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예전에 ‘넘버 쓰리’라는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거기서, 별로 성공하지 못한 검사로 분했던 최민식의 대사 중에 이런 대사가 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개소리 마라. 죄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는가. 죄가 뭔데? 죄는 사람이 짓는 것이고 당연히 나는 사람을 미워한다. 모두 쓸어버리고 싶다.”

뭐 대충 그런 대사였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대체적으로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선 싫으나 좋으나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고 예수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나는 성폭행을 저지른 놈, 집에서 제 마누라를 두들겨 패거나 제 애인을 두들겨 패는 놈, 학교에서 제 제자를 두들겨 패는 교사들을 심히 미워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그들로 하여금 폭력을 저지르게 한 그 무엇을 다 잘라버려야 한다고 믿는 축이다. (교사의 매는 사랑의 매라는 희떠운 얘기는 하지 말기 바란다. 그 분들의 목표가 제자의 ‘대학 입성’인 이상 이미 모든 제자를 ‘사랑하기’는 글렀으므로...)


치사한 폭력, 빌어먹을 풍습

내가 그런 폭력들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폭력들의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향해 저항할 힘이 없으며 이미 무장 해제 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해자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치사한 짓이며 폭력 이상의 폭력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폭력에 너무 관대하다.
빌어먹을 풍습이다.

바로 어제 저녁이었다. ‘PD수첩’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상습적으로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들을 다룬 내용을 방영하는 것을 봤다. 결론적으로 가정 폭력은 대물림되기 쉬우며 심지어 그것은 가해자를, 혹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폭력임을 일깨우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짐작된다. 출연한 사람 중,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한 어느 남자가 몹시 유들거리면서 다음과 같은 개소리를 발하고 있었다. “말을 안 들으면 패야죠. 남들 다 그러지 않나요? 나만 그런가?”

가부장적 사회 문화가 사람을 얼마나 잔혹하게, 혹은 구역질나게 만드는지를 매우 확연히 드러내 보여주는 얘기 아닌가. 말을 안 듣다니... 왜 말을 들어야 하는데... 어떤 진리를 어떤 방식으로 터득했기에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물론 그 ‘개소리’의 주인공 역시 어렸을 때 되도 않는 그 ‘말’을 안 들어서 심하게 누군가에게 얻어터졌을 것이며, 그 ‘누군가’는 개소리의 주인공에게 가해자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가정 폭력은 대물림 된다고들 분석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말이다, 분석만 하면 뭐 한다는 얘긴가? 현행법상 가정 폭력은 철저히 ‘가정사’ 이므로 공권력이 어쩔 수 없다지 않는가. 그게 이 나라의 현 주소다.


성 폭력 가해자를 위한 워크숍

지난 토요일 나는 ‘성 폭력 가해자를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연극 워크숍을 진행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부탁을 받자마자 나는 일갈했다. “그런 XX들을 위해서 무슨 놈의 워크숍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저 가위나 하나 주쇼. 내 그 놈들의 생식기를 모두 잘라서 양지 짝에 말려 버릴테니까.” 허나 적절한 사례금도 주겠다는 말에 혹한 나머지 나는 그 청을 수락하고 말았다. (으이그... 나는 언제쯤 제대로 한 번 가오를 세워볼 수 있단 말인가. 이 쪼잔한 속물근성이여.)

조금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녀석들은 노래방 기기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장기자랑 비슷한 시간이란다. 물론 전문적인 양반들이 프로그램을 입안하고 진행하는 것일 테니 내가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허지만... 나는 속으로 분노했다. 은근히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녀석들은 있는 폼 없는 폼 잡아 가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정말이지 가수 뺨치는 가창력을 뽐내고 있었다. 중학생 나이란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제 놈으로 인해 인생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거의 죽음만도 못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피해자에 대한 참회는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나 노래방을 들락거렸으면 음정이며 박자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고 심지어 어떤 여선생은 두 손을 모으고 그 노래를 감상하기까지 했다. 나는 도저히 곁에 있을 수 없어서 나왔고 거의 담배 한 갑은 피워댔을 것이다.

‘내가 저 쉐이들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고 저 쉐이들 앞에 소위 선생으로 선다는 말인가..’
‘과연 그것이 옳기는 한 건가?’


이렇게 만든 것은 어른들

나는 딸을 가진 부모였다. 그러니 우선 그 감정을 억제하기 너무 힘들었다. 이윽고 다음 날... 결국 내 시간이 되고 말았다. 최대한 미소를 지으면서 녀석들 앞에 섰다. 그런데 한 녀석이 자꾸 고개를 숙이고 몸을 외로 꼬는 것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 녀석만 그런 게 아니고 대부분의 녀석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보였다. 적반하장, 안하무인 식으로 노래를 불러대던 어제 밤의 녀석들이 아니었다.

“사실 너무 무서워요.”
“어제 밤부터 무서웠어요.”
“뭐하는 분인가 했는데 우리 가르치러 오신 분이라고 해서 저는 오줌 쌀 뻔 했어요.”

뭔가 머리를 스쳤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부인을 죽도록 때리고 “말을 안 들어서 때렸다.”고 실실 웃으며 얘기하는 인간 말종하고 이 녀석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이 녀석들은 많아야 열여섯 먹은 녀석들이었던 것이다. 이 녀석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어른들이다. 분명하다. 그리고 나 역시 어른이다. 나 역시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어른이다. 이미 나는 ‘적절한 사례금’에 눈이 어두워 이 곳에 오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바로 전 시간, ‘나의 10년, 20년, 30년 뒤의 모습’이라는 주제로 녀석들이 뭔가를 발표하던 것이 생각났다.

“저는 아버지가 짱께집을 운영하시는데 그것을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논 겁니다. 내가 컸을 때 짱께집이 망하면 어쩌냐구요? 에이 선생님도... 벌써 30년도 넘게 했는데 망할 리가 있나요?”
“저는 쟤네 짱께집에서 배달하는 것이 꿈인데 그거 말고 없냐고 선생님이 물으셔서 이제는... 꿈이 없습니다.”
“저는 짱께집 보다는 족발 집에서 배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결혼을 할 거고 자식을 넷을 낳을 것입니다... 돈이요? 알바해서 벌면 됩니다.”


‘꿈’이라는 사치

녀석들 대부분은 ‘꿈’이 없었다. 아니, 꿈이라는 것을 가진다는 것이 이미 사치인 녀석들이다. 편부 편모슬하라고 일반화시키지 말아야 하는 것이, 녀석들은 어려서부터 ‘관심’ 대신 ‘학대’를 받는데 익숙하고 ‘교육과 모범’ 대신 ‘강요와 위선’에 익숙한 녀석들이다. 가해자이면서도 분명한 피해자였던 것이다. 이 놈들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나는 무섭지 않다. 그러니 오줌을 싸지 말아라. 지린내 나니까...”
“와하하하하하...”
“하나 묻자. 너희들이 꿈이 없는 것은 알겠다. 그러면 존경하는 사람은 있냐?”
“네!”
“누구냐”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너희들한테 관심도 없다며. 밤낮 패기만 한다면서? 그런데 왜?”

한 녀석이 대답했다.

“그 전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되고 나서 저한테 잘 해 주십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교육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냐?”
“네!”

소위 역할 바꾸기를 통한 상황극을 진행 하면서 나는 점점 녀석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녀석들에게 가해자였으니까.

상기한 폭력들은 정말로 ‘천인공노할 만행’임이 분명하다.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해방 이후 지금까지 사람을 수없이 죽이고 괴롭힌 사람들이 정치를 하네 사업을 하네 하면서 떵떵거리는 이 사회를 이제껏 뭐 하나 변화된 것 없이 구질구질하게 연명시켜온 주제에 과연 나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녀석들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았으면 진정 고맙겠다.

 

/변영국 2008-10-30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