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인수 칼럼]

 

▲ 한 교우에게 소주 한 잔 권하는 호인수 신부(사진/한상봉)

중단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고 나서 몇몇 가까운 동무들로부터 내 글이 매번 너무 무겁고 비판적인 내용으로 일관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늘은 좀 가볍고 재밌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마음처럼 잘 될지 모르겠다.

벌써 몇 달 전, 동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이것 한번 들어보라며 틀어주는 노래, 많이 들어 귀에 익은 목소리, 그러나 듣기는 처음인 노래, 조영남의 ‘은퇴의 노래’였다. 내가 그 노래를 듣고 아주 좋아하니까 며칠 뒤에 그 친구는 아예 그 cd를 내게 선물로 가져다주었다. 덕분에 조영남이 직접 노랫말을 쓰고 곡을 붙인 ‘은퇴의 노래’ 가사 전문을 여기 옮겨 적을 수 있게 되었다.

제발 나같이 오래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몸은 비록 최희준 선배지만 마음만은 HOT랍니다 
제발 나같이 오래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다른 직업엔 퇴직금도 있지만 가수한텐 퇴직금도 없답니다
제발 나같이 불행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평생에 가수왕 한번도 못해보고 가요 톱텐 한번도 못꼈답니다
제발 나같이 불행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히트곡 한곡 없이 30년을 버텼으니 오죽허면 여복이나 했겠습니까
제발 나같이 가난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어린 딸자식 학자금도 내야하고 아들대학 등록금도 내야 합니다
제발 나같이 가난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두번 이혼 위자료를 지불하는 바람에 두번이나 파산당한 사람입니다
제발 나같이 불쌍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정작 은퇴할 사람은 저 위에 많은데 왜 나만 물러나라 하시나요
제발 나같이 불쌍한 가수한텐 은퇴란 말은 마세요
왜 나만 은퇴를 걱정해야 되나요 그건 댁의 사정도 그럴 겁니다
그건 남의 얘기가 아닐 겁니다 제 앞에선 은퇴 얘긴 허질 마세요

누군가가 당신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젊은 애처럼 무대에서 천방지축 뛰느냐고, 그만 은퇴하고 한 걸음 물러나 앉을 때가 안됐냐고 퉁을 놓은 모양이다. 회사원도 공무원도 아닌 전문직업인 가수도 은퇴의 압력을 받나? 누군가를 위해선 할 수 없이 내가 ‘나가주어야’ 하나? 노래 가사를 수록한 cd의 첨부 인쇄물 뒷면에는 “이 앨범은 나의 <초벌 유언장>이다. 2001. 4. 25. 조영남”이라는 친필 서명날인이 있다. 지금부터 8년 전에 유언하는 심정으로 짓고 부른 노래다. 집에서도 몇 번을 들었다. 들을 때마다 곡은 경쾌한데 슬픔과 한숨이 짙게 배어있음을 느낀다. 문득 작년에 내가 썼던 “혼자 사는 연습”이란 졸고가 생각난다. 거기에 나는 이렇게 썼었다.

“은퇴는 교구장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할 수 만 있다면 나는 온 몸의 기운이 쇠잔하여 더 이상 내 몸을 내 의지대로 가누지 못할 때까지 안간힘으로 버틸 생각은 없다. 사전에 연습한 것을 실전에 써먹어볼 시간쯤은 넉넉히 남겨두고 하고 싶다.”

“은퇴란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은 이제 그만 접고,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만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내가 내 몸에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조금이라도 팔팔할 때, 짐스러운 의무감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여유작작하게 말하기 7년 전에 이미 조영남은 산전수전 다 겪은 자신의 처지를 조목조목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대단히 절박한 심정으로 자기 앞에서 은퇴란 말은 아예 꺼내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아차! 우리 주변에 크고 작은 서글픈 조영남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는 깜빡 잊고 있었구나. 갑자기 조영남은 큰 어른 같은데 나는 한없이 작은 애기 같다. 나의 은퇴 운운은 이 팍팍한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철부지의 사치스럽고 낭만적인 말장난이었다. 역시 지금 한국사회에서 나 같은 천주교회의 사제는 배부른 소리나 퉁퉁 해대는 부르주아지다.

*생각 같아서는 조영남의 '은퇴의 노래'를 여기에 올리고 싶지만, 저작권 문제로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독자들에게 한번쯤 이 노래를 들어볼 것을 권해 본다 -편집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