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편집자에게는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들께 성탄과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 변변찮은 잡문 나부랭이를 꼬박꼬박 읽어주셔서 고맙다고. 전화도 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더더욱 고맙다고. 올해의 한숨과 좌절을 넘어 복되고 희망찬 새해를 기원한다고. 아무쪼록 행복하시라고.

마침 기차길옆작은학교의 강화공동체에서 성탄카드가 왔다. 인천시 강화군 양도면 삼흥리 644-2. 삐뚤빼뚤하게 쓴 연필글씨다. 한 눈에 ‘거기’서 왔음을 알아본다.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에 보내오는 카드라 새삼스러울 건 없으나 받을 때마다 나만 보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 이거다. 이걸 보내드려야겠다. 봉투 속에는 어김없이 두 장의 카드가 들어있다. 한 장은 어린이가, 또 한 장은 선생님이 만든 거다.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주저리주저리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인사말을 늘어놓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감동적일 테니까.

▲ 규원이 성탄카드

 

 

 

 

 

 

 



호인수 신부님께
호인수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강화공부방에 다니는 양도 초등학교 4학년 심규원이라고 해요.
이제 공부방에서 내년 4월달 공연 연습을 시작했어요.(매년마다 기차길옆작은학교 인형극단 ‘칙칙폭폭’이 여는 정기공연을 말한다 -필자 주) 저는 작년까지 3년 동안 춤패만 하다 요번에는 처음으로 풍물패를 하게 되었어요. 저는 항상 풍물패를 하고 싶었는데 되니까 너무 기분이 좋아요. 풍물패 연습은 너무 힘들어요.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재미있어요. 저희는 풍물패를 할 때마다 항상 장구소리로 시끄러워요.
제가 다니는 양도 초등학교는 시골학교라서 전교생이 31명이에요. 그래서 전교생이 다 친해요. 그래서 저는 우리학교가 좋아요. 지난달에 공부방 개인 반장이 새끼를 낳았어요. 지금은 막 뛰어다녀요. 정말 귀여워요. 저희 집에도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으면 좋겠지만 2마리 모두 수컷이에요. 신부님. 공부방 아기 강아지 한 마리 분양 받으실래요? 암놈 5섯마리 숫놈 다섯 마리에요. 호인수 신부님. 건강하시고 즐거운 성탄 되세요.
안녕히 계세요. 규원 올림

▲ 선생님 카드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기뻐합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날씨가 꽤 춥습니다. 건강하신지요.
얼만 전 저희 공부방을 다녀간 적이 있는, 한 시골 분교 선생님이 보내주신 아이들의 영상을 보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아름다워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아름답고 순수한 것이 세상에 쉽게 깨져 버릴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모습은 약하고 여린 것 안에 있는데 사람들은 왜 크고 강한 것만을 쫓을까요.
여리고 약한 것과 작고 볼품없는 것에 대한 연민이 제 마음 속에 살아있기를 기도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마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누어 주시는 마음,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예수님의 길을 고민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평화가 신부님과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공부방 강아지 한 마리 분양해주겠다는 규원이를 포함, “여리고 약하며, 작고 볼품없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이 최흥찬, 김중미 부부로 하여금 20년이 넘게 도시의 변두리와 시골의 아이들에게 청춘을 바치도록 만든 것이다. 나는 이분들에게서 예수님의 한없는 측은지심을 본다. 이 측은지심이야말로 “크고 강한 것만을 쫓”는 교회와 사회를 구원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멘, 오소서, 주님 예수님!”(묵시 22,20) “불쌍히 여기소서.”(마르 10,47) “주님 예수의 은총이 모든 이와 함께하기를 빕니다.”(묵시 22,21) .

호인수 (신부, 인천교구 고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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