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그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무튼 나는 천주교가 낳은 작은 전태일, 조성만을 위한 공연을 만들었고 그 때 문정현 신부님이라는 분을 처음 직접 뵌 적이 있었다. (물론 이후로는 그 분을 자주 만나는 행운을 누렸거니와 신부님이라는 직함만 떼고 나면 그저 손자나 안고 너털웃음을 지으면 어울릴 듯한 그 푸근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공연의 제목이 <AD... 다시 시작>이었다.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억컨대 조성만의 죽음을 다시금 그려 보면서 그 맑디맑은 영혼들을 죽여가면서 부지하는 이 시대는 당연히 끝장이 나야 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새 역사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조성만이는 나를 길거리로 나가게 만든 장본인이여

공연이 끝난 자리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이런 말씀을 나눈 기억이 난다.
“조성만이는 나를 길거리로 나가게 만든 장본인이여. 내 그 눔 한테 다 배웠지. 미국이 어떤 놈이고 독재가 뭔지 그 눔한테 다 배웠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말씀을 내게 하셨다.

물론 조성만이 신부님을 앉혀 놓고 사회과학 세미나라도 한바탕 열었다는 말씀은 분명 아닐 터였다. 전주에서 사목을 하실 때 똘똘하고 겸손한 소년 조성만을 가까이서 귀여워해 주시다가, 갑자기 그 녀석이 군대 갔다 오더니 명동 성당 부속 건물 옥상에서 할복을 하고 뛰어 내렸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테고, 곧 이어 왜 조성만이 죽었는지를 아셨을 것이고, 조성만의 시신을 탈취하려는 경찰들의 만행을 몸소 체험하셨을 것이며, 조성만의 효성이 가득 담긴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서 끝내 조성만은 의를 버리지 않고 예수님의 지평에서 몸부림쳤다는 것을 확연히 아신 후부터 신부님은 사제로서 ‘이게 아니다’라는 결심을 하셨다는 말씀을 내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신부님의 그 말씀을 진정으로 이해했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신부님이 계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신자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조성만 공연

우리는 그 공연을 들고 순회공연도 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조성만의 고향 전주에서 공연을 하던 날, 나와 내 배우들은 모두 울어버렸다. 그냥 운 것이 아니고 대성통곡을 한 것이다.
아...
조성만 열사의 부모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남다르게 똑똑했던, 서울대학생 아들 조성만을 창졸지간에 불귀의 객으로 떠나보내고 그 긴 세월 하루같이 아들을 그리며 조각으로 찢어지던 그 가슴을 안고, 너무 많은 눈물을 흘려 힘 없어진 다리로 그 두 분이 오신 것이다. 그리고 내 배우들은 그 두 분을 객석에 모시고 공연을 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관객들이 연방 눈물을 찍어내던 공연이었다. 그러니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할까....

분장실이 술렁댔다.
“연출님. 조성만 부모님이 오셨다면서요?”
“그렇단다. 집중해라.”
“어떻게 집중을 해요. 그 분들 어디쯤에 앉아 계세요?”
“나도 모른다. 그러니 너희들도 알려고 하지 마라. 우리는 그저 공연을 잘 하면 그 뿐이다. 어떤 이유로도 배우가 흔들리면 곤란하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배우들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긴장을 했고 그 긴장은 공연을 탄탄한 것으로 만들고 있었다. 객석 여기저기서 눈물짓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부모님이 어디 앉아 계신지 알아보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객석 앞줄 한 구석에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년 남성 곁에서 온 몸을 숙이고 차마 무대를 바라보지 못하며 울음을 참는 한 아주머니가 계셨고 그 두 분이 부모님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머님의 울음은 짐승의 그것처럼 참혹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배우들 역시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이를 악물고 공연을 했다.

마침내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은 말없이 분장을 지우고 있었다. 분장실로 부모님이 들어오신 것은 그 때였다. 우리는 모두 벌떡 일어셨고 조성만의 어머님은 극 중 조성만 역을 맡았던 재우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다가 눈물을 흘리시며 재우를 끌어안았다. 그 때 까지는 괜찮았다. 참을 수 있었다. 다음 순간, 극 중에서 조성만을 사랑하는 여자, 마리아로 나왔던 지연이를 끌어안고는 이윽고 대성통곡을 하시는 것이었다. 지연이도 울었다.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울었다. 지연이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신 어머니는 더욱 더 우셨다.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차마 배우들 앞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일 수 없어서 눈물바다가 된 분장실을 나와 화장실에서 몹시 울었다.
‘몹쓸 사람... 손자나 안겨드리고 가지 뭘 그렇게......’


나는 전주에서 비빔밥을 잘 안 먹는다

의로운 길을 갔으며 많은 이들을 각성시킨 열사였지만 장가도 못가고 죽은 조성만을 아파하는 어머님의 절규를 나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아 이 사람아 그만 울어. 좋은 일 하는 배우들 시장하잖어.”
아버님의 말씀이 있고 나서야 모두 울음을 추스렸고 밖으로 나왔다. 거기에는 도시락이 늘어서 있었다.
“전주는 비빔밥이 유명해요. 개중 괜찮은 데서 사왔는디 맛이 어쩔까 모르겠네.”
라며 아버님께서 웃음을 지으며 동시에 눈물을 닦고 계셨다. 나는 그 후에도 전주에서 비빔밥을 잘 안 먹는다. 목이 메인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가장 슬픈 광경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희생을 바라는 세상...... 끝날 줄 알았던 그 세상이 다시 왔다. 역사적 반동이다.
슬프게도 우리 국민이 선택한 반동이다. 허나 그 희생...... 언제나 희생되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만 희생된다.

문정현 신부님처럼 신자에게도 기꺼이 배우시는 사제들이 드물다. 신자를 자기 앞에 놓는 사제들이 드물다. 그렇게 이 천주교가 세속을 닮아가며 구린내를 풍기는 것도 아마 사실인가보다. 하지만 그런 사제들마저도 없어진다면 우리는 누구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아들을 잃고 아파하는 조성만 부모님의 가슴을 어떻게 감싸드려야 할까? 아들을 잃은 부모님에게 ‘당신 자식은 빨갱이요!!!’라고 천인공노할 상소리를 내뱉을 것이 분명한 나머지 인간들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간다는 말인가?
다시 길 떠나는 문규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건강을 빌고 또 빈다.

 

/변영국 200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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