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육아일기]

오빠를 그대로 따라 하면서 크는 둘째가 준 고민

우리집의 두 보물인 승준이와 우인이는 지금껏 별탈없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제 다섯살, 세살인 녀석들은 두살 터울이라 그런지 둘이서 잘 놉니다. 물론 싸울 때도 있지만 대게 잘 어울려 노는 편이지요. 우리집 아이들은 크게 별난(?) 편은 아니라서 고만고만한 장난질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녀석들이 노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 첫째인 승준이가 놀이를 거의 주도하고, 딸아이인 둘째가 오빠를 따라서 함께 놀이에 동참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며 놀거나,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늘 오빠가 하는 것을 둘째가 그대로 따라 하면서 놀지요.

그런 녀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잘 어울려 놀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둘이서 뭐라고 조잘조잘 대면서 노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만약 저 녀석들이 혼자였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둘을 그것도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게 낳기를 참 잘했다 싶은 생각도 왕왕 드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제 오빠를 따라 노는 딸아이를 보고 있으니 어느날부터 약간 고민이 생기더군요. 크게 별난 편은 아니라도 첫째는 남자애라서 여자애인 둘째와 노는 폼이 많이 다릅니다. 남자애라서 그런지 노는 방식과 좋아하는 것들이 다르고 여자애에 비해서는 그래도 억센 편입니다. 그러니까 다소 거친(?) 오빠를 따라 우인이가 그대로 따라 크는 것이지요.

거친(?) 오빠 따라 선머슴애 될까 걱정되는 딸아이

예를 들어 첫째의 마음이 요즘 꽂혀 있는 것은 공룡입니다. 거의 매일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공룡 그림 그리고, 그렇게 그린 그림을 오려서 모으는 놀이에 열중해 있습니다. 오빠가 그렇게 놀다 보니 둘째도 그대로 따라서 하면서 요즘은 공룡과 함께 큰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또한 칼이나 총, 활 이런 것을 가지고 노는 오빠를 따라 우인이도 그대로 따라 놉니다.

오늘도 첫째는 그림책에서 본 산적인지 병사인지를 따라한다고 머리에 두건(실은 수영모)를 쓰고 포효(?)하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는 어김없이 여동생인 우인이도 똑 같은 포즈를 취하면서 함께 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또 그렇게 웃길 수가 없는데, 그런 웃기는 모습 너머에 약간 고민이 끼어들더라구요.

5살, 3살 사실 이 때부터 성구분을 해서 놀아야 한다고 규정지을 수도 없겠고 그렇게 하는 것이 웃기게 들릴 듯도 하지만, 그래도 사회 통념상 여자애가 커가는 방식이란 것이 있어서요. 그 틀에서 아이를 보는 것이라 녀석들이 같이 노는 모습을 보면 둘째가 완전히 남자애화 되어가는 인상을 받기도 하는 데에서 부모로서 고민이 생긴 것이었지요. 

남매. 그것도 큰놈이 남자애인 경우는 이런 식의 고민이 생기지 않나요?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고민이 있을 법 하지만 전자의 경우가 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이것이 무슨 큰 근심거리는 아니겠지만 육아를 고민하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게 고민의 일단이었습니다.


왈가닥이면 어떠냐,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그러나 사실 크게 걱정은 되지는 않는데, 그것은 아마도 이맘때 아이들은 성을 구분하기 보다는 녀석들을 중성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모든 것들이 열려 있는 때라서 그 경험들을 하나씩 해나가면, 그것들이 녀석들에게 맞아들어가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느낄 것이고, 그래서 조금씩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별로 호불호가 나누어질 듯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싶어요. 아이들이 바보가 아닌 바에야 그리고 아이들은 또래집단에 곧 어울려 살아갈 것이기 때문에 곧 성별에 맞는 사회성을 익혀갈 것입니다. 그리고 아닌 게 아니라 만약에 그렇다고 쳐도, 좀 남자애 같이 크면 또 어떠냐, 중요한 것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배우는 공동체성이고 사회성이니, 오히려 왈가닥 둘째가 그런 면에서 더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암튼 이것은 며칠 전 두건을 쓰고 노는 두 녀석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준 상념의 일단이고요, 지금 이 시점의 부모로서 바라는 바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두 녀석이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고, 잘 어울려 노는 것이지요. 그러니 둘째가 씩씩하게 잘 자라 준 것만으로 고맙고, 앞으로도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할 밖에요.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요?

정수근/ 대구의 엄마산인 ‘앞산’을 지키는 싸움인 앞산터널반대운동을 하면서 환경과 생태 문제는 곧 지역의 문제, 정치의 문제란 것을 확실히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그런 인식하에 지역의 환경과 생태 그리고 농업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 현재 지역 청년들의 작은 공부모임 ‘땅과자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앞산꼭지’(‘앞산을 꼭 지키려는 사람들의 모임’의 약칭) 회원이자, ‘블로그 앞산꼭지’( http://apsan.tistory.com )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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