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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사랑하는 그 만큼씩]

 

   

농민회 운영위원회 모임을 마치고 모래재를 넘고 있었다. 재를 넘을 때마다 고도 차이 신호음이 귀에 접수된다. 재를 넘는 신호음이 귀에서 사라지자 전화 진동음이 울렸다. 가톨릭농민회 회장님의 전화였다. “현관문 앞에 40Kg 쌀 한 가마와 도라지 한 보따리 놓고 갑니다. 도라지 캐러 갔다 오는 길에 회원집에 쌀 구입하러 갔어요. 자매님이 신부님 전해 주라며 쌀 반 가마 챙겨주셨어요.”

졸졸졸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리는 계곡에 접어들었다. 산 속 외딴 집이 푸른 숲 속의 등대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렇다. 산과 강을 푸르게 지키고 싶은 열정 하나로 산 속으로 들어온 삶이기에 집은 세상을 향한 생태와 평화의 등대인 것이다. 현관문을 열자, 쌀가마와 도라지가 정겹게 앉아 있었다. 행복은 이렇게 찾아오는 것일까? 행복은 소유한 양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나누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농민이 가꾼 행복이 영혼까지 행복하게 해 주었다.

   

서울과 용인에서 방문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화장실 안에 보관 중인 도라지가 떠올랐다. 식구들과 거실 창가에 앉아 도라지 껍질을 벗겼다. 햇살이 가득 내려앉은 거실이 더웠다. 문을 살짝 열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물방울들이 개울을 따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물소리를 따라 문득 그리운 얼굴들이 흘러갔다. 그리운 것들은 늘 소나기처럼 번개처럼 맑은 하늘을 흔들고 가는 것일까? 잠시 먼 산을 바라보았다.

주일 아침이다. 설레는 마음을 달래며 계곡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물에 껍질 벗긴 도라지를 씻었다. 도라지가 담긴 그릇을 들고 창가에 앉았다. 엄지손가락 두 배의 도라지는 세 조각으로 배를 가르고 나머지 작은 것은 두 조각으로 갈랐다. 도마 아래 수건을 깔고 나무 방망이로 도라지를 두드렸다. 진동과 소리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방망이가 갈라진 부분으로 도라지를 두드리니 더 잘 다져졌다.

   

다음은 도라지 구이 양념을 만드는 시간. 배 4/1 조각, 큰 양파 반 조각, 마늘 두 통을 잘게 썰어 도깨비 방망이로 갈았다. 꿀과 매실엑기스,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넣고 저었다. 너무 달지 않도록 꿀, 매실엑기스는 조금만 넣었다. 검정 참깨기름을 한 큰 술을 넣었다. 참기름도 많이 넣으면 고소한 냄새 때문에 도라지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이렇게 양념을 다 섞은 다음 조선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조선장을 많이 넣으면 구이양념 색이 곱지 않고 탁해질 수 있다. 그래서 소금과 조선장 반반으로 간을 보았다. 맛을 봐서 조금 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간이 되지 않는 도라지와 어울려 삼삼한 맛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도라지에 켜켜이 양념을 발라야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든다. 수저나 주걱 두 개로 양쪽 끝에서 공을 굴리듯 양념을 버무리면 골고루 양념이 묻는다. 그렇게 3시간 정도는 양념에 재어두어야 도라지 속까지 양념이 배어들어간다.

   


17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큰 압력밥솥에 평소 물량의 70% 정도만 물을 붓고 무를 썰어 밥을 앉혔다.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도 구을 수 있는 후라이판 약한 불에 도라지를 굽기 시작했다. 생것으로도 먹을 수 있기에 타지 않게만 구었다. 접시에 깔고 고명으로 만든 풋고추와 빨간 고추를 뿌리고 흰 참깨를 뿌렸다. 무밥을 큰 양푼에 펐다. 쪽파와 빨간 청양고추와 통깨를 넣어 만든 양념간장을 치고 비볐다.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무밥 한 술에 김치 한 가닥 놓고 먹는 맛을 누가 알랴.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님은 무밥과 도라지 구이를 처음 먹어 본다 하셨다. 너무 맛있는 무밥에 도라지 구이로 힘을 충전했으니 4대강 반대를 더 열심히 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셨다. 17명이 둘러 앉아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도 꿀맛이었다. 자리가 없어 늦게 점심을 먹게 된 자매님은 무밥 누룽지를 먹었다. 고소한 누룽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사모님은 두 번째 점심을 먹어야 했다. 사모님은 “더덕구이는 많이 먹어봤는데 도라지 구이는 처음인데 너무 맛있네예. 그동안 도라지 쓴 맛 때문에 도라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도라지를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근데, 신부님은 우째 그리 요리 솜씨가 좋은교.” 라며 어린이처럼 좋아하셨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반찬은 무밥도 도라지구이도 아니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칭찬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반찬이 아닐까?

   


후식으로 사과와 곶감과 귤로 만든 꽃과일 접시를 내어 놓았다.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과일접시를 찍은 노교수님이 참았던 말문을 열었다. 열정적인 말씀에서 정년을 1년 남긴 노교수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누가 노교수의 볼을 벌겋게 상기되게 만드는 것일까.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4대강사업은 대운하의 이름만 바꾼 것입니다. 대운하사업을 4대강 정비사업이라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다보니까 그 거짓말을 참말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바닥 모래를 준설하고 제방을 쌓는다고 해서 강을 살까요. 오히려 그 준설과 제방이 강을 오염시키고 죽이는 것인데요. 무지가 무식을 넘어 섰고 독선이 독재를 넘어서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지 않는 4대강사업을 힘과 권력이 세다고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자연을 돈으로만 보는 사람들, 그들은 돈에 미쳐 후손들까지도 죽이는 범죄,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조건에 따라 용서하지만 하느님은 조건 없이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자연은 무조건 용서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파괴한 만큼의 재앙을 그대로 인간에게 되돌려줍니다. 4대강을 파헤친 만큼의 자연재앙을 우리에게 되돌려 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연을 파괴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의원들, 4대강사업을 찬성한 사람들이 받는 것이 아니라 죄 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세대가 자연재앙의 피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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