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이 세상만사 인생사]

"시장의 실패를 제대로 묻지 않고, AIG에 대한 FRB의 지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설득력 있는 논리도 없이 이뤄진다면, 미국의 정치경제는 정실 자본주의와 부자와 특수 관계자들에 대한 사회주의 체제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네이버 뉴스를 뒤적거리던 중 눈에 확 띄는, 이런 내용이 읽혔다.


그거 참, 촌철살인의 진단

하... 그거 참, 촌철살인의 진단이다. 게다가 꽤 권위 있는 석학의 진단이란다. 내 생각을 덧칠하자면, 시장 경제의 절대성을 내세우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가 겉으로는 마치, 매우 자유적이고 효율적인 경제 운용법칙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보이지도 않지만) 궁극에 가서는 오로지 그 운용체계 자체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필연적이라는 것, 그리고 그러할 때의 ‘보호’란 다름 아닌 ‘부자와 특수 관계자’들을 위한 보호가 될 것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매번 잊고 사는 어리숙한 백성들을 위한 참으로 귀한 정문일침이요, 고마운 지적이다.

그렇다. 지금에 이르러서 갑자기 그런 것이 아니라 미국은 원래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나라였고 그 나라를 필사적으로 닮으려는 역대 우리 정권은 이 나라를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부자를 위한 사회주의...’ 부를 근검절약의 산물로 온전히 받아들이는 청교도 정신이 바로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미국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있다

한나라당에서 그 맹위를 떨치던 전여옥이라는 양반의 <일본은 없다>라는 명저(?)가 생각난다. 근거 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다소 거친 주장과 글발들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기억이 나는데 아무튼 다소 면구스럽기는 해도 그 양반 명저의 제목을 빌려 한 마디 하자면 이렇다. ‘미국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만 있다.’

리먼 브라더스라는 미국 내 굴지의 투자 회사가 망한 것은 바로 모기지론을 필두로 하는 저인망식 ‘부동산 투자’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당연한 결과 아닌가. 집을 지어 놓고 서로 그 값을 올려가며 비상식적 잉여가치를 추구하다 보면 언젠가는 망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일 텐데, 도대체 그들은 왜 그랬을까....
아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러고 있나? 한 때 이명박 정부는 그 리먼 브라더스를 국내로 끌어들이려고 했단다. 그리고 지금 이명박 정부가 금과옥조로 생각하며 풀어 제끼는 것이 바로 부동산 시장이다. 도대체 그 인간들은 왜 그럴까? 국부론의 저자 아담스미스의 순진한 명제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끝없는 맹신인가? 부자가 더 부자가 되면 나라도 부자가 된다는 1970년대 박정희식 무대포 발상인가? 아니면 너무너무 슬프게도 ‘이제 정권을 잡았으니 한 건 챙기고 물러나면 그만’이라는 속물근성인가?


한 건 챙기고 물러나면 그만

허나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저지르는 죄악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도리가 없다. 게다가 그 죄악의 주체가,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있을 때, 그 불행은 걷잡을 수 없게 되고 궁극에 가서는 오로지 하느님께서 그 모든 죄악을 심판하시기만을 기다리는 하릴없는 신세가 되고 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유치원생들은 영어를 배우느라고 온 몸의 기운이 핍진되고 있을 테고, 대학에서는 ‘영어 특기 전형’의 수시 입학 원서를 챙긴 고3들이 혹은 재수생들이 토익 점수가 어떠네, 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영어를 하겠네, 졸업해서도 글로벌하게 영어권 나라와의 교류에 힘쓰겠네 하면서 영어에 대한 충성 서약을 하고 있을 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몇몇 우익들이 (그들을 뉴라이트라고 한다나 보다) 이북은 천인공노할 만행이나 저지르는 적국이요 타도대상이지만 미국이야 말로 혈맹 우방이요, 우리에게 산 같은 은혜를 베푼 나라라고 떠들어대고 있을 것이며 그 한 자락의 개신교 귀퉁이에서 이명박씨는 뭔지 모를 기도를 하고 있을 터이다. (보통 장로는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한다니... 이명박씨가 다니는 교회는 참 좋겠다)


그렇게 영어가 좋을까?

우리 천주교에는 보통 이탈리아 발음으로 되어진 소위 세례명이라는 게 있다. 내 세례명은 토마스 아퀴나스다. (그 양반 대단한 학자라는데 나는 공부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으니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가 없다) 그런데 내 색시 카타리나를 어떤 신부님이 ‘캐서린’이라고 부르시자 주변의 많은 이들이 ‘어머 너무 듣기 좋아요’ 어쩌구 하는 것을 보면서 목구멍에 건더기가 치미는 경험을 한 일이 있다.

주로 가난하지 않은,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많았던, 그렇기 때문에 지금 천주교의 주류가 된 인간들의 모임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수작들이다. 미카엘은 마이클, 안드레아는 앤드류, 심지어 나보고 ‘토미’라고 부르는 인간도 있었는데 한껏 꼬부려 붙이는 그 발언은 정말이지 점입가경이었다. (확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싶었는데 그냥 별 미친 놈 다 있다는 눈빛을 던져 주는 것으로 내 기분을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영어가 좋을까?
세상에는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 중국) 이 나라들 밖에 없다는 걸까?
에라 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속들이여...


지금 미국이 망해가고 있단 말이다

아 친구들아... 지금 미국이 망해가고 있단 말이다. 이러다 말겠지 하지 말아라. 올 한 해 태풍이 안 불었다고 지구 온난화가 멈추고 기상 이변이 사라진 걸로 착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돔은 미국 이상으로 흥청대던 곳이었고 폼페이의 문화는 참으로 기름진 것 아니더냐. 로마는 어떠냐... 과연 지금의 미국이 ‘모든 길이 그리로 통한다던’ 당시의 로마에 비견될 수 있더란 말이냐?

멀리 갈 것도 없다. 소련이 붕괴되는데는 단 몇 년이면 족했다. 소련은 미국보다 후진국이었다고? 거 문지방에 물건 찡기는 소리 하지 말아라. 달나라도 소련이 먼저 갔고, 비록 배급제였지만 자국의 경제구조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태반인 나라였다. 미국이 미친 듯이 두려워하던 나라였다 이 말이다. 미국 말이냐? 베트남한테 작살난 나라 아니냐. 참으로 별거 아닌 나라다 이 말이다. 물론 당시 베트남에는 호치민이라는 걸물이 있었지만 아무도 미국의 패배를 예견하지 않았더랬다.

이 족속들아... 제발 줄 좀 잘 서라. 멀쩡히 정의의 하느님을 믿는 니들이 왜 그렇게 다른 길로 가려고 하냐 이 말이다. 니들이 자꾸 그러니까 MB가, 마치 제가 잘난 줄 알고 미국 베끼기에 혈안이 돼 있는 거 아니냐. 이러다가 미국 꼴 난다. 정신 차려라.

/변영국 2008-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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