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원의 초록별 이야기]

"남과 여 그리고 사랑"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다양함은 천일야화를 넘어, 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사랑은 우리보다 강하다"

66년에 제작된 클로드 르로슈 감독의 영화 <남과 여>에 나오는 대사다.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주문처럼, 두 연인은 위 대사를 반복하지만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줄이지 못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던 연인들이 안타깝던 영화였다.

여자들은 아름답고 이지적인 여주인공 "안느"가 되고 싶게 만들던 영화였고, 남자들 역시 여자를 보는 순간 설레임으로 목소리가 진정되지 않는 영화 속의 안느와 같은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게 만들었다. <남과 여>는 여자다운 여자와 남자다운 남자의 교본 같은 영화였다.

같은 아파트에서 10 여 년을 같이 살았던 동네언니이며, 같은 성당의 교우였던 언니가 떠난 지 벌써 5년, 그 날도 오늘처럼 가을이 시작되는 길목이었다. 53살의 나이에 떠나는 언니를 성남의 화장터에서 보내는 날, 형부는 언니의 친인척은 물론 이런저런 연유로 마지막 인사를 하러온 사람들과 조금 떨어져, 눈만 껌먹껌먹 말이 없었다.

언니는 어려서 한쪽 다리를 잃고 인조다리에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게다가 얼굴 한쪽 뺨 전체에 퍼진 검푸른 혹이 있어, 늘 머리를 내려 감추는 헤어스타일을 고집했다. 형부 역시 팔을 하나 잃어 허전한 사람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언니는 아픈 몸으로 취로사업을 다니며 생계비를 벌어오는데 비해, 형부는 자신의 허전함을 술로 채우려 들었다. 동네사람들은 남편이라는 위인이 여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소주나 마시고, 술값이 없거나 울화가 치밀면, 여자나 때리는 "못난 인간"이라고 형부를 비난했다. 그러한 연유로, 형부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 되어 아내를 잃고도 울 자격을 박탈당한 채, 사람들의 냉소를 온 몸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1시간 30분이 지나자, 언니는 53년 동안 온갖 애증을 담았던 몸을 버리고, 한 줌의 희뿌연 분말이 되어 도자기 안에 담겨 나왔다. 형부는 신주단지를 끌어안듯, 한 팔로 언니가 숨은 도자기를 품에 안더니 소주 같은 눈물을 쏟아냈다. 남편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 남자가 흘리는 눈물이 아내의 유골함을 적셨다. 여자로 태어나, 아름다움을 갖추고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살고 싶었을 언니 역시, 유골함에서 형부의 뜨거운 눈물을 안타깝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외팔이였기에 닦을 수도 없는 형부의 눈물을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며 흐느꼈다.

안치장소가 없는 성남의 화장터 사정으로, 언니의 유골은 형부의 품에 안겨 용미리로 가야만 했기에 유족들을 먼저 보내고, 구역장님을 중심으로 성당신자들이 화장장 아래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가 국밥을 먹었다. 안개가 감돌듯, 육신의 냄새를 품고 떠도는 바람이 식당 안까지 불어왔다. 뚝배기에 담겨진 한 그릇의 국밥을 다 먹어버렸다. 배고프지도 않았는데.

죽음의 자리를 선뜻 박차고 일어나기가 민망해 나누는 밥상이었건만, 그날의 국밥은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두고두고 되새겨보게 만들었다. 이미 천국에 닿은 언니가, 지상에 두고 온 지인들을 위하여 천국의 맛을 가미해낸 듯하였다. 그 후로 나는 상갓집에 가서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경우, 남몰래 흐뭇했다.

언젠가 하루, 언니와 몇몇 지인들이 함께 뚝방을 거닐다, 잠시 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언니가 힘없이 쭈르르 미끄러지더니, 그만 인조다리가 벗겨져 굴러 내려가는 일이 생겼다. 그 당혹스러움에 아무도 말을 내놓지 못하는 순간, 언니는 구르듯 뒹굴며 내려가더니 다리를 주워 끼우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앉았던 자리로 돌아왔다. 말없이... .

미사를 보러 성당 계단을 오르내리며 만나면, 아는 척도 모르는 척도 아닌 스치는 만남으로만 이어지던 언니였다. 그러다 같이 성지순례를 다녀오면서 조금 가까워졌다. 이미자의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던 언니의 노랫말을 새겨들으며, 나는 유행가 속에서 확인되던 고통에 찬 여자들의 삶에 씁쓸했었다.

음식점 뜰 앞 채소밭의 여린 배추, 무우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유골함을 안고 흘리던 형부의 눈물이 지워지지 않으며 옛날영화 <남과 여>의 장면들과 오버랩되었다. 둘이 도빌 해변가를 거닐던 장면, 사랑의 감정에 차를 몰고 생 라자르 역으로 달려가던 장 루이, 그리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지만 어떤 기약도 하지 못하던 두 사람, 다시 또 헤여질 것 같은 감정이 이어져 불안해지던 장면들... .

영화는 "사랑이 우리(연인들)보다 강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끝이 났다. 연인들의 꿈은 오로지 하나, 사랑을 이루는 것이리라. 영화속의 연인이든 현실 속의 가난한 연인이든 어리석음에, 혹은 초라한 현실에 매여, 더러는 영화 속 연인들처럼 과거의 그림자에 갇혀, 사랑은 유산된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에너지들은 어디로 흘러가 고여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서 세상 너머로 강이 흐른다면, 그 강 어디쯤에서 다시 만나 사랑의 완성을 이룰 시간이, 기회가 주어질까...?

사랑은-진실한 사랑은 사랑의 장애물인 욕망을 넘어서 사랑의 역할을 다 하는 것 같다. 사회적 제약을 건너, 시공간을 넘어 애초의 원의를 간직하며 피어나리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만나는 들꽃이나, 기대하지 않은 호의를 마주하면 더욱 그런 확신이 굳어진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이루어진 사랑이기에, 홀로 견딘 아픔이 새겨진 채... .

영화 <남과 여>의 연인 그리고 언니와 형부의 사랑이 풀향기 그윽한 레떼의 강가에서 완성을 이루길 빌어본다.

 

/이규원 2007-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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