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어머니의 기일에 즈음하여...

한마디로... 어머니는 나를 키웠다. 누군들 어머니가 키우지 않았을까마는 아무튼 우리 어머니는 나를 키웠고, 나는 그것을 철들어서, 아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도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알았다.


아랫도리 천재

한창 연극을 할 때, 내게는 몇 가지의 별명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랫도리 천재’라는 것이었다. (오해 마시라. 그것은 정력을 기초로 하는 일탈적 성행위의 권위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중후반에 걸쳐 유행하던 것과 같은, 걸쭉한 음담의 귀재를 지칭하는 것이다.)

나의 음담은 후배 극쟁이들의 환호와 질타를 동시에 받았던 것인데, 그 중 한 녀석도 나의 음담 때문에 나와 결별한 적이 없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질타 역시 환호에 다름 아니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나는 지금도 걸쭉한 음담을 흩뿌리고 다니는 바, 어찌된 일인지 숭고하고 가지런한 보수 반동의 복마전인 우리 성당에서도 그 음담은 사람들을 자지러지게 한다. 하... 음담의 고고한 생명력이여...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걸쭉함이여...)

그리고 고백한다. 나의 모든 음담은 고스란히 우리 모친께서 생전에 구사하시던 바로 그것이었음을...


하, 고놈... 자지 한번 실하게 생겼다

나 어렸을 때 우리 엄마와 나눈 이야기 한 토막...
(당시에는 모든 아이들이 말하자면 잠지를 내놓고 다녔다)

“하, 고놈... 자지 한번 실하게 생겼다. 장차 장군이 되겠는 걸...”
“엄마. 왜 이래 창피하게...”
“야 이 빌어 처먹다 턱주가리가 뚝 떨어질 놈 이 놈아. 자지를 자지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냐?”
“아 그거 뭐 고추라든가 잠지라든가...”
“뭐? 고추? 예끼 이 잔인하기가 사천왕상 뿔몽뎅이 같은 놈 이 놈... 그럼 저 어린 것이 해마다 가을이면 자지가 떨어지고 봄마다 자지 씨앗을 심어야 한다 그 말이냐?”

어머니의 얘기들은 모두 숫제 판소리였다.
(이해하시기 바란다. 우리 어머니는 남성의 생식기가 아닌 여성의 생식기도 모두 날 이름으로 불러댄 바 있으나 방송위원회의 심의 규정을 준수(?)하고자 그 내용들은 과감히 삭제하기로 했다)


어머니의 억센 손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말만 앞세우는 분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전철 3호선이 개통된 지 얼마 안 돼서 어머니와 함께 전철을 타고 갈 때였다. 지금은 노약자 전용 좌석이 된 3인용 좌석에 둘이 앉아서 어머니하고 얘기를 나누다가 아마 내가 깜빡 존 모양이다. 난데없는 어머니의 고함 소리에 번쩍 뜬 나의 눈에, 어떤 청년 (아마 내 또래 쯤 되었을 것이다)의 아래춤을 한 손으로 단단히 부여잡고 있는 어머니의 억센 손이 보였다.

아... 괘씸하고도 가련한 그 청년은 바로 앞의 스커트를 입은 처녀에게 성추행을 시도 하다가 딴 사람도 아닌, 북간도 출신의 무시무시한 우리 엄마에게 걸린 것이다. 어머니는 예의 그 걸쭉한 음담으로 청년을 족치고 있었다.

“예이 염병을 허다가 땀도 못 내고 뒤질 놈 이 놈아. X 구녕에 땀띠가 났냐? 그 놈이 덥다고 하데? 왜 그걸 꺼내지 못해 안달이야 이 미친놈아.”
“아아아아... 아줌마... 잘못... 아아아”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들 중의 남자 분들은 그 청년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마 잘 아실 것이다)

어머니는, 한 마디로 너무 쪽팔려서 얼굴을 푹 숙이고 있는 내 옆에서 가차 없이 청년을 심판했다.

“너 같은 놈은 자지를 잘라서 자손을 막아야 한다 이 놈아. 백주 대낮에... 그래 저 처녀 허벅지가 네놈 물건이나 갖다 문지르라는 허벅지냐? 예이 늑대가 물어가다 호랭이한테 양자를 보낼 개 같은 놈... 확 잡아 떼어버릴 거다 내가 이걸...”
“아줌마.... 아아악.... 잘못... 아악”

그 때만 해도 참 세월이 좋았다. 전철의 다른 어른들이 모두 어머니를 도와 한 마디씩 하고, 웃고 하기를 몇 분이 지난 후 어머니는 마지못해 그런다는 표정으로 그 청년의 그것을 놔줬고, 청년은 낚시 바늘에서 풀려난 물고기처럼 쏜살같이, 아래 춤을 싸쥐고 다음 칸으로 사라졌다. 손을 들어 냄새를 맡던 어머니의 일갈.
“아 저 쥑일눔이 뒷물질을 얼마나 안 했길래... 어휴... 송장 썩는 내가 나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며느리

어머니는 연기도 썩 잘 하셨다. 당신 생각에 평생 돈 한 푼 안 벌고 그저 저 좋은 노릇이나 하고 살 거라 여기셨는지, 항상 막내아들 걱정만 하시던 어머니에게, 나를 믿고 시집 온 색시는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며느리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도 내 색시 카타리나는 명절날 시댁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잘 수 있는, 조선 땅에 몇 안 되는 며느리다) 그런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계실 때 우리가 곁에 같이 있으면,

“얘 지연 에미야. 네가 참 고생이 많다. 애 키우랴 돈 벌랴 얼마나 힘들까. 거기다 남편을 섬길 줄도 아니 원. 나는 참 복 받은 시어머니다. 내 눈을 감아도 네 정성을 잊지는 못할 거다.”
“어머니가 왜 돌아가세요. 그런 말씀일랑 마세요.”
“아니다. 늙으면 죽어야 하는 거야. 내가 자꾸 요즘 약한 생각이 들어. 시답잖은 남편이지만 팔자려니 하고 잘 데리고 살아라. 내 너만 믿는다.”
“어머니...”

눈물 많은 마누라는 늘 그 때 쯤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갔고 마누라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는 순간 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했다.

“예이 가평 군수 같은 날도적놈 이 놈아. (여기서 얘기하는 가평 군수는 우리 어머니 어렸을 적의 일본 사람임을 밝혀둔다. 지금의 가평 군수님은 오해 마시길.) 여자를 데려 왔으면 네 손으로 벌어 멕여야지 언제까지 빌어먹고 살 거냐? 엉? 그래 집구석에 더러 돈은 갖다 주고 그러는 거냐?”
“아 그럼. 당연하지.”
“퍽퍽퍽” (어머니가 내 머리 때리는 소리)
“정신 차려 이 놈아. 마누라가 언제까지 마누란 줄 알아? 도망가면 끝인 거야 이 놈아. 여자 마음은 이 자식아 오뉴월 보리감주야. 툭하면 변한다 이 말이야. 알았냐?”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때려. 내 나이 이제 마흔이야 마흔.”

해명 없이 돌아가신 어머니 때문에 아마 마누라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것이 고맙다

이제 우리 어머니가 어떤 분인지 대충 짐작하시리라 믿는다. 물론 우리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우리 어머니도 학교 문턱조차 가 본 적이 없었지만 그 강렬한 실천력으로 어머니는 한글을 혼자 깨우치고 산수도 독학으로 공부한 분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권위라고 생긴 것은 모조리 싫어하고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자유라는 믿음을 갖게 해 주신 분이시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너무 고맙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것이 고맙다.

시제를 지내고 큰 집에서 모두 밥을 먹을 때면 늘 남자들만 큰 상에서 먹고 여자들은 대개 부엌에서 때우는 집안 내력을 한 순간에 박살내버린 분이 우리 어머니였고 내 주제에 그런 어머니를 닮을 수 없다는 것에 늘 절망하는 나다. 그러니 그나마 그 분에게 물려받은 무엇이 있다면 고마울 밖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요

마지막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일이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지금의 대통령 각하가 누구시죠?”
“네. 박정희 대통령각하이십니다.”
“그 분은 어떤 분이예요?”
“북괴의 침략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는 분이세요.”
“우리를 잘 살게 해 주셨어요.”
“우리 모두 그 분 때문에 이렇게 풍족하게 공부하고 있어요.”
(사실 내가 다닌 수송 국민학교는 당대의 부자들이 자식을 보내는 그런 학교였다. 그러니 대부분 매우 풍족했다.)
“그러면 이번 선거에 누구를 뽑아야 하나요?”
“박정희 대통령 각하요.”
“누구를 뽑으면 안 될까요?”
“김대중이요.”

그리고 학교를 파하고 집에 온 나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학교 선생님이 그러는데 김대중은 빨갱이래. 그러니까 엄마. 김대중 찍으면 안돼. 박정희 대통령 각하밖에 없대. 그 분을 찍어 알았지?”
나는 그렇게 아프게... 그리고 그렇게 무섭게 맞아 본 기억이 없다.
왜 그러셨는지는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호되게 따귀를 맞았다. 물론 따귀도 맞고 여기저기 매 맞는 거야 당시의 일상이었지만 그 때는 달랐다. 나는 그렇게 무섭고, 마치 다른 사람 같은 엄마의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 어린놈이... 무신 정치 얘기야. 들어가 공부나 해 임마.”

그 때의 어머니 심정을 나는 이제야 안다.
어머니는, 뭔지는 모르지만 마치 신처럼 누군가를 숭상하는 모습에 지독한 염증을 느끼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국민들 마음이 어머니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야 어렴풋이 안다.

KBS 사장에 취임한 사람이 내지른 꼴 같지 않은 일성(一聲)을 접하면서 이제 서서히 죽음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정치권이 차라리 불쌍하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입을 빌어 한 마디 하고 싶다.

“아주... 천지를 모르고 지랄을 하고 있네. 니들 대가리에는 사북 개천 탄 구정물만 들어 있냐? 사람이 환장을 하면 부지깽이 달궈 똥 구녁을 쑤시는 법이다. 우리 환장하겠다. 이 미치다 쓸개 빠진 잡놈들아. 어디 갈 데 까지 가 봐라. 아주 다리 몽두라지를 부러뜨려 거동을 못하게 할 테니까. 똥 구녁 막고 다녀 이 잡놈덜아”

/변영국 2008-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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