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교회를 찾았다가

일본 불교계의 도움으로 일 년 정도 동경에 머무는 사이 나는 일본인 교회의 예배에 참석했었다. 나의 신분은 밝히지 않았고, 일본인들도 추측은 했겠지만, 굳이 내 국적이나 직업을 묻지 않았다. 목사를 비롯해 30여명 남짓한 신자들 중 일부는 가벼운 인사를 하며 나를 그저 그런 외국인으로 대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교회 신자라고 할 수 있을 오스트레일리아인과 예배 후 이런 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가 내게 명함을 주었고, 나도 명함을 내밀면서 개인적으로 내 소개를 새로 하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교인이지만 불교를 중심으로 이런 저런 종교문화 공부하러 일본에 왔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자 그는 ‘구원은 예수님께만 있는데 불교 공부는 왜 하느냐’는 취지의 답을 했다. 나는 ‘종교들에는 공통성이나 보편성도 있는데 그것을 잘 보면 구원의 개념도 좀 넓어진다’는 식으로 되받았다.

그 뒤 사정상 몇 주 쉬고 다시 그 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게 먼저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음 주도, 또 사정상 몇 주 건너뛰고 나간 그 다음 주도 아무도 내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눈인사라도 할라치면 왠지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그러다보니 결국 나도 어색해지면서 교회 출석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일본 교회의 보수성

그들의 태도는 왜 변하게 되었을까? 내가 일본 종교를 공부하러 온 무슨 박사라는 사실을 전해 듣고 나니, 자신들이 연구의 대상이 될까 어색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아니었다. 당시 나도 느꼈던 것이지만, 후에 다른 교회도 가보고 여타의 일본인이나 재일한국인 그리스도교도에게 몇 번 물어보면서, 내 느낌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본 교회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한국 개신교의 배타성에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일본 교회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다르지는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배타적인 자세로까지는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배타성은 어찌되었든 그렇게 배타할 수 있을만한 세력이 형성되어 있을 때에나 가능한 것인데, 일본 그리스도교는 예나 이제나 그럴만한 세력을 이루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불교를 공부하러 일본에 왔다면서 교회 예배에도 참석하는 나의 내면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튀면’ ‘왕따’당하기 십상인 일본 사회의 면모를 느끼게 되는 기회였다. 나는 일본 교회의 현실을 경험하면서, 일본 그리스도교도는 근본주의적 보수성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 일종의 동아리 비슷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다소 강한 듯한 이 보수성은 일본에서 그리스도교가 적어도 양적으로는 성장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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