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미안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일정한 책임을 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의 책임을 성실하게 실행하여 자기가 태어날 때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겸손한 태도로 사람과 사귀며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이란 원래 약한 존재이다. 마음 속에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간직하여 올바른 생활에 흔들림이 없기를 바란다.

비록 내 육신은 떠나더라도 마음은 여전히 살아서 함께 할 것이다.
내 무덤 앞의 작은 돌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적어 넣었으면 좋겠다.
<민족에 대한 사랑과, 진리에 대한 믿음은 둘이 아니라 하나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 ."

가족과 스승으로 만난 세 분이 죽음의 자리에서 남긴 유언들이다.
속속들이 다 안다할 수는 없지만, 함께 한 시간 속에서 느낀 그분들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이어서 그 분들, 나아가 인간의 숙명과 천명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들이었다.

새해, 새 날이 밝으며 올 해는 내게도 햇살 같은 일들이 생기려나 싶어 신문의 '오늘의 운세'란을 펼쳐보았다. 덕담수준이란 걸 알면서도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그러면서 죽음의 자리를 돌아보며, 바다에 도달한 강물이 시원의 작은 개울을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고 한 해를 살아보고 싶은 소망을 가져본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좀더 근원적인 쪽으로 비중을 두며 일을 처리해 보자는 정도지만.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 세 사람을 들라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든다고 한다.
이들은 전국(戰國) 시대의 영웅들로, 15세기 말부터 계속되어온 혼란시대를 먼저 장악한 인물은 오다 노부나가였다. 성미가 급했던 오다는 무력으로 대부분의 막부를 정벌했지만, 교토의 혼노사(本能寺)에서 자신의 신하 아케치 미쓰히데의 기습공격을 받아 자결하게 된다.

오다에 이어 천하를 장악한 인물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이다. 미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도요토미는 오다의 부하로 들어가 오다의 신발을 챙기는 일을 하게 되지만, 쾌활한 성격과 총명한 두뇌로 오다의 뒤를 이어 천하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일으켜 자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조선과의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크게 상심한 끝에 62세의 나이로 죽는다.

결국 천하의 패권은 인내의 화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머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서두르지 않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뒤를 이어 제국의 통일을 이루고 400 여 년 간 전란이 없는 비교적 평온한 막부정치의 틀을 마련한다.

이 세 사람의 인물을 단적으로 비교하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 어떻게 두견새를 울릴 것인가, 라는 화두에 그들의 대답은 서로 달랐다고 한다.
노부나가: 죽여라
히데요시: 울게 만들어라
이에야스: 기다려라

도쿠카와 이에야스(徳川家康, 1542년 - 1616년)가 지방분권으로 나뉘어 있던 다이묘들의 봉토를 재정비하는 천하통일 과정에서 드러난 이에야쓰의 성격은 언뜻 삼국지의 유비와 조조가 결합된 인간형을 떠오르게 한다. 지략과 신념, 관대함을 두루 지녔지만 호랑이 같은 다이묘들과의 싸움은 수 많은 희생을 불러왔다. 이에야쓰 친족들도 전장에서 다 죽어갔다. 심지어 첫 아내와 맏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만 하는 고통을 겪기도 했다.
그런 그가 아들에게 쇼오군의 자리를 물려주고 말년에 하는 일은 종이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써나가는 것이었다. 무수한 염불과 필경을 통해 그는 부처님의 원만한 얼굴을 획득했다고 한다.
이에야쓰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통찰한 인간의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토로하는데 흡사 그의 유언처럼 들린다.

"둥그런 쟁반에 유리구슬이 하나 놓여 있다. 이 구슬이 인간이요, 쟁반은 그 사람이 사는 터전이고 상황인데, 유리구슬은 어쩌다 자신이 그 쟁반에 담겨 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쟁반의 재질과 모양새는 구슬의 행동을 제약하는데 이것이 구슬이 처한 운명이다.
이 구슬은 저 혼자서는 쟁반의 턱을 넘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가 없어 쟁반 안에 갇히게 되는데, 구슬을 억압하는 쟁반 턱이 바로 구슬의 숙명이 된다.
어느 날, 문득 구슬은 하늘(天)이 왜 그에게 재질과 모양새를 한정시킨 쟁반 안에다 자신을 놓아두었는지를 깨닫게 되며, 그 순간부터 쟁반에 담긴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제서야 일생, 자신을 제한해왔던 쟁반에 놓인 실존에 순응하며 하늘이 자신을 통해 이루려는 뜻을 성취하게 된다. 구슬이 천명을 알게 된 것이다"

숙명, 천명에 대한 우리 동네 무당 할머니의 고견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인데 , 한 번은 우리 집으로 찾아와 손으로 꼬불꼬불 적어놓은 무가(巫歌)를 컴퓨터로 쳐주기를 부탁한 적이 있었다. 굿마당의 노래들은 한국인들이 그들의 생로병사를 넘어서고픈 희망을 노래한 것들이어서, 별 부담없이 돗수를 크게 해서 문서를 만들어 드렸다. 이제 무가 속에서만 숨쉬고 있는 한국인의 숨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내가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무당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귀가 솔깃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의 고객 한 분이 복채를 두둑히 갖고 찾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람의 사주와 관상 그리고 신탁을 헤아려 보니, 그냥 하얀 종이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였다고 한다. 사주에서 나오는 생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점괘가 안좋았다. 그런 사주와 신탁은 곧 죽을 사람으로 이럴 때 무당들은 가장 곤혹스러운데, 할머니는 젊고 수려한 사람이 안됐다는 생각에 점괘를 다르게-차원을 달리해서?-들려주었다고 한다. 당신은 수복(壽福)이 넘치고 재물도 곳간을 더 지어야 할 신수를 가졌으나 , 지나친 운이 자신을 해할 수도 있으니 매사에 자중자애하여 넘치는 행동을 삼가야 천명을 누릴 것이다, 라고. 하나의 점괘를 무당의 식견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 고객에게 전해지기도 한다니, 재밌는 일이었다.

우리 동네 무당 할머니가 행한 일이 없는 일은 아닌지, 소설 <창궁의 묘성(昴星)>에 보니 청나라 황궁 자금성에서 서태후의 미래를 점쳐주던 점쟁이 노파 백태태가 말똥 줍는 아이에게 그 아이의 미래를 축복해주기 위해 사주와 신탁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나온다.
아이의 점괘는 비참했다. 그의 가족들이 하나 둘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굶어죽었듯이 그 아이의 운명도 똑같았다. 점쟁이의 영안에 비친 아이의 미래는 하얀 백지였다. 백태태는 아이가 가엾어 곧이 곧대로 말해주지 못하고, 말똥이나 줍는 아이가 묘성-오랑캐별자리를 타고나 자금성 안의 보물을 다 차지할 운을 타고났다는 예언을 해준다. 지나친 덕담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거짓점괘를 믿고 서태후 곁으로 가기 위해 스스로 자궁(드라마 ‘왕과 나’의 김처선처럼)하고 자금성 안으로 들어가 환관이 된다. 결국은 서태후의 신뢰를 얻고 태후가 지닌 모든 재물을 다 주겠다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러나 환관으로 가족이 없는 그로선 재물을 넘겨줄 사람이 없으므로 받지 않는다.

점괘에 나타난 운명이 점쟁이의 해석에 따라 다르게 바뀔 수 있는지 증명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현실과소설 속에서 운명을 넘어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결정적인 운명을 소재로 살아가는 사람들 (?)을 통해 그들에게도 비결정적인 시각이 있음이 재미있었다. 상투적으로 굿을 하라는 처방이 아닌 것도 흥미로웠고.

내 곁에서 숨쉬다 떠나가신 세 분의 유언은 그분들의 삶을 잘 요약하고 있었다. 지향하던 웅혼한 뜻을 남겨주고 간 분이 계셨고, 세상에 깃들어 사는 것조차 자기 몫이 아닌듯, “미안하다”는 마지막 말씀을 남겨 가슴에서 불이 일었던 분의 유언도 있었다. 그때는 왜 그 분과의 인연에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을까... .
무료히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노라면 문득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같은 에너지를 느낀다(갈망한다고나 할까). 귀신으로라도 나타난다면 근처 찻집에 들어가 차 한 잔 마시고 싶어진다.

새해, 새날들을 앞두고 역사 속에서, 현실 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고유한 천명을 돌이켜 보았다.
중용(中庸)에는 ‘인간의 본성은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 하여, 하늘이 명하는 것이 곧 인간의 본성이고 인간의 본성이 곧 천명이다‘라는 해석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신자인 내게, 중용의 해석은 天命은 우리를 지으시고 각자의 기질에 맞게 부어주신 절대자의 숨결임을 더욱 명료하게 인식시켜주었다. 더욱 나답게 새해를 살아야겠다.

 

/이규원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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