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오늘 아침 신문 간지에서, 캐나다 로키 산맥이 자동차를 빌려 타고 여행하기에 가장 최적의 장소라는 기사를 봤다. 소위 ‘드라이브’라는 것을 하면서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바로 그 곳이라는 여행 소개 기사였는데 신문의 반 면 이상을 차지한 사진에는 과연 장엄하기까지 한 그 곳의 비경 사이로 부드럽게 언덕을 이룬 널따란 아스팔트길이 보이고 그 위로 고급스러운 승용차 한 대가 주행하고 있는 모습이 실려 있었다. 과연 명불허전, 캐나다의 로키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그 사진은 멋있다. 로키의 풍광이 멋있고 부드러운 도로가 또한 멋있으며 그 위를 달리고 있으니 승용차 까지도 멋있을 지경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그 차를 몰고 있는 사람의 눈에도, 부감으로 찍어 시원하게 드러나는 그 풍경이며 길이며 자동차가 보일 것인가? 아마 곁을 스쳐 달아나는 나무들이 보일 것이며 (만약 나무들이 보인다면 그 운전자는 전방주시 소홀이라는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일 테지만) 계속해서 다가오는 아스팔트길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뭐 더 보일 것이 있을까? 아 물론 운전에 익숙하거나 자동차 여행을 즐기는 매니아라면 뭔가 다른 것을 보고 즐길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차를 몰고 그런 여유로운 감상을 할 수 없거니와 소위 ‘드라이브 여행’이라는 테마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다.

불행한 나는 남들보다 먼저 가려고(?) 그저 눈이 빠지도록 앞만 보면서 엑셀을 밟는데 익숙하다. 제 차를 추월했다고 인상을 쓰고 때때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인간들이 많은 것을 보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듯한데, 바로 그런 점이 오늘 나를 더욱 더 우울하게 했다.


이유 있는 질주

아프리카에 사는 스프링팍이라는 양떼가 생각난다. 그저 점점이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그 무리들이 모여서 큰 무리가 되면 서서히 이동을 하면서 풀을 뜯는 것이 버릇이라고 한다. 양이 다른 양을 위해 풀을 양보할 이성이 있을 리 만무한 터라 대열의 앞에 선 양들은 먹을 풀이 풍족하지만 후미의 양들은 거친 흙 밖에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되고 결국 생존하기 위해 몸과 머리를 들이밀며 앞으로, 앞으로 가게 된다. 그럼 앞에 있는 양 역시 가만히 있을 리 없어 결국 무리들은 서서히 뛰게 되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이다. 결국 양떼는 아무 이유 없는 질주를 하게 되고 해안가 절벽이라도 만나면 모두 떨어져 죽는다고 한다.

아마도 인간이 바르게살기를 바라는 하느님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물론 해마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야 하는 스프링팍에게는 엄청 미안한 얘기지만) 얼마나 정확한 반면교사인가.....

사람들 모두, 아니면 거의 대다수가 자동차 앞 유리에 보이는 세상만을 바라본다. (물론 로키 산맥에서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몇몇은 예외로 인정해 주고 싶다)
사람들 모두, 아니면 거의 대다수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
사람들 모두, 아니면 거의 대다수가 남들의 뒤로 처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울화병이 치민다. 그래서... 사람들 모두, 아니면 대다수가 피곤하다.

가끔 치명적인 말썽을 부리는 내 차가 며칠 전, 엔진 오일이 샌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 정비소에 차를 맡기면서 참 난감했다. 오늘은 서울에 가서 할 일이 많고 여기저기 돌아다녀야 하는데 어쩌지 하는 고민을 하다가 까짓 거 그냥 걷기로 했다. 명동 성당을 나와 인공으로 만들어진, 뭔가 어색한 청계천 변을 걸었다. 이윽고 세운상가를 지나 조명 가게가 즐비한 골목길로 들어가 볼 일을 보았다.


피곤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걷기

그리고 나는 조금 행복했다. 서울이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고들 하지만,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이제는 지리도 헷갈릴 만큼 변한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 각종 공구와 화공약품, 그리고 소화기나 고무 제품들이 즐비한 을지로 통은 별로 변하지 않았고 내 고등학교 때 느끼던 가을 정취가 남아 있었다. 자전거로 냉면을 배달하지는 않았지만 오토바이가 사람 사이로 자장면을 나르고 있었고 예전과 다름없이 골목에서는 생선구이 냄새가 났으며 가로수는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보낸 탑골공원 (나 어렸을 때는 일본 사람들이 지어 붙인 파고다 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옆의 해장국 집과 그 앞에서 장기를 두는 노인네들, 심지어 그 노인들이 입은 바둑판무늬의, 벽돌색 모직 점퍼도 그대로였다.

외국인의 눈요기로 전락해 버린 인사동이지만 골목을 찾아들면 대학교 때 데모하면서 도망 다니던 80년대 초반의 찻집이 두엇 남아 있었고, 현대 사옥 뒤의 가회동과 정독 도서관도 어느 정도는 그대로였다. (물론 지금의 정신 나간 정권이 그 정취를 용서해 줄지는 의문이지만) 진정 고마웠다. 차를 타고 똑같은 곳을 지나면서 아스팔트와 앞 차의 후미 등만을 뚫어지게 바라봤던 내 앞에 펼쳐진 별세계였다.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곳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정말 고마웠다. 나는 오늘 다른 사람과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봤고 그래서 지금 이 밤늦은 시간에 피곤하지 않다.

이제 나는, 언제 또 잊을지 모르지만 ‘피곤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 하나를 깨달았다. 걷는 것이다. 내가 지나온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라면 그 곳이 변했건 그대로건 상관없이 그 곳을 걷는 것이다. 이제까지 너무 그러지 않고 살았다.

아... 때때로 퍼져 주는 내 차에도 참으로 주님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변영국 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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