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L기는 폭파된 게 아니라 실종된 것.. 김현희 진술 외에 아무런 물증도 없어"
-신성국 신부, "교회는 생명운동 차원에서 KAL기 사건 진상규명 운동에 힘 보태야.."

1987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KAL858기 폭파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끝까지 안전기획부(이하 안기부) 소관이었다. 이 사건으로 승객 95명과 승무원 20명이 실종되었는데, 정부에서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공작에 의해 KAL기가 폭파되었으며, 아무런 물증도 없이 다만 폭파범으로 지목된 김현희의 증언만으로 사건을 종결지었다. 안기부는 아웅산 폭파 사건 때와 달리 김현희를 바레인에서 체포해 즉각 한국으로 데려왔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 하루 전이었다. 

그러나 KAL858기 유족들은 이를 믿을 수 없었다. 물증도 없고, 기체는 물론이고 시신이나 유품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KAL858기 가족회의 차옥정 회장(74세)은 "비행기가 폭파되었다는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들이 '실종'되었다고 본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차옥정 씨는 조종사 출신이었던 남편을 이 사건으로 잃었다. 

▲ 희생당한 딸을 생각하며 눈물을 짓는 이을화 씨

승무원이었던 딸을 잃은 이을화 씨(73세)는 지금도 딸이 귀환하는 꿈을 꾼다고 한다. "엄마, 나만 살아돌아왔어. 아침에 다시 출근해야 돼"라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딸의 모습을 꿈에서 본 날은 회한으로 눈물에 젖곤 했다.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확증할만한 어떤 물증도 없었기 때문이다. 안기부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바다에 식인상어가 많아서 시신을 찾을 수 없다고, 물살이 급해서 기체도 찾을 수 없다고 답변했다.

▲ 차옥정 회장은 KAL기 진상규명을 위해 끝까지 힘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정부는 단 열흘 동안 사고지역을 조사하고 돌아왔을 뿐이다. 사고지점도 정확히 대지 못하고 산악지역에서 일주일, 바다에서 사흘 동안 조사하다 그냥 돌아왔다. 그리고 북한공작원임이 맞는지가 현저히 의심되는 김현희의 일방적인 진술에만 의지해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북한에서는 이를 반박하는 성명서를 명확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만한 내용으로 여섯 차례나 발표했지만, 남한에서는 이를 일절 보도하지 않았다. 

김현희 역시 의심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진술한 주소지는 이미 북한에서 소멸된 주소였으며, 적십자회담에서 화동(花童)으로 사진에 찍혔다고 발표한 인물은 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기부 역시 나중에 시인했다. 즉, 김현희는 조작된 인물이라는 것이다. 신성국 신부(청주교구)는 "만일 김현희가 북한테러범이 사실이라면 안기부에서 신원을 조작할 이유가 없다"며 안기부 발표를 반박했다. 또한 이러한 테러범의 경우에 관례상 당연히 사형언도를 내려야함에도 남한정부에서 칙사 대접을 받는 것 역시 납득할 수 없는 조치라고 말했다. 

보상금 문제에서도 정부에서는 성탄절 이전에 사건을 종결지으라는 지시에 따라 안기부 직원들을 동원해서 반협박조로 받기를 강요하였는데, 유족들과 합의를 통한 것이 아니기에 유족들은 보상금이 아니라 '위로금'으로 이해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유가족들은 그들이 폭파사건으로 죽었다는 단서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이 사건을 '실종사건'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성탄절 이후 그 사건은 언론보도에서 사라진다.

이 과정에서 유족들이 실종신고를 하고 완강하게 사망신고를 하지 않자, 교통부에서 나서서 사망신고를 대신해 버렸다. 그러나 직계가족이 실종신고를 한 이후에는 1년 후에야 사망신고를 할 수 있다는 행정법에 따라서 유족들이 행정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한편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KAL858기 가족회에서 2007년에 진실화해위원회에 사건조사를 의뢰하였으나 진전이 없자, 2009년 6월 17일에 조사의뢰를 취하했다. 

▲ KAL858기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과 미국에서 분주하게 일해왔던 신성국 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이 사건에 대해 2001년부터 관여하기 시작해서, 2003년에는 김병상 신부(인천교구)를 대표로 신성국 신부가 'KAL858기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진상규명 활동이 활성화된 것은 이전에 조갑제 등의 조정을 받던 유족회 임원들이 교체되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11월 3일에 115명의 천주교 사제들이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급물살을 탔으며, 언론에 이 문제가 재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그동안 일본 저널리스트가 면밀히 조사해서 쓴 [파괴공작] 등을 통해 그 조작 여부가 면밀히 밝혀졌지만, 안기부는 사활을 걸고 이제껏 사건을 은폐해 오고 있다. 따라서 KAL858기 가족회는 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계속 노력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가족회 회장인 차옥정 씨는 "우리가 태어난 대한민국이 우리들에게 이럴 수는 없다"면서 "정부는 희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며 분개했다. 

이에 신성국 신부는 다음과 같은 기고문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보내왔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
      
  

KAL858기 사건에 대한 신성국 신부 기고문
KAL기 사건, 안기부 공작의 결과다

한국 가톨릭교회가 생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생명운동은 인간 생명 전체에 대한 포괄적 운동으로 펼쳐져야 한다. 생명운동이 지나치게 낙태반대운동만 강조하여 국민적 관심과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살아 있는 인간생명을 지키면서 태아생명도 보호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불의한 공권력으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생명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교회가 태아생명만을 지키려고 한다면 얼마나 큰 모순인가?

내가 KAL858기 사건 진상규명에 뛰어든 이유는 생명운동 차원과 맥이 닿아 있다. 전두환과 노태우 군부정권 아래서 수많은 국민들이 억울하게 살해되었다. 안기부와 보안사, 경찰에 의한 의문의 죽음, 고문에 의한 죽음, 조작간첩으로 누명을 쓰고 죽은 사람들이 참 많았다. 전두환 정권 말기에 발생한 KAL858기 사건도 안기부가 관여되었다.

이 사건은 자국의 국민 115명이 실종 희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항공기 사고 조사와 수사를 모두 엉터리로 해놓고 우리에게 믿으라고 강요한다. 또한 이 엄청난 사건을 악용하여 대통령 선거에 활용했다니(안기부의 무지개 공작)얼마나 추악하고 잔인한 자들인가? 우리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들의 천인공노할 범죄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잘못된 역사는 청산해야 되풀이 안 해

잘못된 역사를 올바로 청산하고 정리하지 않으면 불의한 권력은 똑같은 범죄를 계속 자행한다. 현재 이명박 정권은 과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완전종합판이다. 내가 KAL858기 사건 진실찾기에 전념하는 이유는 국민 생명을 담보로 공작정치를 못하게 막아내는 생명과 인권운동, 공동체 정의 세우기 운동이다. 이러한 사건을 적당하게 넘어가면 결국 국민 누군가도 피해를 당할 것이며, 나와 내 가족들 또한 무고한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든 명확하게 수많은 의혹을 해소하고 넘어가야 한다.

김현희 진술만으로 의혹이 해소될 수 없다

2003년 10월 초에 국정원 직원 2명이 내가 근무하던 청소년수련관을 찾아왔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모두 답변할 자신이 있다고 하면서 자료를 가져왔다. 그들은 나의 질문에 단 한 가지 대답도 못했다.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나의 의문을 풀어주기 보다는 이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협박이 목적이었다.

또한 2004년도에 우리 KAL858기 가족회가 국정원에 33가지 질의서를 보내서 답변서가 왔는데, 국정원 답변서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우리 질문에 단 한 가지 답변도 못했다. 답변 내용 전체가 '김현희 진술에 의거함'으로 적시했다. 이렇게 엄청난 항공기 테러사건이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물증 하나 제시하지 못하고 김현희의 진술 하나만으로 수사를 마쳤다.

지금까지 안기부가 김현희는 북한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면서 제시한 물증들은 모두 가짜로 확인되었다. 2005년도에 안기부 수사 발표문을 토대로 검증작업을 한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고, 2008년부터 올해까지 검찰의 수사기록도 검증 결과 모두 거짓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에 관련된 수사기관의 기록들은 오히려 안기부가 조작했다는 증거물로 채택될 것이다. 자기들이 만든 거짓의 올가미에 걸려든 것이다. 국정원이 현명하다면 하루빨리 양심선언을 하여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진실이 밝혀지면 국민들과 국제 사회가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국정원은 범죄사실 인정하고 신뢰 회복해야

이 사건을 은폐하고 진실규명을 거부하는 국정원은 국가기관이 아니다. 국가기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공동선을 지향함이다. 사건 당시부터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KAL기 유가족의 인권을 짓밟고,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김현희를 데리고 장난질을 치는 일에 혈안이 된 국정원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

국정원은 아무리 자기들 죄악을 감추고 숨긴다 해도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이 사건은 해외에서 발생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국제적 관심도 높다.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 국정원은 국내 뿐 아니라 국제적 비난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국정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이유는 바로 후자이다. 지금이라도 국정원이 안기부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진실을 고백한다면 국민들은 국정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것이고, 국민적 신뢰는 높아질 것이다. 국정원의 이익을 위해 중대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지금 국정원은 KAL기 사건을 영원히 은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하다. 왜냐하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은폐에 성공했는데, 지금은 더 수월하다는 자만심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오만함과 판단착오는 결국 자멸의 길로 가는 파국인줄 알아야 한다. 참 추악하고 어리석은 집단이다. 진실은 영원히 덮을 수 없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KAL기 진상규명은 하느님의 뜻

진상규명운동은 거짓의 악령과 진리의 성령과의 대결이다. 어둠(악)은 빛(선)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을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성령의 인도와 은총으로 열매 맺을 것이다. 나의 가장 큰 무기는 성직자로서 하느님 앞에서 호소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생명을 창조하고 돌보시는 하느님은 당신 자녀들의 억울한 희생을 수수방관하지 않으신다. 이 사건의 진상규명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뜻이고, 우리는 그분께 사명을 받은 것이다. 하느님의 사명에 응답하는 한국 천주교 사제 115명이 진상규명 선언을 선포한 것이다.

많은 이들은 이 사건이 미제의 사건으로 남을 것이고, 의혹만 남긴 채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느님은 진실을 찾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는 믿음이 우리의 신앙고백 아닌가! 성서에서 다윗왕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제로 아내로 취하고,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에 보내 살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단 예언자를 불러 다윗왕의 범죄를 폭로했다. KAL기 사건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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