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 50일 맞아 부산 을숙도에서 기념 미사 봉헌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걷고 있는 순례가 50일째에 접어드는 지난 4월 1일 부산 을숙도 문화회관 앞에서 천주교의 날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는 “낙동강, 아, 생명의 강이여”라는 주제로 천주교 부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주관하여 미사를 봉헌하였다. 이 행사에 앞서 순례단은 낙동강 하구 삼락둔치 낙동대교에서 출발하여 을숙도에 도착하였다. 이 자리에는 전국에서 모여온 불교, 개신교 목사들, 그리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사회사목을 담당하는 천주교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대거 참여하였으며, 다른 교구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방문한 신자 등 150여명이 모였다.

미사 중에 김규봉 신부(의정부 교구, 가톨릭환경연대 사무국장)는 강론을 통하여, 50일동안 줄곧 순례에 참여하면서 느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신부는 요한 복음서 3장 8절의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강론하는 김규봉 신부


“과분한 기쁨으로 여기고 이 길을 즐겁게 걷고 있습니다. 바람과 더불어 구름과 어울려 깨달음의 여정이라 여기며 걷고 있습니다.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말, 진정 맞는 말이구나, 느꼈습니다. 이리 아름다운 땅과 산, 물이 우리에게 있었구나, 하고 가슴 절절이 느끼는 한 걸음 한 걸음이었습니다. 여주 남한강 은빛 모래를 바라보며... 굽이굽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면서 경이로움과 경외함을 느끼면서 이걸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

그러나 항상 마음이 기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강산을 마구 파헤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구미 대구 공단 지역을 지나면서 먹물같은 물이 흘러드는 것을 보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저려왔습니다. 강물은 생명의 터전일뿐 아니라 식수원이기도 한데, 저런 정화되지 않은 물이 낙동강 본류로 흘러듭니다... 이걸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부산시민들이 이 물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직 많은 지천들이 맑은 물을 본류로 흘려보내는 것을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여기에 콘크리트로 대운하를 만들다니, 그런 말이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처음 순례 여정을 떠나면서 이것이 옳은 길이라는 막연한 생각만으로 특별한 기대 없이 길을 나섰는데, 이제 생각하니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것이기에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고 믿게 됩니다. 그 믿음이 거세게, 분명하게 자라나는 걸 느낍니다. 20여 명에 불과한 순례단과 마음을 모아 주시는 여러분들의 걸음걸음이 모여서 만 명이 되고 큰 물결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고 더 힘차게 나아갈 확신을 가집니다.

강변을 천천히 걸어가면서 쉼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생명을 품어안는 것을 보면서, 하느님이 여기 이 강물로 흐르고 계시구나, 강물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이 자연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옳고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 길이라는 확신 속에서 걸어가고 증거할 뿐이지만, 결국 이 길 역시 그분이 우리를 따라걷게 하셨던 것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스승 예수께서 먼저 가르치고 가셨기에 우리는 맘을 모아 작은 발걸음을 내닫을 뿐입니다. ......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며, 그 걸음에 뜻을 같이 한 선하고 의로운 이들이 채워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기쁜 순례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더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면서 이 좋음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살아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이 행사에 참여한 도현우 신부(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장)는 “의정부교구에서는 대운하 문제에 관하여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김규봉 신부가 무사히 순례에 나설 수 있도록 협조하고 있으며, 교구장 주교님도 마음으로 이러한 활동에 지지를 보내고 계신다”고 말했다. 한편 임진택 선생(생명평화결사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최근 바티칸에서 발표한 칠죄종을 들먹이며, “가톨릭교회에서 아마존의 삼림 파괴 등 자연훼손을 우리시대의 죄악으로 규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운하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주문하였다.

미사봉헌이 끝나고 이어지는 문화행사 중간에 김규봉 신부를 따로 인터뷰하였는데, 50일 동안 순례를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을 묻자 “이렇게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과 도반으로 만날 수 있어서 편안하고 안심”이라고 하면서, “처음보다 더욱 분명하게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신부와 함께 순례단을 참여했던 김민해 목사(월간 풍경소리 대표, 더불어드림교회)는 순례의 과정에서 점점 할말이 없어진다고 술회하였다. 아마도 더 겸손해진 탓이고, 자신의 가슴 속에 오히려 맑은 강물이 흘러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특히 김목사는 “대운하 개발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먼저 순례에 참여하여 단 하루라도 강을 따라 걸어보아야 한다”면서 “말로만 대운하를 말한다는 것은 탁상공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일갈하였다.

한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걷는 이 순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 다시 목포에서 시작하여 영산강을 거쳐 북상할 예정이다. 100동안 걷기로 작정하고 떠난 여정이기에 그 뜻이 좀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 것이다. 천주교 인천교구에서는 이미 공식적으로 대운하 개발을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지난 4월 2일 인천가톨릭회관에서 대운하 문제를 다루는 시국미사를 봉헌하였다.

/한상봉 200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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