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말하자면 나는 수양이 덜 된 인간이다. 그렇다고 덜 떨어졌거나, 인간 말종이거나,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인간은 아닌데 아무튼 수양이 덜 된 인간임이 분명하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인간이다.


강론 시간에 정치 얘기

꽤 오래 된, 그러니까 노무현씨가 대통령이 되던 그 해, 다소 진보적 성향을 가지신 걸로 짐작되는 어떤 신부님이 강론 중에 정치 얘기를 좀 하셨던 기억이 있다. (우리 성당 얘기는 아니다. 나는 여기저기서 미사 드리기를 참 좋아하는 인간인지라 우리 성당에 개근하는 모범생이 아니다.) 허나 말이 정치 얘기지 내가 보기에는 거의 상식에 준하는 얘기였다. 말하자면 이제 정말로 백성들을 생각하는 대통령을 뽑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자고 얘기하셨던 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강론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나보다 한 댓살 쯤 많아 보이는 어떤 허우대 좋은 양반이 벌떡 일어나더니 “신부님. 강론 시간에 우리가 왜 정치 얘길 들어야 합니까?” 라고 고함을 쳤다. 여기저기서 간헐적으로 박수 소리가 나왔고 그 미스터 허우대는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목을 두어 번 좌우로 제쳐보더니 자리에 앉았다. 신부님은 그러거나 말거나 강론을 마치셨고 다른 교우들도 그럭저럭 미사 끝까지 동요 없이 앉아 있었다.

허나 나는 심하게 동요했다. 나는 일면식도 없었던 그 신부님의 ‘정치 얘기’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었고 대개의 수구 꼴통 신자 선배들의, ‘사제에게는 언제나 순명해야 한다’ 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터라서 그 현상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당신도 저 신부하고 한 패야?

‘저 허우대는 왜 사제에게 순명하지 않는가?’
이것만이 나의 화두요 의문이었다. 미사가 끝난 후 나는 그 허우대에게 다가갔다. (물론 나도 허우대에서는 밀리지 않는다) 그 미스터 허우대는 커피 자판기 앞에서 다른 신자들에게 ‘회장님’이라는 직함으로 불리며 300원짜리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어이 형씨. 당신은 왜 사제에게 순명하지 않는 거요.”
(전술했듯이 나는 수양이 지나치게 덜 된 인간이다)
“누구신데 그렇게 함부로......”
“그러니까 당신은 왜 함부로, 사제에게 순명하지 않냐 그 말이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웃음으로 허우대 곁에서 온 얼굴을 구겨대던 한 초로의 노인이 말을 받았다.
“젊은 사람이 말이 심하구만. 우리본당 사람도 아닌 듯 한데..”

나는 여전히 허우대에게 물었다.
“사제에게 순명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뭐요.”
“당신도 저 신부하고 한 패야?”

놀랍게도 허우대는 주먹을 쥐고 있었고 그 모습은 더더욱 나를 야만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했다. 나 역시 인상을 긁으며 말했다.
“형씨 나는 꼭 대답을 들어야겠소. 내가 다른 사람들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간이 무지하게 많다는 점이요. 그러니 부담 갖지 말고 대답해 주시오. 당신이 사제에게 순명하지 않는 이유가 대체 뭐요?”
“회장님 가시죠. 그저 성당에 빨갱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는 거니까...”

돌아서서 가려고 하는 그들에게 나는 얘기했다.
“가려면 가슈. 허나 명심하쇼. 난 시간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애석하게도 뱉은 말과는 달리 시간이 없는 관계로 그 성당에 다시 가 보지 못했다. 허나 안 봐도 안다. 그 허우대를 비롯한 일단의 무리들이 지금의 명박 산성 안에서 얼마나 편안한 호흡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더 애석한 것은, 이제 나도 기력이 그전 만 못하고 그저 둥글게 사는 게 좋다는, 개도 안 물어갈 처세술에 깊이 물들어 지난날의 그런 담력을 보이기 저어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이제 그런 담력과 용력으로 서슬 퍼런 욕설을 내갈기기에는 대상이 너무 많아졌다)

각설하고...
참으로 슬프다.
무엇이 슬프냐하면 다음과 같은 것이 슬프다.


개종이라도 해야 할 판

올림픽 특수와, 정권 치장용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는 언론들의 생 조작에 힘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30%를 넘을까 말까 한다는 현 대통령이다. 그렇기에 하다못해 택시를 타도 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2MB 욕을 해 대고, 어떤 술자리에서도 2MB 소리와 웃음소리는 항상 세트 메뉴로 들리건만 유독 이놈의 성당에서는 그 2MB를 비판할라치면 눈에 쌍무지개를 그리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니...

혹시 그 30%를 간당거린다는 (실제로는 아마 20%도 안 될 것이 분명하지만) 지지율, 그 지지율의 카테고리에 들어 있는 지지자 중 대부분을 가톨릭 신자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끔찍하고도 쪽팔린 생각이 든다. (아니 그 인간들은 엄청나게 인하될 것이 분명한 소위 종부세를 낼 형편도 못되는 주제에 왜들 그러지?)
만약 그렇다면 이거 개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신앙적 고민이니 종교적 결단이니 하는 사치스러운 이유가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덜 쪽팔리고 손가락질 안 받으려면 정말이지 개종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야단났다. 사제가 보수화 되고 사제가 정권유착을 바라고 어쩌고는 이거 문제도 아니다. 사제가 작살난다고 나까지 작살 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내가, 물론 죄를 많이 지었지만, 지옥행 특급을 탈만큼 그렇게 많이 짓지는 않은 듯한데 이제 와서 예수님한테 시비 걸고 맞장 뜨는 짓을 해서 벌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성당 안에는 예수님한테 시비 걸고 맞장 뜨는 사제와 신도들이 무지하게 많으니 잘못하면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생겼다.


인간에 대한 예의 없는 진리

움베르토 에코가 ‘장미의 이름’에서 이런 소리를 했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 사자(使者)가 그랬듯이,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먼 이방 종교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하느님’은 왜곡된 하느님이고 ‘진리’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편향적 진리겠지만 참으로 이 시대를 명쾌하게 얘기한 석학다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육시를 할 시대여....
그리 힘겹게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고 대체 무슨 진리에 목을 매고 달려든단 말인가...

 

/변영국 2008-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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