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걸음, 산티아고 가는 길-마지막회]
2008년 7월 27일
다시 길을 걷고 있다. 햇볕은 날 아주 구워먹을 기세로 덤벼들고 발은 퉁퉁 부었다. 배낭은 천근만근 무겁고 온 몸에서 백 년은 묵은 듯한 쉰내가 난다.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부옇게 흙먼지가 날리는 낯선 길, 주변을 둘러본다. 저만치 몇 사람이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에게 다가가 “안녕하세요!” 인사하려는 찰나,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얼싸안았다. 친구들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길을 가고 있었다. 학교 선후배들, 가족과 친척들, 오랫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사람들, 내가 아는 모두가 삼삼오오 이 길을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어깨에 자기가 질 수 있을 만한 배낭을 메었고 더러는 힘들어하고 더러는 옆 사람과 웃기도 하면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는 다함께 산티아고로 가는 중이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산티아고 입구에서 사람들을 마중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함께 목적지에 도착했고 서로의 여행을 마음껏 격려하고 축하하는 잔치를 벌였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물건을 서로 찾아주기도 하고 이제 여행이 끝나 필요 없어진 것들을 서로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놀던 자리를 정리했다. 함께 계시던 신부님 한 분이 우리 모두를 축복해주셨다. 나는 이 여행이 끝난 게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즐겁게, 부지런히, 자기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계속해서 까미노 꿈을 꾸었다. 꿈속의 내가 걷고 있는 길에는 항상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함께 있었다. 어떤 날은 사람들과 투닥거리기도 하고, 어떤 날엔 모두가 형제라고 느껴지면서 서로의 가슴에 충만한 사랑과 평화를 만끽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까미노가 그리워 울기도 했다.
참 이상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땅은 분명히 이곳이고 나는 그저 까미노를 여행했을 뿐인데 자꾸만 그곳이 고향이라고 느껴졌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나도 모르게 까미노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게 되곤 했다. 까미노를 떠나서 나는 '집’에 돌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 집은 바로 그 길 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길 위의 나무, 돌, 흙, 꽃, 새들과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간 마음, 이 모든 것이 바로 내 집이었다. 이제 와서 보니 내가 존경하는 스승들의 삶도 이 깨달음을 몸으로 살아내신 것에 다름 아니었다.
며칠 전, 순례 첫날 피레네산에서 빠진 엄지발톱이 영영 내게 작별을 고했다. 그동안 반창고로 꽁꽁 동여매고 걷느라 아직 살점에 붙어있던 발톱이 툭! 하고 떨어져나가는 순간, 내 마음 속에서도 무거운 것 하나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석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목숨을 다하고서도 자기 자리를 지켜준 엄지발톱, 지금까지 네가 버텨준 덕분이구나. 고마워. 이제는 편히 쉬렴. 까맣게 죽어있던 엄지발톱이 떠나간 자리에는 새로 자라난 발톱이 꿈틀꿈틀 저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보니 엄지발톱이 죽음을 맞은 그 순간부터 이미 새 발톱은 자라나고 있었던 거다. 고마운 엄지발톱, 이렇게까지 날 배려해주다니. 나도 죽어가면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이렇게 누군갈 기르고 보살필 수 있을까.
한 달 전 산티아고에서 내게로 부친 엽서를 오늘에야 전해 받았다. 성당이 마주보이는 회랑에 쭈그리고 앉은 나는 서른한 살의 봄을 오롯이 보낸 그 길을 사랑하고 그리워했다. 어쩐지 그곳에 돌아가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벌써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까미노는, 생장에서 시작되어 산티아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내 까미노는 생장에서 시작된 것도, 8년 전 어느 빈 강의실에서 시작된 것도, 내가 이 행성에 오면서부터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내가 ‘나’로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 그때 이미 시작된 것이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것처럼.
그러니 이 먼먼 여행이 돌고 돌아 끝이 나면 나는 언제나 그렇듯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때까지는 아마도 이 순례여행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즐겁다.
내 몸에서 아직 길 위의 바람 내음이 나는 것 같다.
2009년 2월 5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달라졌다. 그러면서 달라지지 않았다.
사실 나는 만화영화 속의 변신 장면처럼 뿅!하고 내가 달라지기를 기대했다. 그래서 내 몸이 낫고, 내 마음속의 온갖 아픔들이 씻겨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는 엄연히 중력의 지배를 받는 지구인이었다. 후광이 비취는 천사들이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엔 너무 무거웠는지도 모르겠다. (에잇!)
길 위에서 나는 진짜 많은 것을 ‘몸으로’ 배웠다. 그 배움은 더러는 자연을 통해서, 더러는 사람을 통해서 왔고 유쾌하고 즐거운 감정을 통해서나, 아프고 쓰라린 감정을 통해서도 왔다. 하지만 가장 값지고 귀한 보물은 역시 아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목숨처럼 힘껏 붙들고 있는 이 ‘에고’라는 껍질을 깨어내는 과정 없이는 진짜 보물을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껏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건 아니었다. ‘배고프면 먹고 고단하면 잠을 잔다’처럼, 아주 단순한 것들이 진리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순례여행의 온갖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가르침의 핵심은 딱 하나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나는 신의 한 부분이고, 그러므로 내가 곧 신이기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곧 신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까미노뿐만 아니라 도처에 널려 있었다. 이제와 보니 세상 모든 것이 이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여행에서 돌아와 현관을 열고 들어섰을 때 나는 잠깐 멍해있었다. 이 작은 방 안에 온갖 물건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지난 몇 달간 5킬로그램이 안되는 배낭 하나로 살면서 무언가 부족하단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는 데는 생각처럼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 많은 책과 옷과 물건에 둘러싸여 지내면서도 항상 뭔갈 더 가지려고만 애써왔다. 배낭을 멘 채로 현관에 서서, 나는 이 많은 ‘내 것’에 한참을 휘둥그레져 있었다. 내가 ‘필요’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단지 내 마음속에만 있었다. 내게 필요한 것들은 이미 내게 충분했다.
지난 가을,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가슴 안쪽에서 “이 모든 것이 완전하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리에 일어나 앉으니 문득 지나온 내 시간이 바늘 틈새 하나 없이 완벽하고 완전하다는 느낌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 몸을 휘감았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들도, 내가 저지른 실수도, 힘들었던 순간도 더 이상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있는 그대로 완벽하고 완전했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인정했다. 누군지 모를 거대한 힘 앞에 또다시 항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고마워하는 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전처럼 ‘왜’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왜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내가 이런 통증을 겪어야 하는지, 왜 세상이 이 모양인지를 따져 묻지 않게 되었다. 글쎄다, 그냥 그런 것은 이제 궁금하지 않아졌다. 때로는 여전히 삶의 부조리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이제 나의 관심사는 ‘왜’가 아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게 궁금할 뿐이다.
그래, 까미노에 기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바라던 기적이 내가 바라던 방식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알고 있다. 내 속에 있던 ‘진짜 내’가 바라던 기적이 ‘진짜 내’가 바라던 방식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그래, 나는 전보다 훨씬 가볍고 행복해졌다.
이건 비밀인데…, 사실 그 길에는 기적이 있다.
목격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매일의 기적이.
*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귀한 글을 주신 김순진 선생님께 감사 드립니다. 산티아고에서는 돌아왔지만, 우리들의 순례는 다시 시작이겠지요. -편집자
김순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며, 어린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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