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겨울에 태어난 아름다운 당신은 눈처럼 깨끗한 나만의 당신󰁕∼

탄생 년도, 날짜를 두고 역사적 사실관계는 말이 많지만, 분명한 건 2000년 전, 구세주로 오신 분은 어이없게도 갓난아기였다. 적어도 설화 속 산신령 이미지는 갖고 등장했어야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평탄한 지도자가 되었을 텐데... .

2000년 12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계신 엄마를 지켜야 했다. 바이탈 싸인의 변동에 하루하루 희비가 바뀌며 보름을 보내자, 머리가 허예지며 때때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만삭이던 여동생은 엄마 손을 잡고 곧 아이를 낳으니, 그 아이 백일잔치라도 보고 가라며 울었다. 결혼을 늦게 한데다, 아이가 들어서지 않아 엄마는 동생보다 더 애를 태웠다. 엄마는 하루를 동생에게 아이가 들어서기를 청하는 기도로 시작하셨다. 그 기도의 답으로 주신 아기인데...우리는 뱃속의 아기가 잘못될까봐, 예정일 1주일을 앞두고 제왕절개 수술을 예약했다.

2000년 12월 27일 아기가 태어났고 다음 해 1월 8일 엄마는 돌아가셨다.

동생은 일정기간의 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느라, 당분간 내가 아기를 돌보기로 했다. 엄마의 죽음으로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아기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혀 우유를 먹이고 나면 아기보다 먼저 잠이 들었다.

그해 겨울, 사람들은 오랜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는다며 들떠있었다. 엄마를 안장하러 도착해보니 묘지는 하얀 눈으로 덮여 있었다. 눈을 쓸어내고 장지를 만들어 놓았는데, 엄마를 차가운 땅 속에 뭍고 나만 돌아오려니 모녀간의 자연스러운 정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지난 날이 칼날이 되어 몸을 베고 지나갔다.

엄마는 늘 너를 낳고 마당을 내다보니 하얗게 자욱눈이 왔더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눈이 세상을 덮은 날, 나도 엄마를 보내드렸다.

아기는 우유를 마시면 자고, 깨어나면 잠시 놀다 빨리 우유 가져오라고 보채다 먹고 다시 잤다. 그러다 낮밤이 바뀌어 적응하느라 아기도 나도 힘이 들었지만, 정작 가장 힘든 건, 생명의 처음과 끝을 겪어내느라 지쳐버린 정서적 공황이었다. 아궁이에 던져진 가랑잎처럼 사그라드는 생명이라니...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런 마음의 공백에 아기가 "방긋" 웃어주었다, 분홍색 잇몸으로 소리도 없이. 배내짓이었을까. 나는 카메라를 준비해놓고 늘 아기의 미소를 기다렸다. 우리는 아기의 배냇짓을 필름으로 포착하여 보고 또 보며 겨울을 보냈다.

무상의, 예기치 못한, 순간적으로 다가와 사라지는 미소에 취하여 우리는 죽음 너머의 세계, 아기가 떠나온 세계가 살구꽃 피는 마을쯤으로 여기며 엄마가 그 곳으로 옮겨갔다는 생각으로 서서히 안정을 찾아갔다.

배내짓-선험적 영원성이 담긴 하느님의 선물은 그해 겨울 우리를 구원했다.

초등학교 3(4)학년 겨울, 나는 젖먹이 아기를 돌보게 됐다. 지금처럼 우유가 있지도 않아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아기를 달래느라 애를 태웠었다. 아기는 이웃집 오빠의 아기였다고 한다. 그런데 오빠는 아기 아빠임을 부정했다. 아기 엄마는 아기 아빠가 다른 여자와 혼인을 앞두고 있다는 정보를 듣고 찾아와, 아기를 보이며 혼인을 파기하고 아기와 자신을 받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녀는 논산 어느 미용실의 미용사로 일하다, 군부대 직업군인인 오빠를 만나 동거생활을 하다 아기를 낳았다고 했다. 그러나 오빠는 자신이 아기아빠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며 삿대질을 해댔다. 디엔에이 검사도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답답한 일이었다.

오빠의 집과 우리 집은 바로 이웃하고 있어 아기엄마는 오빠네 집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자,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그 집에선 아기엄마와 아기가 들어오는 걸 완강히 거부하여, 아기는 우리 집에 머물며 아빠가 받아주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동족촌이라 오빠의 결혼은 동네의 경사였다. 엄마도 잔치 음식을 거드느라 바빴다. 아기엄마는 오빠의 부모님께 아들이 자신과 동거생활을 해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논산으로 연무대로 분주히 돌아다니며 도와줄 사람을 찾느라, 아기에게 제 시간에 젖을 물릴 수가 없었다.

아기는 자주 울었다. 배가 고팠을 것이다. 아기의 울음은 이웃한 오빠네 집에도 들렸을 것이다. 아빠로 지목된 오빠는 아기와 아기엄마에게 방을 내어준 우리 집을 비난했다. 배고픈 아기에게 제대로 답하는 어른이 없었다. 아기엄마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헛수고로 지쳐 돌아오는 그녀의 앞자락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젖을 먹이는 아기엄마에게 아기가 배고파서 많이 울었다고 전하자, 아기엄마는 쌀죽을 쑤어놓고 갈테니 아기가 울면 그 물을 먹여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쌀죽물에 당원을 넣어 아기에게 먹여주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 불공정해서, 공책에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볼까 하여 첫인사만 여러 번 써놨던 기억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솔로몬 왕과 같은 지혜로 아기와 엄마를 구원해 주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사방으로 정신없이 헤매느라 아기엄마가 없는 사이, 어른들 사이에 어떤 묵계가 이루어졌는지, 아기는 추풍령 어느 부잣집에 업둥이로 가게 됐다고 했다. 동네로 인삼을 팔러 오는 아저씨가 사는 동네라고 했다. 그 아저씨가 아기를 데리고 갔다고 했다. 잠시 어른들에게 아기를 맡기고 놀다 들어와 보니, 아기는 떠나고 없었다. 나는 오빠네 집에 돌을 집어 던지고, 잔치음식을 하나도 먹지 않았다.

긴 월남치마에 검은 스웨터를 입고 드나들었던 아기엄마가 이 소식을 듣고 울며 신작로를 달려가던 게 눈에 선하다. 아기엄마의 고단한 싸움에 아기의 외갓집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아기엄마는 외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 겨울, 아기와 엄마의 힘겨운 구원요청에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해마다 성탄주보에 인쇄된 추기경님의 성탄 메시지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존하신 하느님이 냄새나는 가난한 구유에서 태어나셨다는 구절을 담고 있다. 그러나 요셉성인과 성모님 품에 안긴 아기는 성탄 메시지가 주려는 메시지를 다 뿜어내지 못하는 것 같다. 두 분만큼 사려깊은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태어나는 아기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이천 년 전 그 시절에야... .

추풍령으로 떠난 아기는 어린 내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지금도 추풍령 소리만 들으면 코끝이 매워진다.

<푸른 꽃>을 쓴 독일작가 노발리스는 사랑이 실체로 드러난 게 바로 아기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며칠 전, 마을버스를 타고 오는데 이슬람 세계에서 온 엄마가 아기를 안고 차에 오르길래 자리를 내주었다. 아기의 이름을 묻자, 압둘라 라고 했다. 청동항아리를 연상시키는 압둘라는 엄마와의 외출이 즐거운지 연신 웃고 있었다.

아기 앞에 서면 황홀해지며 마음이 푸근해진다. 사랑의 실체 앞에 선 인간이 본능적으로 보이는 현상일 것이다. “하느님은 사랑이라”, 복음서가 말해주듯 아기예수님은 분명 하느님의 강생임을 되새겨본다. 보통의 우리의 아기들도 하느님의 편린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잠깐잠깐 배냇짓으로 그가 떠나온 세계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모든 아기는 적어도 그 가정 안에서는 구세주이다.

지금은 기다림에 설레이는 시간, 아기예수님을 만나 세상에 태어난 아기들이 못난 어른들의 헛된 욕망에 희생되지 않기를 기도해야겠다.

 

/이규원 2007-12-13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