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원규 시인이 노숙인에게-1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성 프란시스 대학>의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에서 겨울방학 특강을 열고 있습니다. 지난 12월 29일부터 2010년 2월 9일까지 진행하는데, 벌써 송경용 신부와 황대권 선생, 이원규 시인과 강기희 선생의 강의가 끝났으며, 오는 2월 9일 우토로, 조선학교 등 재외동포 운동의 10년을 다루는 배덕호(지구촌동포연대 KIN 대표)의 마지막 강의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이원규 시인의 강의녹취록을 풀어 정리한 것을 프란시스 대학에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보내와서 이원규 시인의 허락을 얻어 3회로 나누어 연재합니다.  -편집자     


내 집 없이 잘 살고 있어요  

지리산에서 잘 놀고 있습니다. 13년째인데 잘 놀아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삽니다. 돈 없이 잘 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반쯤은 성공했어요. 오토바이도 있고 하니, ‘서울에서 돈 많이 벌어서 시골에 놀러 왔나보다’ 이런 오해도 많이 사는데요, 지금 남이 살다 버리고 간 집을 빌려 살고 있어요.

예전에 공짜로 살았는데 그러다보니 그 집주인 친척들이 방안에 함부로 막 들어오고 그래서 일 년에 50 만 원가량 주고 빌려서 사는데요, 그러니까 친척들이 이젠 잘 안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못된 속성이 있어요. 나보다 못나 보이면 막 밟고, 월 4만원이라도 주고 빌리면 권리가 있다고 취급해주고.

13년 동안 이사를 6번 하고 또 봄에 이사 가려고 하는데요, 일단 제 집이 아니니까 오래 살 수가 없구요, 또 하나는 내 집이 아니지만 오래 살다보면 내 집인 줄 착각하게 돼요. 욕심이 생기는 거죠. 지리산 갈 때 가진 마음가짐 중에 하나가 ‘내 집이 없어야겠다’입니다. ‘내 집이 없어야 내가 돈 벌 궁리를 하지 않을 거다. 집을 빌려서 살더라도 한 집에 3년 이상은 살지 않겠다.’ 이렇게 다짐했어요.

글쟁이는 책만 베껴 쓰죠

지리산에서 콩은 언제 심는지, 감잎이 날 때 심어라, 이런 게 어른들의 지혜입니다. 농촌 진흥청에서 나온 책에는 ‘4월 14일에 콩을 심으시오.’ 이렇게 말하지만, 이게 다 달라요. 지리산에서도 남원시 쪽은 강원도 날씨고, 하동, 구례, 섬진강 쪽은 아열대 날씨에요. 이렇게 날씨가 다른데 같은 날 콩을 심으라고 하면 안 되죠. 감잎이 파릇파릇 날려고 할 때 콩을 심어라. 이건 마을마다 다르잖아요.

이런 게 진리 인데 글을 쓴다는 것은 이런 책을 그저 베끼는 거예요. 모방입니다. 글쟁이들을 예술가로 취급해서 ‘창조적 인간’이라 말하는데, 이런 거, 다 거짓말입니다. 할아버지가 감잎이 날 때 콩을 심으라고 해서 그 때 심었더니 콩이 잘 나더라, 달력에 나오는 농촌진흥청 얘기 다 거짓말이더라, 그런 말이죠. 그러면 할아버지 말씀을 베껴야죠. 그 동네의 80대 할아버지가 농사를 60년 지으면서 얻은 지혜를 베끼는 게 맞습니다.

자연 현상을 잘 베껴야

멋있는 책상에 앉아서 시도 잘 모르면서 잘난 척 하려고 남들이 알아듣지 못 하는 말로 쓴 글은 다 사기입니다. 글쟁이는 자연 현상을 잘 베껴야 해요. 제일 엉터리 시인이 꽃이 피는 순서도 모르는 거예요. 한 번도 꽃이 피는 걸 잘 관찰하고 기록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꽃이 피는 걸 일기 등에다가 기록해놨다가 나중에 베끼면 그게 수필이 되고, 좀 더 짧게 엑기스만 모아서 쓰면 그게 시가 되는 것입니다. 또 실제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해 놨다가 인물을 조금 바꾸고 사건을 과장할 것은 과장하고 그러면 소설이 되는 거예요.

제 책 제목이 ‘지리산 편지’라고 돼 있는데요. 편지는 대상이 있잖아요. 직접적으로 소통이 가능해요. 내 마음을 전해주는 것 중에 가장 일차적이고 가장 차원이 높은 게 편지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서, 저는 꼭 산문을 편지로 씁니다. 그리고 저는 꼭 존칭어로 씁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쓰는 말 중 가장 품격이 높으면서도 겸허한 말이기 때문이지요.  

▲ 성 프란시스 대학에서 강의하는 이원규 시인


차밭이 소유하면 녹차 만드는 기술 안 가르쳐 줘

동네 어르신이나 도시에서 귀농했다가 성공한 사람들을 잘 살펴보고 기록했다가 처음 귀농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하지요. ‘오자마자 집 짓지 말고 빈 집에 살아라. 혹시 돈이 몇 천 만 원가량 남아있거든 오자마자 까먹지 마라. 녹차 밭 사지 마라. 한 3년은 녹차 밭에서 일해주면서 살아라. 논밭 사지 마라. 한 3년은 남의 집에 일해주면서 살아라. 5년 동안은 농사지어서 한 달에 10만원도 못 버는 것을 각오해라.’ 등등.

한 3년간 녹차밭에서 일해주면 돈도 벌지만 녹차 만드는 기술도 배우잖아요. 그다음 해부터 내가 녹차를 만들어서 팔 수가 있어요. 내가 돈을 가지고 있으면 그때 가서 차밭을 사도 늦지 않아요. 내가 차밭을 가지고 있으면 옆집에서 녹차 만드는 법을 안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집을 짓지 않고 살다 보면, 한 3년 후에 어느 터가 집짓기 좋은 지 다 알게 됩니다. 도시에서 처음 귀농하면 어디든 무조건 다 좋아 보이지요. 그리고 그냥 전망 좋은 땅에 지었다가 자연재해로 집을 날릴 수가 있지요. 또 좋은 것은 살아보면 땅을 싸게 살 수 있어요. 처음 귀농한 사람에게는, 사실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평당 2만원에 파는 것을 한 10만 원쯤으로 부풀려요. 마을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친해지고, 그러면서 마을의 성원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러다가 마을의 이장이나 어떤 사람이 돈이 필요해서 땅을 싸게 팔면 나는 땅을 싸게 사서 좋고 그 사람은 땅을 팔아서 좋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것들은 지리산뿐만 아니라 어느 시골이든 같은 것 같아요.

200만원으로 시작한 시골살이

저는 지리산 갈 때 200만 원정도 가지고 갔고, 3년 동안 그걸로 버텼어요. 그리고 어떤 단체에도 후원금을 내지 않아요. 대신 몸으로 때웁니다. ‘나에게 돈 얘기하지 마라.’ 이렇게 말합니다. 돈을 벌 생각을 하면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그렇지요. 저는 담뱃값, 술값 포함해서 일주일에 5만 원 이상 쓰지 않는 원칙을 지킵니다. 시골이니까 그게 가능해요. 큰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까 기름 값이 좀 드는데, 그건 어디에 문학 강의 해주고 받은 강의료로 채웁니다.

술은 거의 얻어먹고 다녀요. 시골은 인심이 좋구요, 집집마다 매실주나 머루주 같은 술을 담가놓고 있어요. 손님 접대용이지요. 저도 그렇게 하고 있는데요. 누가 마실지는 모르지만, ‘매실주 몇 월 며칠 담갔음’ 이렇게 붙여 놓고 보관해놓고 있으면, 누군가 찾아왔을 때 그 술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해요. 혹시 누가 왔을 때 읍내에 가서 술을 사오는 것보다 직접 만든 술을 대접하면 더 좋아합니다. 상대와 더 친근해 질 수 있지요.

언젠가는 이런 적도 있었어요. 작은 병에 계절별로 국화주, 매실주, 머루주 등을 담가 놓고, 이건 제가 존경하는 시인인 신경림 선생이 마셔줬으면 좋겠다 해서 ‘신경림’이라고 딱 붙여 놓았어요. 그런데 꼭 그 사람만 주는 법은 없지요. 다른 사람이 왔을 때는 그 사람이 기분나빠할 지 모르니까 얼른 그 딱지를 떼고 그 사람과 같이 나눠요. ‘너를 위해 담근 술이야’ 이렇게 살짝 사기도 쳐요. 내가 술을 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서 산에 가서 매실 등을 따는 것도 신나고, 술을 담그는 행위도 행복합니다. 술을 직접 담가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눠야겠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는다는 게 행복해요. 그런 마음들을 가지고 저는 시를 쓰고 수필을 쓰는 거예요. (계속)

이원규 (경북 문경 출신으로 노동해방문학 창작실장, 한국작가회의(민족문학작가회의) 총무, 중앙일보 및 월간중앙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지만 결국 지리산에 입산해서 12년째 살고 있다. 지리산 지킴이를 자처하며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와 대안학교인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시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버림으로써 가벼워지고 비움으로써 여유로워진다고 하며, 쉬지 않고 걷고 걸어 손이 아닌 발로 시와 편지를 쓴다. 최근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생명평화순례에 나서기도 했다. 제16회 신동엽 창작상과 제2회 평화인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강물도 목이 마르다>,<지리산 편지> 등의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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