럼 겸손하게 만들었고, 흙덩어리인양 자녀와 손자들을 키워내고, 말없이 흙으로 돌아가셨다. 하느님이 윈슬로 호머가 되어 따뜻한 한 폭의 그림으로 그 분의 일생을 완성하셨으리라 믿는다.

'선한 사람은 박복하다'

/이규원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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