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시사비평]

▲ 2008.4.16 KBS2TV 추적 60분

2월 27일은 고 한경선 비정규교수가 돌아가신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하면서 대학원을 마치고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국내에 돌아와 여러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전도가 유망한 한 강사가 비정규 교수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유서를 쓰고 음독자살을 선택하였다. (왜 엘리트 여강사는 죽음을 선택했는가?, 2008.4.16 KBS2TV 추적 60분 방영분 참조)

대학강사는 우리나라 헌법의 교원지위는 법으로 정한다는 원칙에 따라 1949년 제정한 교육법에서 교원이었다. 1970년대 들어 박정희 독재자는 대학생의 반독재투쟁이 거세지자 1977년 고등교육법을 개정해 이런 교수는 학교 밖으로 내보내고 학생은 군대로 보내고 젊은 강사는 학생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교원지위를 아예 박탈했다. 그 뒤 대학은 값싸고 무권리하여 다루기 쉬운 강사 고용을 늘려 이제는 강사 수가 전임교수 수의 갑절을 넘고 강의의 절반을 담당하지만 아무런 회의에도 참여 못하고 급여는 전임교수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사는 사회 대학 전임교수 누구의 비위를 거스르면 전임교수로 가는 것은 고사하고 강사 자리마저 유지할 수 없다. 40세 가까이 되어 박사를 딴 이들에게 강사 자리의 박탈은 죽음이나 다름없다.

이런 무권리한 나약한 강사의 태도는 강의실로 바로 연결된다. 강사는 강의에서 자신이 전공한 분야의 이론만을 가르치지 그 분야의 현실을 가르칠 수 없다. 예를 들어 이번에 요르단에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한다고 하는데, 강사가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원전의 건설이나 수출이 타당한지를 논문에서 제기하거나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토론식으로 살필 수 없다. 만약 강의실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올 경우 그에게 강사 자리를 준 전임교수는 원전회사의 프로젝트를 받을 수 없다며 싫은 눈초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모든 학과에 해당 된다. 그러다보니 대학은 기존의 이론을 그저 암기위주로 일방적인 주입식으로 가르칠 뿐이다. 이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물을 비판하는 능력을 갖출 수 없다.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대학교육을 신분상승의 마지막 단계로 본다. 판사 검사 의사 같은 사(士)자가 들어 간 전문가만 바라고, 공무원 교사 재벌회사 등 정규직이 아니면 사회에 나가 죽는 줄 안다. 마음속에 이웃이나 공동체 지속가능성을 생각할 공간이 없다.

더군다나 대학등록금은 해마다 오르면서 마침내 천만원을 넘어섰다. “어머니, 아버지 대학다녀서 죄송합니다”같은 심정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졸업을 해도 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지면서 취업 재수생, 삼수생의 길을 가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다. 그러니 대학이 아니라 취업학원으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의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나 사회운동에서 젊은이가 크게 줄거나 없다고 한다. 젊은이가 없는 것은 농촌만의 일이 아니다. 어느 통일운동 단체는 가장 젊은 실무자가 40대라고 한다. 이런 현상은 삶이 각박해지면서 실리 소득 중심으로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의문점을 갖는다. 우리 역사를 보면 국권상실기나 민족해방운동기나 독재치하의 어느 때도 젊은이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의 대학교육 체제에 책임이 크다고 본다. 이런 대학의 현실을 바꾸려는 강사들이 2007년 9월 7일부터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며 국회앞에서 900여일째 텐트를 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농성중이던 강사들을 회유하고 대교협이 국회를 회유하면서 세 번째 겨울인 이제, 환갑을 넘긴 노부부 강사 두 명만 힘겹게 남아서 텐트를 지키고 있다. 다행히 학생, 노동자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각성하면서 10여 곳에서 1인시위를 함께 하고 있으나 대학의 넘치는 돈과 일제 때부터 우리 사회 중심에 자리한 막강한 권력을 이기기는 역부족이다.

대학의 이러한 현실을 강사들의 무력함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활기를, 그것도 젊은이의 활기를 빼앗는 우리 공동의 문제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월 27일 고 한경선 비정규직교수의 2주기를 맞아 국회의사당 앞에서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고인을 추모하고, 지금 진행중인 임시국회에 ‘강사의 교원지위를 회복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는 행사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 참여할 필요가 있다.

노동세계 안에서 복음은 “자유와 해방의 소식”이 된다. 왜냐하면 복음의 빛에 비추어 살고자 하는 “예수의 제자들은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통하여 구세주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 바로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때문이다”(자유의 자각 68항)

그러므로 우리는 비정규직 강사들의 인간화를 위한 투쟁에 단순히 기도와 바램만이 아니라 함께 참여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증거해 보여야 한다.

권오광(한국파트너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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