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생명평화 힘쓰던 시인의 한바탕 잔치
-빗질 스쳐간 사랑 위에 글쓰기

 

▲김유철 씨는 "봄비는 가늘어서 보이지 않는다"며 여린, 그러나 따뜻한 시선을 지녔다. 

<그림자 숨소리>란 포토포엠에세이가 리북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이기도 한 김유철 씨가 그동안 쓴 산문들과 사진을 엮어서 펴낸 것이다. 그는 한국천주교회의 일제강점기 친일문제를 다루면서 보여주었던 강직한 인상과 달리 부끄러움이 많은 수줍은 심성의 소유자다. 책 머릿말에서 김유철은 "봄비같은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얼굴이 부풀어올랐다"고 썼으며, 문학신인상을 받으면서 "장애인의 마음이 들었다"고 하며, <깨물지 못한 혀>란 책이 나오던 날 "그날의 부끄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그 여린 마음을 담아 낸 책이 바로 <그림자 숨소리>다. 그림자에도 숨소리가 있다니, 시인의 혜안이다. 

시 90편과 산문 20편,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들이 실려 있는 <그림자 숨소리> 출판기념회가 지난 11월 21일 오후 3시 창원 성산종합복지관에서 열렸다. 복지관 강당을 가득 메운 이 출판기념회는 마산과 창원의 지역 문인들과 그동안 김유철 씨가 동반해온 지인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김유철 씨의 시로 고승하 씨 등이 곡을 지어 박영운, 김산 등 가수들이 노래 불렀다. 

김유철 씨는 단순한 시인도 비평가도 활동가도 아니다. 그는 온몸으로 살고 노래하며 세상에 필요한 음성을 들려주었을 뿐이다. 30대에 가톨릭청년운동과 청소년교육에  몰두하면서 많은 지인들을 사귀었다. 40대 들어 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글쓰기 시작했는데, 최근에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만 2년에 걸쳐 가톨릭교회의 교계언론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해 교계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로 인한 불편함마저 감수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곧 그가 걸어온 삶의 원칙을 잘 보여준다. 

▲ 김유철 씨가 한 동료를 기분좋게 끌어안고 있다. 그건 우정이다.

 

▲김유철 씨의 시에 곡을 붙여 주었던 고승하 씨가 축하공연에 나서고 있다.

김유철 씨는 그동안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 경남도민일보 지면평가위원장,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생명평화결사 운영위원, 경남민예총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래서인지 <야생초 편지>의 저자이며 생명평화결사의 책임을 맡고 있는 황대권 씨는 그를 '작은 거인'이라 불렀다. 아마 김유철 씨의 키가 작은 탓이고, 지역문인이라는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김유철 씨는 스스로 '언론개혁, 민족화해, 생명평화'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거인'이다. 한계를 발판 삼아 도움닫기를 하는 사람이다.

출판기념회 식장에서 김유철 씨는 "내가 글쓰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무같은 친구와 꽃다운 이웃이 있어서 가능했고, 자연의 거룩한 침묵이 있어서 가능했다"면서 "우라질 세상에도 봄은 꼭 와야 한다"며 생명을 주는 날을 희망했다. 

그가 쓴가 시 가운데 '쓸다'라는 게 있다. 

빗질에 햇살이 날린다
먼 산 둥근 해 품은 푸른빛을
싸리 빗자루 온 몸 공양에
햇살이 날린다 

그대
그림자를 눕히는 받침자리는 어딘가
나는
빗질 스쳐간 사랑 위에 눕는다

결국 사랑이다

 

 

 그가 말하는 거룩한 침묵의 속살은 '사랑'인 것이다. 그 시선의 힘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는 절절한 사랑고백이 책 전편에 걸쳐 흘러넘친다.   

그래서 추천사를 쓰면서 이해인 시인은 "아프고 힘들고 서러운 이야기들조차 따뜻하고 정겨운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의 글 솜씨는 읽을 적마다 새로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고 했고, 박두규 시인은 "이 책을 곁에 두고 있으면 늘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방향을 잘 잡으라는 전언이 들릴 게 아닌가. 참 고마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꼭 한가지 유념할 것은 그가 말하는 사랑은 '땅에 글을 쓰는 행위'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는 글을 쓰기 전에 "슬픔이 깊다. 눈물자국이 퍼진다. 가슴이 여울목에서 휘돈다"고 했다. "들리는 말들이, 벌어지는 일들이, 보이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쏟아지는 고함들이 땅에 글을 쓰게 한다"고 했다. 그는, 그림자에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는 스스로 땅을 밟아가며 사람들을 만나가며 세상의 속살 깊은 곳에서 흙냄새 맡으며 글을 쓰는 것이다.  몸으로 쓰는 글이다.

25살에 예수를 만났다는 김유철 씨는 '성탄'에 즈음해서 이렇게 노래한다. 

왕이며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인줄 여겼지만
아기로, 울음 참지 못하는 철부지로 오신다.

철부지에게 복종하며
철부지 울음소리에 회개하며
기다리는 나에게
오신다
오늘 밤 소리 없이 오신다

주님, 어디 계시나이까

그의 삶에 영감을 주었던 예수는 거창한 그리스도이기 전에 철부지였다. 그래서 매사에 부족한 우리도 구원이 가능하다. 어느 누구의 도움이 없으면 목숨을 가늠할 길 없는 중생들에게 희망이 생긴다. 그가 그러했으므로 우리가 그러하더라도 마주칠 눈빛이 남아 있는 것이다. 흠결 많은 채 유약한 메시아를 김유철 씨는 오늘도 기다린다. 밤 깊은 세상에서 그를 기다린다. 맑은 눈빛 여전히 감당하는 그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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