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모현 호스피스 센터 포천 간호팀 코디네이터 권오숙 로사 수녀

준비와 축복 속에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처럼 이 세상의 삶을 마치는 사람도 준비를 하고 축복을 받으며 생을 마감할 수는 없을까? 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이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도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고통스럽기만 하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죽음 앞에서 그 죽음을 부정하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며 분노하고 절망하는 사람,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의학에 기대어 오늘의 삶을 하루라도 더 연명하고 싶은 간절함이 환자 자신 또는 가족과 친지에게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한다.

임종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우며 죽음이란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완화되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 센터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권오숙 로사 수녀(53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이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여가는 임종환자들의 모습에서 오히려 삶의 진실을 배운다고 하였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호스피스란 무슨 말일까, 고개를 갸웃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호스피스란 무슨 말인지요?

호스피스는 라틴어 hospes(손님)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중세 때 성지를 순례하던 사람들이 하룻밤을 묵어가는 곳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뒤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려고 일으킨 십자군 전쟁 때 많은 부상자들을 수도자들이 치료했는데 부상자들이 이곳에서 임종하면서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사람들의 안식처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은 임종자들이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돌본다는 뜻을 말하는데, 넓게는 환자의 가족까지 돌보는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 수도회(마리아의 작은 자매회)의 사명이 다양한 형태의 임종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간호하는 일입니다. 제가 수도회에 들어온 지 25년이 되었는데, 20년 남짓한 세월을 수도회의 소명에 따라 호스피스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호스피스 환자는 다양한 질병으로 임종의 과정에 들어가는, (삶이) 6개월 정도 남은 분들입니다. 무엇보다 암환자들에게는 예후가 보이는데, 의학적인 통계로 2~3개월 진단을 받은 말기암 환자분들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말기암 환자는 육체적인 통증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정서적으로도 고통에 시달립니다. 총체적인 통증에 시달리는 말기암 환자의 경우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통증 완화와 불편감을 완화해 주는 일입니다. 이렇게 총체적인 통증을 완화하는 간호를 하는 게 호스피스 팀의 역할입니다.

의사는 신체적 통증을 완화해 주고 죽음에 대한 숙련된 전문 간호사와 사회사업가 그리고 카운슬링을 공부한 심리 종교적 상담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총체적으로 한마음이 되어 호스피스 환자를 돌봅니다. 무엇보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터부시하고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 문화와 깊이 관련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하는 데 대한 국민의 의식구조와도 관련되어 있어 의료보건 분야에서는 국민의 보건운동으로까지 발전시켜 말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의료 선교를 위해서 호스피스 센터를 운영합니다. 천주교에서는 대표적으로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센터가 있고 광주에 천주의 성 요한 의료 호스피스 센터가 있고 서울 시흥 전진상 호스피스 센터가 있으며 저희가 하는 모현 호스피스 센터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1963년도에 강릉에서 저희 수도회 수녀님들이 환자들을 가정방문하면서 호스피스를 시작하였습니다. 1965년도에는 갈바리 의원의 문을 열었는데, 당시는 결핵환자들이 많았습니다. 중풍 등 만성병으로 임종을 앞둔 분들을 위하여 의원 옆에 임종의 집을 마련하였습니다. 그 뒤 1989년에 가난한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소명을 가지고 서울 답십리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방문하였는데 자연스럽게 임종환자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때 가정의학을 전공하신 호주 출신의 의사 수녀님이 함께 환자들을 방문하였습니다. 답십리에서 미아리를 거쳐 서울 권역에 있는 병원 응급실과 가정방문을 시작했고 한 달에 한 번씩 호스피스를 위한 모현 연구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아직 호스피스를 인식하지 못할 때 의사들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보여 연구모임을 했는데 그것이 지금은 학회로 발전했습니다. 그때도 무엇보다 우선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게 무엇이냐는 거였습니다.  


준비를 한다고 하여도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호스피스 환자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요?

호스피스는 Breaking bad News 또는 Dead man walking이라고 합니다. 장례 미사를 마친 뒤에 한 신부님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물감이 느껴져 목을 만지니 혹이 잡히더랍니다. 검사를 받으러 걸어가는데 그 걸음이 마치 Dead man walking의 심정이었답니다. 그러니 임종환자들의 심정이 오죽하겠습니까?
일생이 순식간에 지나가면서 이젠 죽음이다, 이런 심정이죠. 그럴 때 호스피스 환자들이 하는 말이 병원에 대한 원망입니다. 그렇게 죽음의 나쁜 소식을 전하는데 환자들이 심리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하는 배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이란 사람마다 다르지만, 칠팔십이 된 할아버지도 죽음은 느닷없는 방문이라는 것입니다.  

한 유명한 노(老) 시인이 있었습니다. 말기에 이르러 “더 이상 힘드신 것 같으니 준비하셔야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너무 빠르다!” 그러시는 거예요. “나는 백수를 할 줄 알았다.” 그러시는데,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나이가 많으니 준비되어 있다 그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 요즘은 40대의 암환자가 많은데 그분들 마음이 오죽하겠습니까?! 가족들과 알토란같이 살고 싶은데 죽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breaking bad news를 전달하는 방법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교 문화가 보편적이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적인 재미 때문에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더 힘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면서 성찰을 하면서 산 사람들은 멋있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호스피스란 환자가 죽음을 선고받고 몇 개월, 한두 달이지만 죽음의 과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그동안의 삶을,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통합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저희는 당신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살았다, 의미 있는 삶이다, 이렇게 멋있고 품위 있게 가는 과정을 통합해 주는 일을 합니다. 말하자면 삶을 완성해 주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종의 마지막 단계는 열심히 일하며 살다가 휴가를 받는, 삶의 보석들을 건지는 기간입니다. 인생에 대해서, 하느님에 대해서 말입니다.  

▲ 모현 호스피스 포천 센터 복도에는 "물고기가 물에서 살듯 우리는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라는 액자가 걸려 있다. 그분 안에서 죽음을 이승처럼 받아들이자는 뜻일까?

임종환자들의 심리적 과정은 다섯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다음에는 분노하고 화를 내며 다음에는 타협을 하고 우울해하다가 수용을 하는 단계를 거칩니다. 이때 저희들한테 전이되는 감정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도 우울해지고, 임종환자들이 화를 내는 단계에 대처를 하게 되고 에너지가 소진이 됩니다. 소진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환자와 나를 동일시하는 현상 때문에 나타나는데, 이유 없이 싫은 때가 있습니다. 내 문제가 환자한테서 보이면서 환자가 싫어지는 겁니다. 내 안에 묻어두었던 상처가 그분들을 통해서 보이거든요. 그런 동일시 현상을 제일 많이 겪습니다.

나의 성격, 상처, 어떤 무의식에 눌려있던 사건들, 정당한 사변을 하지 못하고 자라면서 눌려있던 것들이 드러납니다. 그런 동일시 현상이 제일 힘들어요. 저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자궁암으로 병상에 있는 5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유 없이 그분을 방문하기가 싫은 거예요. 어느 날 피정을 하면서 성경의 오그라든손을 묵상하는데 엄마와 저의 관계가 보이는 거예요. 완벽한 어머니한테 미치지 못하는 큰딸, 그 딸이 수녀원엘 간다 하니까 1년 반이나 침묵으로 일관하신 어머니, 가지 마라는 말 대신에 오히려 잘해 주신 어머니, 그 딸이 수녀원에 가자 충격을 받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신 어머니와 저의 관계가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묵상을 통해서 어머니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거예요. 완벽한 어머니의 성격, 외할머니한테 물려받은 성격이 딸인 나한테도 이어지고, 애지중지하던 큰딸이 자기를 거역하고 생판 모르는 천주쟁이 수녀가 된다는 게 얼마나 억울하셨을까?! 당신 자신을 꺾고 잘해 주셨던, 나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나를 받아들이고 잘해 주신 어머니의 따듯한 사랑을 느꼈어요.

그 아주머니가 우리 어머니와 비슷하셨어요. 자신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강제로 시집을 가서는 살 수가 없어 서울로 도망을 왔어요. 살 만해지자 종교기관에 맡겨 둔 막내를 데려와 사는데, 이제야 살겠다 싶은데 덜컥 자궁암에 걸린 거예요. 말기가 되어 친정어머니가 도와주어 초기에 고쳤으면 살 수 있었는데 하는 억울한 심정이셨어요.

피정을 하면서 나와 어머니의 관계가 해결되고 나니 그분의 어머니가 생각났어요. 어머니를 불러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병원에서 말기 진단을 받고 한두 달쯤 살 거라고 하였는데, 어머니가 오셔서 된장국도 끓여주고 화해를 하면서 병세가 호전이 되었어요. 하루는 어머니가 해준 음식을 먹고는 화장실을 갔다 오더니 뭐가 확 빠지더라고 하더군요. 그 뒤 두 달쯤 사신다고 한 분이 텃밭에서 일도 하시면서 2년을 더 사셨어요. 심리적으로 어머니와의 문제를 털어버리고 어머니와 화해하고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던 거죠.  


호스피스 환자들과 만나면서 내 죽음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죽음이 두렵지는 않은가요? 

어둠의 세계라고 죽음이 두렵지는 않아요. 임종하는 분들을 보면서 두렵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오히려 기도할 때 임종환자가 겪는 고통을 겪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요. 학교 다닐 때 책을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까뮈나 쇼펜하우어 등을 즐겨 읽었어요. 성격도 그렇고, 죽음에 대해 탐미했다고나 할까….

죽음의 시간은 아무도 모르잖아요. 가정방문을 할 때는 임종환자들에게 죽음을 예비시키면서도 죽음의 시간을 함께하는 일은 힘들어요. 조용히 기다리다가 돌아가시기 전에 수녀원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요즘엔 야간 간호를 하기 때문에 종종 임종의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임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간호는 우리 수녀회 창설자인 메리 포터를 통해서 더욱 간절히 전해져요. 온갖 질병을 앓던 메리 포터는 죽음에 이르는 인간적인 고통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어요. 그래서 임종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와 간호를 썩지 않는 열매를 맺는 일이라고 했죠.

육체적으로 죽음에 이른 적은 없었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런 체험을 하였습니다. 육체적인 죽음이 사회적 영성적으로 존재가치가 떨어지는 거라면, 심리적으로 가족한테도 알릴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은 분노밖에 없었어요. 죽을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는데, 마지막에 남은 건 오직 하느님뿐이었어요. 다행인 것은 원망은 했지만 하느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는 거죠.

제 고통을 통해서 완전히 혼자 된 상태에서 누군가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그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미소 한 번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죽으면 끝인데, 그러기에 죽음의 준비를 잘 해야 된다는 것을 느꼈죠. 잘 사는 삶만큼 잘 죽는 것도 참 소중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죽어가는 분들을 보면서 살아있다는 소중함을 더욱 확실히 알게 되는 거죠. 정말 투철하신 한 신부님이 죽음 앞에서, “죽을 거라고 하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하느님이 계실까? 하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하실 때는 죽음이라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 사람을 이렇게 몰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임종환자들이 반짝 하는 마음에 ‘나는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해요. 그때 “만약에 하느님이 기회를 주신다면 뭘 하시고 싶은가요?” 하고 물으면 아주 단순하고 소박한 말씀들을 해요. 봉사의 삶을 살고 싶다거나, 아이들이 커서 시집 장가가서 아이 낳고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거나, 아들이 대학 입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아주 인간적인 것들이에요.

죽음은 사실 인간성이 없어지는 것이에요. 다양한 죽음을 보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는 것답게 누리고, 하느님께서 주신 그대로를 즐기게 하죠. 사랑하고 나누고 보살피고 돌보는 인간적인 삶 말이에요. 그래서 어떤 심리적 고통을 가진 사람한테도 친구가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죽음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힘들어요. 모든 사람이 다 똑같아요. 나이가 많다고 하여 다르지 않거든요. 죽음을 수용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가지면 죽고 버리면 산다. 죽음은 버리고 떠나는 작업이구나!” 그런데 소유한 것을 버리고 피붙이와 이별하는 게 참 힘든 것 같아요, 그 힘든 걸, 저희가 버리고 작별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거죠. 임종을 앞둔 분과 가족이 꼭 해야 할 이야기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데 서툴러서 힘들어해요. 그럴 때 “같이 울면 어떠냐? 울기도 하고 할 말이 있으면 이야기도 해라, ‘당신은 가장 멋진 남편이야!’라든지 ‘제일 좋은 어머니였어요.’라든지….” 그렇게 표현을 하고 나면 달라져요.

알코올 중독자 아들 때문에 돌아가시지 못하는 할머니가 계셨어요. 임종을 앞둔 어머니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숨을 거두지 못하셨어요. “할머니, 아들이 술 마시고 그러니 걱정되시죠. 아마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보기가 고통스러워, 슬퍼서 오시지 못하는 걸 거예요.” 그랬더니 할머니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시고는 숨을 거두셨어요.

무엇보다 임종하는 분의 마음을 읽고 짐을 덜어 드리는 게 중요해요. 마지막 꼭 해야 하는 작별을 못하면 무척 힘들어하시죠. 그래서 저는 교회의 고해성사가 참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이 되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 기쁨을 느낄 때 기뻐하고 참된 자기의 소리에 충실하라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죠.

죽음을 잘 준비하는 분들도 계실 테고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 많은 이들의 죽음 속에 기억되는 죽음이 있다면….

어느 수도회의 한 젊은 수도자의 임종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 수녀님한테 “(삶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으니 준비하시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하세요.” 했더니, 놀라시더라구요. 죽음은 그래요. 아무리 준비를 해도 준비가 안 되는 거죠. 그분이 죄를 너무 많이 지었다며 고해성사를 안 보려고 하셨어요. 수도자로서는 금지된, 어떤 분을 사랑하신다고. “인간으로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 살면서 하느님이 주신 감정에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것은 당연해요. 그건 죄가 아니죠. 다만 수도자로서 범한 잘못이 있다면 그건 사제한테 고해성사로서 푸셔야 하는 거죠.” 하고 말씀드렸더니, 당신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고해성사를 받고 죽음 앞에 나아갔습니다. 이렇듯 죽음은 삶의 진실을 아주 많이 일깨워줘요. 호스피스 환자들은 그런 걸 많이 그리워해요. 사랑에 대한 감정에 충실하라는 진실에.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 후회하게 되거든요.  

온갖 것을 다 하고도 아직 빠르다는 그런 분도 계시고, 안타까운 나이에 죽는 이도 있어요. 민선이는 서른 살의 나이에 크론씨병으로 죽었어요. 작년 8월에 경희대 병원에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민선이를 만나면서 내가 어머니가 되었어요. 다재다능하고 밝고 환한 아이였어요. 어려서 부모와 떨어져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동시통역 일을 하던 친구였죠. 민선이를 돌보는 동안 주위에서 다들 나를 엄마인 줄 알았거든요. 오랫동안 엄마와 떨어져서 살아 그런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하지 못 했던 듯해요.

호스피스 병동에서 좋아져서 퇴원을 하였다가 상태가 나빠져 뼈만 남은 채 호스피스 병동으로 다시 왔는데, 와서는 처음 하는 말이 “저, 이제 못 나갈 것 같아요.”였어요. 정말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느껴지고, 아이와 제가 너무 밀착되어 있어서 제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겠더라구요. 너무너무 두렵다고 할 때는 엄마의 심정이 젊고 예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 아이를 병원에서 하루라도 더 연명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마지막이 되어 “민선아 정말 마지막인 것 같다. 울고 싶으면 울어!” 하였더니 막 울면서 “엄마, 나를 정말 사랑해?” 하는 거예요. “내 아들이어서 정말 기쁘다. 너는 내가 아는 제일 멋있는 남자야! 하늘나라 가면 비싸고 좋은 자리 마련해 놔라!” 그러니까 아들이 “오시고 싶을 때 언제든지 오세요.” 그러면서 눈을 감았어요. 제가 죽음을 준비시킨 분들이 1천 명이 넘는데, 그때는 “하느님, 차라리 저를 데려가고 민선이를 살려주세요.” 그랬어요.  


세상에 태어난 목숨이 언젠가는 숨을 다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생각하고 삽니다. 수녀님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승화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배운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호스피스 활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라고 하면….

본인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는데, 오히려 가족이나 주변 친지들이 힘내라고, 먹어야 산다고 그래요. 이런 유혹을, 이런 공모를 방지하려면 환자와 함께 가족도 돌봐야 합니다. 죽음과 맞닥뜨리기 힘든 것은 진실도 맞닥뜨리기 힘들게 합니다. 사랑하고 죽어가고 삶의 자연스러운 것들을 가리거든요. “힘내! 그렇지 않아!” 그러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못 해요. 그래서 가족 상담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럴 때 가족들한테 “거짓말은 하지 마라, 차라리 침묵해라!” 그래요. 침묵도 힘들어요.

죽음의 시간은 환자가 제일 먼저 알아요. 언제 죽을지를. 서서히 힘이 소진되면서 죽음의 순간을 알게 되는 거죠. 그 마지막 순간에 온갖 유혹이 와요, 가족들로부터. 그 유혹을 이기는 건 진실입니다. 가족들이 거짓을 이야기하면 환자는 유혹에 빠져요. 그것을 타협의 단계라고 하는데, 환자 자신은 알면서도 주변에서 그러면 유혹에 빠지게 되죠. 그러면 일시적으로 심리적인 호전 현상이 일어나기도 해요. 타협의 단계에서 환자는 복합적인 통증을 느껴요. 막 뛰어가다가 시멘트 바닥에 넘어져 까진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고, 얼음 위에 다리를 올려놓는 고통이라고나 할까. 그러기에 거짓이 아닌 진실이 정말 중요해요.

한 분, 한 분의 죽음이 다 다릅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생을 만납니다. 몇 시간, 며칠, 몇 달, 인생 전체를 만나는 거죠. 그분들은 우리한테 참되게 살아가는 법을 일깨워 줍니다. 크고 좋고 최고를 가진 사람들은 그런 걸 못 버려서 힘들어하는데, 가진 게 적고 그걸 내 것이라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나눌 게 무엇인지 알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뵐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웁니다.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마음의 교류라든지, 하느님이 주신 능력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늘 일깨워 받습니다. 교회의 ‘병자성사’는 예수님의 대리자인 사제와 교회 친구들이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임종환자를 이끌어줍니다. 그래서 유혹을 덜 받아요. 고해성사와 병자성사는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참 소중한 성사입니다.

호스피스 환자를 돌보면서 가장 훌륭한 간호는 환자의 고백을 듣는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환자가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크고 좋고 아름답고 멋있는 게 아니라, 정말 부족하지만 가난하지만 없지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게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돌보는 사람들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게 됩니다.  

어찌 보면 우리의 문화는 낙태 환경 인권 등 죽임의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논리 바탕에는 가난하고 보잘것없고 늙고 그런 사람은, 거칠게 말하면 죽어야 된다는 생각이 깔려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남을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런 사회현상을 거스르는 운동 차원에서 호스피스는 인권회복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효과적인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도 있고, 죽임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조금 일찍 가는 거라며 편안해하시는 분들, 자비의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포용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새로운 빛의 품으로 들어가는 거죠. 두려움 중에 하느님이 함께하신다는 위안은 엄청 큽니다. 이제 나는 끝이구나, 죽을 수밖에 없구나, 할 때 하느님의 힘을 느끼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는 죽는구나 하는 절망감을 넘어선 어떤 빛으로 들어가는 거죠.

삶의 마지막 문에서 어떤 모습으로 가느냐 하는 데 대한 성찰, 그것이 호스피스 활동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분들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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