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에서 마주친 교회]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방학을 했다. 방학하기 전날 밤, 나는 아이들 선생님께 드릴 요량으로 아크릴실로 친환경수세미를 손뜨개하여 4장을 만들었다. 방학을 앞두고, 또 성탄과 연말을 앞두고 그저 소박한 정성으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방학하는 날, 가정에서는 주부인 그들에게도 작지만 유용하고 의미 있으리라는 기대를 담아, 두 장씩 리본으로 묶어 아이들 편으로 선생님께 전해드리라고 들려 보냈다.

3년 전 여름, ‘나’본당에서 초등부 주일학교 자모회를 중심으로 친환경수세미를 만든 적이 있었다. 주일학교자모회 대부분이 아직도 아이들 간식 챙기는 일에 치중하고 있지만,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이라면, 부모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엄마는 성당에서 우리들 간식 챙겨주는 사람만이 아니라 엄마는 뭔가 자랑스럽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모아졌다. 자모회는 여러 고민과 논의를 거쳐 친환경수세미를 만들어 본당신자들에게 홍보하고 판매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단순히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젊은 엄마들이 본당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한 걸음이기도 했다.

자모회원들 몇몇이 뜨기 시작한 수세미는 급기야 본당주임신부까지 뜨개질 삼매경에 빠지게 하였다. 여태껏 뜨개질을 해 본 적이 없었던 본당신부는 흠뻑 땀이 밴 손으로 털실과 코바늘을 어설프게 쥐고는 1시간이 넘도록 꼼짝없이 앉아 뜨개질을 배우고 기어이 수세미 한 장을 만들었다. 상상해 보시면 좋겠다. 하얀 수단을 입은 중년의 신부가 커다란 손으로 총천연색의 색실을 코바늘에 꿰는데, 땀에 젖은 실에서는 뽀드득 소리가 나고, 옆에서 구경하는 여성신자들은 신기하듯 고맙듯 안타깝듯 바라보고 있는 것을 말이다. 여담이지만, 그날 본당신부가 처음으로 뜨개질해서 만든 수세미는, 만들자마자 원래 수세미 가격의 열 배인 만원에 팔렸다.

친환경수세미는 이제 자모회만 아니라 연세가 지극한 여성신자들까지 안경을 끼고서 만들어 갖다 주시는 등 일정한 공급이 확보되었고, 또 마침 본당 빈첸시오에서 EM(Effective Micro-organisms :유용한 미생물균)활성액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던 중이어서, 본당신부는 주일미사 공지시간을 통해 EM과 친환경수세미를 홍보하였다. 본당신부의 한마디는 본당신자들을 움직이는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짐작컨대, 그 한 해, 본당 대부분 신자는 환경을 다시금 되돌아보는 계기라 되었으리라.

당시 수세미 판매수익금 중 백만 원은 탈북민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기부하여 자모회 활동이 뜻깊은 활동으로 이어진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느닷없이 3년 전 이야기를 꺼낸 것은 학교선생님께 드리려고 뜬 수세미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상과 괴리되지 않고 지역사회와 연결하여 더불어 사는 본당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나’본당은 비교적 오래된 성당으로 아파트와 연립, 단독주택이 혼재한 곳에 있다. 그리고 관할 구역에는 독거노인시설, 불우여성시설, 방과후어린이공부방 등이 여러 곳 있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나’본당의 사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작은 본당’의 필요성을 역설할 정도로 ‘큰 성당’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그는 본당의 사목회와 구역/반을 활용하여 지역 사회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본당을 중요하게 여겼다.

여러 본당에서 하고 있듯이 ‘나’본당도 빈첸시오나 사회사목복지분과 등을 통해 주기적으로 지역 안에 있는 시설과 어려운 이웃들을 물질과 봉사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몸이 불편하거나 연로하여 바깥 구경이 힘든 사람들을 위해 휠체어와 차량을 준비해 야외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신자들에게 가능한 한 가지씩 활동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고 독려했으며, 신자들은 본인들에게 맡겨진 일에 즐겁게 응답하였다.

‘나’본당이 한 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일은, 본당 안에 작은 도서관과 미디어실을 설치한 것이다. 이것은 본당사제가 본인이 가지고 있던 1700여 권의 책과 디비디(DVD)를 비롯한 영상물 800여 장을 기꺼이 기탁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도서관 봉사팀은 도서목록을 정리하고 대출시스템을 구축하고, 매일 두 명씩 당번을 정해 도서와 영상물 대출 및 반납을 도와 본당신자들과 지역주민들에게 열린 도서관으로 꾸준히 활용되는데 일조하고 있다.

성탄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날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선물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날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따르는 곳이니 마땅히 우리도 세상에 선물이 될 수 있다. ‘나’ 본당의 신자처럼 사제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는 것, 아마도 교회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그런 충돌을 통해 세상이 변하고 교회가 변하길, 그렇게 서로에게 진정한 선물이 되길 기대하는 2009년 성탄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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