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 사진/김용길

참으로 긴 날들이었다. 1월 9일이 발인이니까 355일장을 치른 셈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가장 긴 장례가 아닐까 싶다. 2009년을 하루 남겨두고 서울시와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는 정부의 사과와 보상 등에 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경향신문은 다음 날 “눈물... 분노... 용산, 345일만의 승리”라고 머리기사를 뽑았다. 과연 승리인가? 그것도 안 됐으면 어쩔 뻔했느냐, 저 거대한 권력 앞에 한도 끝도 없이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보느냐, 미흡한 건 인정하지만 그 정도 선에서 마무리된 것만도 승리라고 할 만하지 않겠냐는 뜻일 게다.

정운찬 총리는 “총리로서 책임을 느끼며 유족들께 깊은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신문들은 정부가 사과했다고 썼다. ‘유감’은 정치하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마음이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사과’와는 다르다. 사과해야 할 쪽은 잘못했다는 말이 부담스러워 유감이라고 둘러대는데 사과를 받아야 할 쪽은 유감을 사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정부가 잘못했다고 사과했으니 피해보상금은 당연히 정부가 지불해야 옳다. 그러나 피해보상금, 장례비용 등은 재개발조합이 부담하기로 했단다. 정부가 말은 유감 운운하면서도 속마음은 잘못한 게 없다고 뻗대는 것이다. 보상금 35억이 재개발조합 뒤에 있는 사업주 삼성의 돈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다 안다. 삼성의 이건희가 유독 혼자만 섣달 그믐날 사면이란 특혜를 받은 희한한(?) 조처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한 푼이라도 더 받아내기 위해서 냉동고 속의 시신을 담보로 발악을 한다는 일부의 악성 비난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년이 다 되도록 상복을 벗지 못하고 허구한 날 눈물로 밥을 삼켜온 유족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시쳇말로 까칠하게 꼬치꼬치 따질 일이 아니다. 더더구나 겨우 조문 몇 번하고 미사에 몇 번 참례한 것이 전부인 나 같은 위인이 감히 피해 당사자인 유족들이나 범대위의 처사가 성에 안 찬다는 듯 함부로 말하는 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짓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개운치 않고 영 찜찜한 구석이 지워지지 않는 이 심정은 왜일까. 무엇이 지금 내 가슴을 이다지 답답하게 옥죄는 걸까.

어차피 이 정부가 방화살해의 책임을 통감하고 수장인 대통령이 나서서 머리를 조아리는 아름답고도 감동적인 그림은 꿈도 꾸지 않는다. 일제에 나라를 잃은 지 한 세기가 지났어도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민간인에게 떠맡기는 정부, 민족상잔이 회갑을 맞고 광주학살이 30년을 넘겼어도 책임자의 처벌은 고사하고 진상규명조차 못(안)하는 정부여서다. 툭하면 되풀이 탓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지만 우리가 우리 손으로 뽑아 만든 원죄가 있어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모든 것을 가난하고 못난 자의 운명이려니 여기고, 때리고 짓밟는 대로 얻어터지고 쫓기면서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열사들의 장례식마저 끝까지 거부하면서 죽은 사람 살려내라고 막무가내로 버티라는 것은 아니다. 그건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유족들과 전철연 식구들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요구다. 인간의 탈을 쓰고는 못 할 짓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참사의 현장과 빈소를 지키며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해온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장례미사를 마지막으로 조용히 천막을 걷으려는 뜻을 헤아릴 수 있겠다. 협상 결과에 만족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판단해서가 결코 아니다.

이것 하나만은 꼭 짚어두자. 용산문제의 해결은 ‘유감’과 ‘돈’의 합작품이 아니다. 해결된 게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돈보다 더 귀히 여겨질 때까지, 그리하여 숯덩이가 된 열사들이 찬란히 부활할 때까지 용산의 투쟁은 또 다른 형태로 계속될 것이다. 아니 계속 되어야 한다.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주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