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예외지역

재소자 곰곰은 2009년 9월 7일 자신의 입영일에 병역을 거부하고, 9일에 자신의 신념을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지금은 구치소에서 사동 청소부로 징역형을 살고 있다. 감옥 안의 생활상과 느낀 점을 보내와 싣는다. - 편집자 주

"징역 생활"이 한 달을 갓 넘기고 있습니다. 이 안에서는 "감옥에 갇히다.", "구속" 같은 표현보다는 "징역"이라는 표현이 애용되는 편입니다. 수기를 쓰기로 마음먹고도 온종일 사동 청소부로 사느라 짬이 나지 않는 요즘, '징역'이라는 표현이 입에 더 감기기는 합니다. 한 달 만에 쉬는 날을 맞이해서 미뤄두었던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제가 지내는 구치소는 요즘 새 소장이 부임해 어수선합니다. 원칙과 규정에 엄격하다던 새 소장은 부임하자마자 사동 내에 비치해 놓았던 실과 바늘을 모두 회수해 버렸습니다. 옷이 터지거나 단추가 떨어지면 재소자들이 담당 교도관을 통해 빌릴 수 있도록 비치해 두었던 것들입니다. 재소자 이발소도 폐쇄했습니다. 원칙과 규정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상하층 사이를 막을 철창을 새로 제작해 설치하고, 야간 미취침자들을 조사·보고토록 하는 등 감시의 끈을 임의적으로 조이고도 있습니다. 덕분에 일만 더 떠맡은 교도관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옷가지가 터져도 제때 꿰매입을 수 없게 된 재소자들 사이에선 "징역 시즌 2"라는 말도 나돕니다. 얼마 전 한 재소자가 분통을 터뜨리며 그러더군요. "내가 죄져서 징역 살지만, 그 사람한테 죄졌냐고! 왜 마음대로야."

저도 숨이 막히는 분위기이기에 이런 불만이 일면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한테 죄졌냐!"던 그 재소자는 평소 같은 방 사람들에게 "징역 니 맘대로 살래?"라는 말을 자주 하던 이였습니다. 조금 먼저 들어온 재소자가 나중에 들어온 재소자에게 뭔가를 시킬 때 자주 쓰는 말이 "징역 니 맘대로 살래?"입니다. "니가 징역을 더 살아봐야...", "얘 징역생활 감이 없네." 따위의 아류작들과 함께 "징역 니 맘대로 살래?"는 이 안에서 참 자주 통용되는 말이기도 합니다. 범죄자들은 '일반인'과는 달리 특수한 권력관계 속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소장이나, 전통과 기강 등을 내세워 다른 이의 행위를 강제하는 어느 재소자 사이에 그리 커다란 차이가 느껴지지 않아 묘한 기분이 들었나 봅니다.

어쩌면 이곳이 감옥이라 당연한 일을 가지고 제가 배부른 소리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개운치 않은 건, "징역 니 맘대로 살래?"가 비단 이 안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기업에서, 그 밖의 많은 장소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음은 너무 무신경하지만 않다면 느낄 수 있습니다. 권리와 평등 따위가 미치지 않는 예외 지역임을 선언하는 "여긴 감옥이야!"가 학교, 군대, 기업 등지에서 장소만 바뀌어 사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요. 감옥이 민주주의의 예외지역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가 예외적으로 적용되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싶어 개운하지가 않네요.

하루에 30분 허용되는 운동 시간이나 접견을 나갈 때, 담장 너머를 바라보며 밖의 자유를 갈망하곤 합니다. 하지만 "징역 니 맘대로 살래?"라는 말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낄 때면, "감옥은 사회가 감옥이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한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올라 불편해집니다. "징역 생활"이란 논리는 이 담장 안에서 끝나야 할 텐데 말이죠.

2010년 1월 16일 곰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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