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비평-한상욱]

▲ 사진/한상봉

새해가 되고 눈이 세상을 덮었다. 지칠 줄을 모르고 달려온 세상의 속도는 한순간에 정지되고 말았다. 자동차도, 전철도, 비행기도 한순간에 멈추어 섰다. 사람들은 불편했지만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속도에 몸을 실지 않으면 한시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쌓인 눈으로 무한 속도가 거북이걸음으로 변했을 뿐이다. ‘30cm의 눈’과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에 인간이 편하게 만들어 놓은 시스템은 아무런 작동을 할 수가 없었다.

‘30cm의 눈’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이라도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커다란 교훈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기는커녕,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파김치가 되어 전철에 몸을 맡기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책상 앞에 앉아서 눈 올 때는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개그를 던지는 지도자 밑에서 사는 우리는 불행하다.

그 지도자의 눈에 자연은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인간에게 돈을 벌게 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준에서는 환경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것도 녹색성장으로 둔갑한다. 이젠 강마저 파헤치며 물길을 거스르고 근본을 뒤흔들어 놓으면서 그것이 성장이라고 한다. 자본주의는 닥치는 대로 파헤쳐서 개발해야 성장한다는 이들의 강박관념으로 인해 그 밑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은 삶이 더 힘들어진다.

성장과 개발이라는 신화의 그 이면에는 그것에 의해 무한이익을 전취하는 탐욕스런 독점 자본과 부패한 권력이 있을 뿐이다. 독점자본과 권력은 한 몸뚱이다. 이들은 모든 것을 지배하려 한다. 그리고 성장과 성공 이데올로기로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킨다.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서울 한복판에서 1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참담함을 보여준 용산의 철거민을 보면서 우리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성장과 개발은 더 이상 생명이 아니라 죽음이며, 나눔이 아니라 독점이며, 인간이 아니라 괴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성장과 개발이라는 신화에서 우리가 먼저 탈출해야 한다. 한 예를 들어보자.

현재 주택보급율이 110%에 가깝다. 이미 10년 전부터 주택보급율은 100%이상이었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크든 작든 누구나 자기 집에서 알콩달콩 집 걱정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전, 월세를 사는 무주택자는 40%가 훨씬 넘는다. 지배 권력은 매년 수십 만호를 짓는다고 떠들지만 고층 아파트만 올라갈 뿐 서민들을 위한 주택은 거의 없다. 오르는 전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월세로, 쪽방으로, 고시원으로, 거리로 내쫒기면서, 밑바닥 인생들은 마지막 거처를 찾아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주택 보급율이 200%가 되어도 투기공화국에서 사는 한 서민들에게 집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런데 또 개발에 목을 맨다.

4대강도 역시 마찬가지다. 소수의 토건자본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파괴가 성장으로 둔갑해도 개발하면 삶이 달라진다는 이 거짓신화에 우리는 이미 오래전 포로가 되었다. 적어도 이러한 무지를 질타하고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소위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는가와 직접 관련되어있다.

그러나 우리의 민주주의는 참 허약하다. 연말 여의도에서 민주주의가 실종된 채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주요법안이 매일 날치기되는 상황을 눈앞에서 보면서도 어찌 할 수가 없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세력 역시 비판만 하는 것에서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소위 민주화 세력이라고 해도 주장만 있었지 변화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성장과 개발의 이익에 똑같이 무임승차하여 편안한 삶에 길들여져 있었다.

이 대목에서 과연 대안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먼저 가치의 문제이다. 더 이상 성장과 개발이 아니라 분배와 공존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당당하게 외쳐야 한다. 어설프게 성장과 분배는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현혹해서도 안 된다.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에게 먼저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면 더욱 분명하게 외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

인권이 파괴되고, 사람을 내쫓고, 노동자를 업신여기고, 강을 파헤치고, 이젠 영혼마저 마비시키려는 음모 앞에 저항하고 스스로가 대안적인 가치에 따른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지 않는 한 가난한 이들의 삶은 더욱 불행해진다.

한상욱 (인천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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