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최진실법, 죽은 엄마를 두 번 죽이는

최진실이 자살하고 이영자와 정선희와 최화정 등등이 처절한 눈물을 흘리고 온 국민이 애도하는 분위기... 남다른 인생역정을 지내온 한 연예인의 죽음이 주는 충격이 크긴 크다. 나야 뭐 TV를 틀더라도 거기서 드라마를 한다거나, 소위 예능 프로라는 이름으로, 몇몇 서로 친한 연예인들이 모여 시답잖은 수다를 떠는 기미가 보이면 미련 없이 꺼 버리는 인간이므로 그 충격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인간이긴 하지만 눈만 뜨면 들리는 그 자살 얘기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한나라당에서 소위 ‘최진실법’이라는 것을 만들겠다고 되도 않는 대가리를 굴린다는 얘기를 접하고는 이거 참 낭패다 싶어 거기에 관한 글을 쓰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초딩이나 중딩, 잘하면 할 일 없는 고딩이나 대책 없는 룸펜들이 올리기 십상인 악플을 핑계로 온 국민의 귀와 눈을 처 막아버리겠다는, 빤히 속보이는 발상이 구역질나기도 했지만, 그렇잖아도 몹시 불행한 삶을 마감한 한 연예인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채 자라지도 않은 아이들을 남기고 슬픈 죽음을 죽은 엄마를 두 번 죽이는 짓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틈입자, 그 사내의 이야기

그런 마음을 먹으면서 나는 마누라와 딸네미를 대동하고 김포에 있는 ‘몹시 뜨거운 방’이 있는 찜질방에 몸을 좀 지지러 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이번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참 슬픈 가장(家長)을 목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최진실법’에 대한 얘기는 나 아니더라도 탁견을 설할 분들이 많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꽤 힘든 행사를 진행하고 몸이 천근이 된 나는 눈을 좀 붙이고 싶었고 마누라와 딸네미는 곁에서 재잘거리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혹 이해하실까 모르겠지만 그럴 때 가족의 재잘거림은 참으로 은은한 자장가 같아서 아주 포근한 잠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아빠 나 요즘 큰일났어.”
“음냐 음냐... 애인 생겼냐? 축하한다 음냐...”
“똥이 안 나온다구.”
“똥? 그게 뭐 어째서... 하암... 음냐... 아빠는 소주만 먹어도 다음날 잘 나오는데... 음냐... 비록 설사지만...”
“어쩌지? 변비가 너무 심해 엄마.”
“그럴 때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곁에 누워 있던 한 오십대 남자가 불쑥 끼어들었다. (그 찜질방은 그저 샤워실 하나와 널따란 방 몇 개가 전부이고 편의시설이 거의 전무한, 찜질 매니아들의 단골로 알려진 곳이라 대개 가족 단위, 혹은 일행이 함께 오는 곳인데 그 남자는 어쩐 일인지 일행과 섞이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너무 약을 맹신해. 그럴 때는 말이다. 생고구마를 깎아서 베어 먹고 물을 한 컵 죽 들이킨 다음, 장이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흔들면서 한 십분 운동을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허나 사람들은 무슨 일만 있으면 모두 병원을 찾곤 하지.”

이해할 수 없는 해프닝에 잠이 싹 달아난 나는 도대체 우리 가족의 나른한 행복을 방해하는 틈입자가 누구인가 하고 고개만 들어 내 발치께를 내려다 보았다. 어떤 배가 좀 나온 남자가 오른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고 반듯하게 누워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 대학교 3학년인 처녀에게 ‘장이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흔들라’는 당혹스런 명령을 내린 그 양반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


아침에는 사과가 좋아

“아침에는 사과가 좋아. 자연이 주는 음식을 먹으면 탈이 안 나지. 헌데 병신 같은 새끼들이 밤낮 담배를 피우고 술을 처먹고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죽을병이 걸렸네, 사지가 쑤시네, 발기가 안 되네 어쩌구 하는 거야.”

‘아니 저런 미친 인간을 봤나. 남의 집 딸네미 앞에서 발기라니. 그리고... 나도 담배 피우고 술 마시는데... 그럼 내가 병신 같은 새끼? 저 인간 완전히 죽으려고 호흡조절 하는구만..’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일전불사의 다짐과 함께 서서히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작스런 손길이 나를 확 눌렀다. 마누라였다. 부드러운 베게가 아닌 목침을 베고 있던 나는 뒤통수를 호되게 목침에 부딪치며 다시 누웠다. 무지하게 아팠다.

“지연아. 우리 약돌방에 가서 한 번 더 푹 찌고 나오자.”
“맞아 벌써 몸이 식은 것 같아.”
현명한 모녀가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나가자 그 인간, 이번에는 나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저 인간이랑 말을 섞다가는 뭔 사단이 나도 날 것이라는 짐작에 잠시 망설이던 나는 옅은 잠이 든 상황을 연출하기로 했다. 저 쪽 구석에 누워서 천정을 향해 한 팔을 얼굴에 얹은 남자와 이 쪽 구석에 모로 누워 옅은 잠이 든 상황을 연출하던 나의 그림은 다음과 같았다.


그 남자가 참 안됐다

“딸을 잘 키우셨습니다.”
-엥? 갑자기 웬 눈사람 사우나 하는 소리?
“아빠 앞에서 똥 얘기를 과감하게 하는 것을 보니 얼마나 아빠를 가깝게 생각하는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알 듯은 한데 왜 꼭...
“그저 딸은 그렇게 순수하게 키워야 합니다. 물론 아들은 아주 더럽게 키워야 하지요. 그래야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니까요.”
- 그럼 그렇지... 예끼 이 명박스런 인간 같으니라고...
“그런데 올해 몇이십니까?”
(이 대목에서는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음냐.. 허허.. 아직 오십 전입니다.”
“그럼 저보다 동생이시네요. 저는 쉰여섯입니다.”
“허허허... 음냐”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그 남자가 참 안됐다는 생각과 함께 이 시대의 가장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절감할 수 있었다.

“저는 사업을 합니다. 참 뭐 하시는 분인지 안 물어봤네요. 글을 쓰신다고요? 그거 참 존경받는 직업입니다. 허나 돈을 벌기는 어렵죠. 돈 잘 버는 작가가 되려면 바람도 좀 피워보고 사고도 좀 쳐 보고 해야 하니까요.”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내가 도대체 왜 그런 뚱딴지같은 생각을 하게 됐는지 그 연유를 물으려 하는 찰라였다.


아빠하고 싸우는 것 보다는 고생스럽더라도 나가 사는 게

“제게도 딸이 둘 있습니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둘 다 독립하겠다고 나가 삽니다. 오늘도 전화가 왔더군요.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어쩌겠습니까. 30만원 부쳐줬습니다. 좋은 옷은 아니더라도 세일 하는 데 가서 때깔 고운 놈으로 사 입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고생하지 말고 들어와 살라고 얘기했는데 이 놈들이 뭐라는지 아십니까? 아빠하고 싸우는 것 보다는 고생스럽더라도 나가 사는 게 좋답니다. 저요. 딸네미한테 손찌검 한 번 한 적 없습니다. 그저 저 잘 되라고 얘기한다는 것이, 제가 워낙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지 꼭 야단치는 게 되고 고함소리로 이어진 건데... 그 녀석들이 그러네요. 참... 외롭습니다. 제가 좀 주책을 부렸죠? 아무튼 얘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술 좀 마셨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남자는 퇴장했다.
속에서 무엇이 뭉텅 빠져나가 버린 느낌이었다.

아니 그 나쁜 딸들은... 독립하려면 아주 독립하던지... 옷값은 부쳐 달라면서 아빠는 꼴 보기 싫어? 뭐야 이누무 지지배배덜......

요즘 들어 집에서 아빠와 동선이 섞이는 것을 부쩍 더 부담스러워하는 내 딸 생각이 났다. 그 전에 그러지 않더니 제 방 문을 꼭 닫고 있고, 목소리 듣고 싶어 전화 하면 바빠서 조금 짜증이 난다는 식으로 받기 일쑤고 하는 것을 보면서, 이제 다 커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딸에게 못내 서운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 양반은 얼마나 슬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가시고기인가 뭔 고기인가 하는 생선 생각도 조금 났다. 명박스런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니 아마 그 슬픔과 외로움은 첩첩산중일 것이다.


이 시대 슬픈 가장들이여

유명하지 않아 TV에 나올 수 없는 가장들이여...
독하지 못해 최진실처럼 자살할 수도 없는 찌질한 가장들이여...
까라면 까고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이 시대 슬픈 가장들이여...
그저 소주 한 잔이나 걸쳐야, 그리고 완전한 보안이 허락되어야 조금, 아주 조금 슬픔과 분노의 자락을 내보이다가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끝내 침묵하고 마는 새가슴 가장들이여...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세상의 주인은 당신들입니다.

/변영국 2008-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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