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관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미사 중 성체를 받아모시고 있는 신자들. (기사 본문과 사진은 직접 상관없음, 사진/한상봉)

‘가’ 성당은 본당주보성인 축일에 맞추어 신자들에게 국밥을 준비했다. 본당신부는 국밥도 맛있고 깍두기도 맛있으니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다 드시고 가라고 했다. 이런 뜻 깊은 행사를 위해 본당신부는 당연히 여성구역장들과 상의했다. 내용이야 어떤 음식으로 얼마나 준비할까 하는 것이었고, 일단 그렇게 정해지자 여성구역봉사자들은 싫던 좋던 그것이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려니 하며 열심히 준비하고 당일에도 구역별, 반별로 식사 당번을 정하여 봉사했다. 그런데 본당신부의 당부에도 아랑곳없이 당일 대부분의 신자들은 점심으로 준비한 국밥을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갔다.

잔치에 앞서 미사시간이었다. 본당신부는 영성체에 앞서 마음과 몸이 깨끗하지 않은 상태로 영성체 하는 것은 독성죄에 해당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당신들이 대충대충 신앙 생활하는 거 알고 있다. 그러면 안된다. 신앙생활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는데, 프로는 아침기도, 저녁기도 삼종기도는 기본이고......’ 본당신부는 이렇게 신자들을 가르치고 협박하였다.

우리는 영성체를 하기 전에 평화의 인사를 먼저 나눈다. 이때 사람들은 엄숙함과 심각함을 벗어버리고 친밀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게 된다. 옆에 있는 사람들, 앞뒤에 있는 사람들과 목례나 눈인사를, 또는 악수와 포옹을 하기도 한다. 사실 이때가 미사 중 가장 생기 있는 순간이다. 그러나 평화의 인사가 끝나는 동시에 몇몇 신자들은 다시 죄의식으로 영성체할 것인지를 주저했다. ‘함부로 영성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독성죄라는데...... 나같은 사람은 조금전에 말한 미사 빠지고 대충대충 미사드리는 그런 사람에 속하는 거 아닌가...... ’ 하느님은 죄졌다고 생각하는 마음보다 영성체하는 마음을 더 좋아하신다고, 죄의식보다 은총이 더 크다고 말하기보다는 잔칫상에 앉을 자격이 되는지 먼저 살펴보라고 윽박지른 탓이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실컷 웃으며 일치와 형제애를 나누던 사랑의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죄의식에서 왔든 사람들이 보고 싶어서 왔든 미사에 온 사람보고 밥을 줄 수 없다고 한다. ‘이곳은 죄지은 내가 그래도 숨을 수 있고, 또 은밀히 내 죄를 고백하고 벗어던질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넌 아직 멀었으니 더 깨끗히 하고 오라’며 내치는 셈이다. 그 때문이었을까, 이 날은 영성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았다. 성체를 모시고자 하는 마음이 상처받고, 미사 중 영성체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주님의 최후의 만찬을 기억하는 자리에서 처절하게 소외받은 채 다시 무거운 마음으로 성전 밖으로 쫓겨난 사람들 같았다. 이들이 과연 무슨 기분으로 국밥을 뜰 수 있겠는가. 제 아무리 맛있는 국밥도 수라상도 그들의 발길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본당이 마련한 잔치에서 밥을 먹은 사람들은 사목회 사람들과 여성구역 봉사자들, 철부지 어린이들, 그리고 성당의 이런저런 단체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결국 잔치에 초대한 사람만 있고 초대받아 온 사람은 별로 없는, 흔한 말로 그들만을 위한 잔치가 되어버렸다. 본당신부를 비롯하여 그들은 잔치 준비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잔치에 올 사람들을 배려하는 데는 마음을 쏟지 못했다.

어떤 신자는 본당에서 활동하지 않거나 또는 활동하는 사람 한 명이라도 알지 못하면 그런 자리에서 혼자 밥 먹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괜히 끼어드는 것 같고, 마치 있어서는 안 될 자리 같아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활동하지 않으면 어느 자리에도 끼기 힘든 곳, 말로는 사랑이며 친교를 말하지만 미사 마치고 돌아서면 싸늘한 곳, 비록 식탁은 차려졌지만 그 식탁 앞에 앉기에는 너무 불편한 곳, 그게 본당이라고 했다. 결국 허울은 ‘본당의 날’, 내용은 ‘본당봉사자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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