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우리신학연구소 상근 직원 6명 중에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공대 기계과 출신 소장은 아예 운전면허증도 없다. 받는 봉급이 넉넉지 않으니 차를 살 형편이 못 되겠지만 요즘처럼 전셋집보다 먼저 차부터 장만하는 게 유행인 세태에 비추어보면 좀 별나다 싶기도 하다. 마음만 있다면야 중고차든 할부차든 못 살 것도 없겠지만 지나가는 말로라도 차가 없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 했으니 우리 직원들은 차에 대해서는 남들만큼의 욕심이나 미련도 없나.

내 자가용은 현대 소나타다. 4년 전 7월에 나의 든든한 스폰서인 누나가 내가 11년을 타던 대우 프린스와 바꿔준 것이다. 차종이나 색깔을 다 누나가 일방적으로 선택해서 배달시켰으니 내 취향이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굴러든 뜻밖의 횡재지만 내 처지나 수입에는 걸맞지 않게 비싸고 과분한 차다. 적지 않은 자동차세와 보험료를 본당에서 대주는데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교우들에게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다. 차가 고급이니 그에 따른 부대비용도 비쌀 수밖에.

그 차를 나는 별로 이용하지 않는 편이다. 늘 마당 한구석에 세워둔 차를 보고 우리 교우 한 분은 차가 썩게 생겼으니 차라리 자기나 타게 달라고 할 정도니까. 차가 싫고 운전이 서툴러서가 아니다. 시내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졸지도 못 하고 신문도 못 본다. 교통경찰만 눈에 띄면 공연히 뜨끔하다. 하지만 지하철이나 시내버스를 타면 얌체족이 갑자기 끼어든다고 욕을 하며 신경질을 부릴 일이 없다. 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물며 눈을 부릅뜰 필요도 없다. 

눈을 감고 써야 할 글이나 강론의 주제를 생각해도 좋고 남의 용모나 옷차림을 찬찬히 뜯어봐도 좋다. 값도 훨씬 싸다. 택시는 특별한 경우에만 이용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팍팍 오르는 미터기가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10리쯤은 걷든가, 아니면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시골에서는 어림도 없다. 도시에 사니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이런 내가 뭐하려 운전면허증을 따고 차를 샀나 갸우뚱하는 독자가 혹시 계실지 모르겠다. 이미 다 지난 이야기지만 그건 순전히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때문이다. 길거리에 자가용이 흔해지면서, 손수 운전하고 다니는 신부들이 차츰 많아지면서, 어머니는 내게 고무신 신고 길에서 궁상떨지 말고 남들처럼 자가용차 사서 편하게 타고 다니라고, 그게 어미의 소원이라고 만날 때마다 귀가 아프도록 되풀이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물론 귀에 담지도 않았다. 신품 받을 때 나는 차는 평생 안 살 거라고 단단히 결심했던 터였으니까.

날이 갈수록 연로해지시는 엄마의 소원 하나 못 들어드리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사제생활 20년이 가까워지면서였다. 어렵지 않게 면허시험을 보고 운전면허증이 나오자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달려갔다.(물론 그때도 나는 차를 살 생각도 능력도 없었다.)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그로부터 며칠 후 어느 날 밤에 어머니는 도둑처럼 몰래 성당 마당에 비닐도 안 벗긴 반짝반짝하는 까만 승용차를 갖다놓으셨다. 이미 어머니는 아들에게 차를 사줄 준비를 다 하셨던 것이다. 그게 내가 자가용을 갖게 된 동기요 과정이다.

그 해 가을이던가, 나는 생전 처음으로 깨끗한 새 차 뒷자리에 부모님을 모시고 어릴 때 우리 식구가 살던 충청북도 충주로 괴산으로 수안보로 한 바퀴를 멋지게 돌았는데, 그게 엄마의 원풀이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두 내외분이 함께 어디 가시는 것을 못 보아온 내게 그때만큼 운전면허증이 자랑스럽고 내 차가 고마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자가용을 가지고 있으면서 남들의 자동차 소유를 가타부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요즘 몇몇 후배 신부들은 본당주임 발령도 나기 전에 자동차가 우선순위 1번이라니 아무리 차 사는데 돈 보태준 거 없다 하더라도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호인수(신부, 인천교구 고강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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