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어김없이 오는 게 있다. 서둘러 피어난 꽃들 또는 피어나려는 꽃망울들을 사정없이 몰아치는 이른바 꽃샘추위라는 물건이다.

내 생애에서 <공동번역 성서> 출간을 위해 ‘대한성서공회’ 임시직원(직함은 ‘공동번역을 위한 문장위원’)으로 일한 1년 6개월은 각별한 은총의 시절이다. 내가 그 일에 참여한 것은 번역 작업이 거의 마무리되고, <신약성서>는 이미 출간된 다음이었다.

주로 문익환 목사님과 선종완 신부님에게서 마지막으로 정리된 번역원고를 맞춤법에 맞는 ‘한국말’로 다듬는 것이 내게 맡겨진 일이었다.

어느 날, 문익환 목사님이 종로 3가 뒷골목 보신탕집에서 소주 한 잔 곁들여 점심을 드시다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하신 게 영 잊혀지지 않는다. 단 둘이 마주앉은 자리였다.
“요샌 말이야, 구교(舊敎)가 신교(新敎)고 신교가 구교더라구!”
한 마디 말 속에 담긴 뜻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그만큼 가톨릭이 부드럽고 프로테스탄트가 딱딱하다는 말씀이었다.

과연 그랬다.

번역위원들이 작성한 원고를 구교와 신교 측 전문위원(?)들이 검토하고 의견을 첨부하여 보내면 그것을 참고하여 원고를 손질하는 시스템으로 번역작업이 진행되었는데, 구교 측에서는 크게 이의를 달지 않는데 견주어 신교 측에서는 거의 ‘트집’에 가까울 만큼 까다롭게 굴고 심지어 어떤 것은 반드시 이렇게 번역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구약성서 번역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선 신부님이 출간된 성서를 보지 못한 채, 느보산의 모세처럼, 숨을 거두셨다.

드디어 <공동번역 성서>가 제작 공정에 들어갔을 때, 어느 기독교계 주간지에 ‘의견 광고’가 하나 실렸다.

서울 J교회 장로 아무개 씨 이름으로 된 광고였는데, “마리아 숭배하는 천주교 이단과 함께 성경을 번역하면서 ‘하나님’의 성호를 ‘하느님’으로 바꾼 개신교 측 인사들에게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리라”는 내용이었다.

그 광고문을 들고 당시 ‘명동사건’을 위하여 은밀히 분주하시던 문익환 목사님에게, “큰일 났습니다. 이제 목사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셨어요!” 농담처럼 말씀드렸더니,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웃어 넘기셨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날쯤 되었던가? 과연 하나님의 저주가 있었던지, 목사님은 ‘명동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되셨다.

구교가 된 신교는 결국 ‘하나님’ 아닌 ‘하느님’에 걸려 <공동번역 성서>를 외면하였다. 곽노순 선생이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에 대하여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만큼 완벽한 논문을 내놓았지만, 소용없었다. 한번 해병대면 영원한 해병대라던가? 한번 ‘하나님’이면 세상이 깨어져도 ‘하나님’인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동안 신교가 된 구교 쪽에서 <공동번역>을 읽어주는 바람에 나는 속으로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는데, 그나마 이제는 끝났구나!

아직은 한국교회의 의식이 <공동번역>을 읽을 정도의 수준에는 오르지 못한 모양이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꽃샘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끝내 꽃피는 봄을 막을 수 없듯이, 언젠가는 한국 기독교회의 구교와 신교가 함께 <공동번역>을 펼쳐 읽을 날이 오리라고 내다보며, 나 혼자서라도 죽는 날까지 <공동번역>을 손에서 놓지 않으리라 다짐해본다.


/이현주 200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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