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혁(시몬, 40)

지난 9월 16일 사단법인 <푸른평화>에서 운영하는 ‘보리피리’라는 곳에서 김병혁 시몬(40)씨를 만났다. 거기서 점심밥을 먹고 도원성당 옆 ‘공간 앞산달빛’으로 가서 한담을 나누었다. 김병혁씨는 유아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신앙을 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른바 냉담을 하고 있는 셈인데, 그 이유는 교회의 냉담함 때문이었다. 1980, 90년대에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도 대구대교구는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아니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그러한 움직임 자체를 봉쇄했다”고 말한다. 그러다보니 나름대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의 그러한 모습에 실망해서 대거 교회를 떠나게 되었는데, 김병혁씨도 비슷한 이유에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교회는 이러한 진보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조차 마련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역단위로 생산과 소비를 조직해야

그는 지금 로컬푸드운동(지역농산물직거래운동)을 하고 있다. 이른바 지역먹거리운동인데, 간단하게 말해서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일차적으로 그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것이다. 농산물을 다른 공산품과 달리 거리가 가까울수록 그리고 생산 후 소비에 이르는 시간이 빠를수록 훨씬 더 신선하고 품질이 좋다. 물 건너 수천 킬로를 거쳐 들어오기 때문에 각종 보존처리를 하고 생산자와도 연락이 안 되는 수입농산물과 비교하면 그 신뢰성은 훨씬 더 높아진다.

한편 김병혁씨가 말하는 지역먹거리운동은 “물리적인 거리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인 거리도 가깝게 하는 운동”이다. 아무리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일지라도 몇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이 된다면 실질적으로 농가와 소비자에게 그 이익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유통에 필요이상의 금액을 지불하게 되며 생산자와 소비자를 철저히 분리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거리를 가까이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물리적으로 가까운 지역단위로 생산과 소비를 조직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의 농업정책을 보면 로컬푸드와 관련된 많은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유럽의 경우 유기농이라는 딱지는 카킬같은 다국적 식량기업도 붙일 수가 있지만 로컬이라는 딱지는 지역에서만 붙일 수 있기 때문에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려는 나라의 경우 로컬푸드에 주목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교회 안의 로컬푸드 운동

교회 안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있다. 우리농 살리기 운동이나 푸른평화 같은 단체들인데, 김병혁 씨에게 교회 안의 로컬푸드 운동에 대해 물어보았다.

“교회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무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식품시장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꽤 심각합니다. 미국산 쇠고기문제가 터졌을 때 이명박 씨는 소비자가 선택하면 된다고 했지만 실제 집회현장이나 캠페인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불매하자고 하면 일반시민들의 반응은 둔갑판매하면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취약한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사회적인 신뢰를 일정부분 획득하고 있는 교회가 농업을 살리기 위한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대구의 푸른평화나 우리농의 경우에 ‘유기농산물 판매장’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다. 즉, 로컬푸드운동은 생산과 유통, 소비를 통합하고, 지역생산자와 지역소비자의 연대와 협동에 바탕을 둔 운동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농이나 푸른평화는 친환경 유기농매장이라는 코드지 로컬코드는 아직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우리농이나 푸른평화도 로컬코드를 분명히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유기농산물은 부자들 먹거리인가

한편 로컬푸드나 유기농으로 한 농산물이 비싸게 팔리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서민들은 싸게 파는 외국 농산물에 많이 몰리게 된다. 그래서 유기농이나 로컬푸드는 부자들의 먹거리라고 오해받고 있는 현실이다. 결국 김병혁 씨의 말대로 “가격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알뜰한 한국의 주부들은 유기농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격 때문에 망설이는 것이다. 그런데 김병혁 씨가 하고 있는 로컬푸드 운동은 조금 다르다. “당장 저희들도 꼭 유기농이나 친환경을 고집하지는 않거든요. 지역에서 생산한 유기농산물이든 일반 관행농산물이든 가리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그 선택은 소비자가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저는 생협이 꼭 유기농산물만 취급하지 말고 일반적인 지역농산물도 함께 취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당장은 일반농산물을 직거래 하지만 소비자와 생산자의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면서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서로간에 깊어진다면 차차 일반농산물도 친환경 또는 유기농으로 바뀔 수 있는 여지가 꽤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학교급식의 사회적 관리

먹거리와 관련해서 학교 급식이 문제가 되고 있다. 민간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식중독 문제가 생기곤 하는 것이다. 학교뿐만 아니라 회사나 복지관, 어린이집 등등이 위험지대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대개 사람들이 싼 것으로 많은 이득을 보려는 데서 오는 결과다. 대부분 식탁에 올라오는 농산물이 겉으로는 지역산이지만 거의 대부분 외국 농산물로 많은 현실이다.

이에 대해 김병혁 씨는 “먹거리의 사회공공성의 강화”를 말한다. 교육이나 의료등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들은 사회공공재로서의 성격을 가지면서 부족하나마 공교육이니 건강보험이니 하면서 정부의 정책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필수적인 요소인 먹거리는 일방적으로 시장에만 맡겨두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먹거리 식량의 문제는 대체재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막말로 핸드폰 없으면 유선전화하면 되고 자가용이 없으면 버스를 타면 되지만 식량이 없으면 그냥 굶어 죽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같이 국제 곡물가격이 수상하게 움직이고 기후이변으로 인한 환경재앙이 예고되는 상황이라면 식량자급이라는 문제는 더욱더 중요해 지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선진국의 대부분은 농업선진국이기도 하며, 대부분 100% 이상의 식량자급율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물론 일본은 예외이긴 하지만 일본 역시 지금은 식량자급율을 높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학교급식을 시장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관리해야 하며, “관과 민, 그리고 농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해서 계약재배에 의한 생산자 직거래 방식으로 바뀌어야 하고 이를 학교급식지원센터나 학교급식관리위원회 같은 기구를 설치해서 사회적으로 함께 관리하면서 실질적인 개선을 해나가야 한다”고 본다.

싼 것이 좋다

윌리엄 레이몽의 <독소>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싼 제품만 고집하며 입을 다물 것이 아니라 이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는 사람들은 왜 싼 것에만 관심이 많을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게 궁금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사실 저도 가급적이면 싼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건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경제적인 요소에 매몰되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작금의 우리사회만 보더라도 그 사람이 사기꾼이든 범죄자든 경제만 살린다고 하니깐 대통령이 되는 사회이지 않습니까? 경제를 살릴 능력도 철학도 없는 사람이 말이지요. 중학교때 사회시간에 배운 구절이 생각납니다. 경제란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는 내는 것이라는 구절이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거 완전 사깁니다, 사기. 말이 되나요.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이익이라... 여기에는 윤리니 책임이니 이런 말이 들어갈 틈도 없지요. 비록 범죄행위일지라도 최대한의 이익을 내면 되는 사회, 그게 우리나라의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런 사고방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반소비자들 역시 그런 쪽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게 독이 묻었든 비정규직이나 제삼세계의 농업노동자들의 피눈물이 묻어 있는 수입농산물이든 말이다.

지역 농산물만으로 먹거리 해결할 수 있나

김병혁 씨가 일하고 있는 대구에서 지역농산물이라면 경북농산물일 텐데, 과연 rm 지역 농산물로 먹거리 해결이 가능한지 물어 보았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도로 묻는다. 지역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1차적으로 소비하고 모지라는 것은 타 지역의 농산물을 역시 직거래로 소비하고 남는 농산물은 물론 다른 지역으로 보내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모여 사는 경우에 수도권에서는 로컬푸드라 하더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민관농이 협력해서 로컬푸드가 확산된다고 해도 대구 농산물소비를 100% 책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로컬푸드가 10%든 20%든 이뤄져서 농업과 식량을 바라보는 사회적인 관점을 바꾸자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농업을 포기하고 휴대폰이나 팔아먹자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스위스처럼 농업문제 때문에 미국과의 FTA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지혜롭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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