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 소장 임영인 신부(성공회) 강연



근대에 들어서면서 신앙이 그 합리성에 대하여 질문을 받게 되었다면, 현대에 들어서는 인문학이 그 실용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받게 되면서 자리가 좁아 졌다. 인문학의 기초가 되는 대학이 산학연계와 같이 기술교육의 장으로 변하면서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존재의 위기로까지 이야기되는 인문학과 신앙, 만약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영역이 만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노숙인들을 위한 인문학 과정: ‘성 프란시스 대학’

지난 13일 인권실천시민연대 교육장에서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이하 다시서기) 소장인 임영인 신부(성공회)의 강연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다시서기는 1998년 서울시에서 노숙인 사업에 대한 총괄을 위탁받게 되면서 처음 문을 열었다. 임 소장은 2005년 1월에 이 단체의 소장으로 부임하게 되어 그해 9월 ‘성 프란시스 대학’을 설립한다. ‘성 프란시스 대학’은 노숙인의 재활을 위한 인문학 과정이다.]

‘성 프란시스 대학’은 미국의 얼 쇼리스(Earl Shorris)라는 철학자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본 따서 설립되었다. 클레멘트(Clemente) 과정이라고 부르는 이 프로그램은, 노숙자, 재소자, 성매매피해여성, 빈민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고 이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이 과정은 현재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5개 나라에서 53개 코스가 운영되고 있다. 강연의 1부는 클레멘트 과정에 관한 영상(KBS 수요기획 "가난한 이들의 철학자 얼 쇼리스")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얼 쇼리스는 빈곤에 관한 책을 쓰기 위해서 여러 곳을 다니다가, 한 감옥에서 여성 재소자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그는 "당신은 왜 가난한가요?"라고 물었는데, 그녀가 "우리는 도서관, 극장, 공연장이 없습니다. 도시 중심가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이 하나도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그가 놀라서 "인문학이 없다는 이야기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웃으면서 "그렇습니다."라고 끄덕였다. 그가 놀랐던 것은, 빈곤의 이유로 '빵이 없음'을 이야기하지 않고 '인문학이 없음'을 언급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클레멘트 과정이다. 영상은 지금 진행되는 과정의 한 강의실 풍경을 비추어 주었다. 도시 빈민들을 위주로 구성된 과정은 시를 창작하고, 또 낭송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절하게 무너진 삶을 경험했었기에 눈물까지 흘리며 시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소크라테스를 토론하고, 존재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면서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고 있었다.

영상은 경기문화재단이 만들어서 KBS에서 방영을 한 것이다. ‘성 프란시스 대학’을 설립하기 전에, 임 소장은 노동, 빈민사목을 하면서 가지게 된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경기문화재단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가 고민을 이야기하자 경기문화재단에서 이 영상을 보여주고, 얼 쇼리스가 쓴 <희망의 인문학>을 주었다. 그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던 그 책을 어렵게 해석하면서 읽다가 보니 해결점이 보였다”고 회상했다.

자존감 회복의 중요성

인문학 과정을 설립하기 전부터 임 소장은 10년간을 노동, 빈민현장에서 활동했다. 그는 누구나 인간적인 삶을 살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로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한계를 많이 느꼈다. 길거리에 내몰린 과거 동료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통해서 임금 상승이 되자 그것에 머무르는 노동자들이나, 소위 자활사업을 통해서 얻은 이익을 더 어려운 이들과 함께 나누자는 제안에 반색하는 빈민들을 보면서, 그는 이해관계만이 남았다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이들에게 먹는 문제, 자는 문제, 입는 문제, 같은 것만 해결해주는 것으로 문제가 다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더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은 자존감을 회복하는 문제였다.

그는 “만약 자존감이 회복되면, 밥 두 공기 먹던 사람이 한 공기만 먹어도 해결됩니다. 그런데 자존감이 상실된 사람들은 더 가져야만 하기 때문에 두 공기는 꼭 먹어야 하더군요. 여기에서 이해관계에 대한 집착이 나옵니다.”라고 자존감의 필요를 강조하였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 신앙과 인문학

그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신앙생활과 인문학, 두 가지가 있다고 제시했다. 이 둘은 ‘성찰’이라는 측면에서 본질은 같다. 그런데 노숙인들에게 신앙생활 하라고 하면 제 정신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당장에 배가 고픈 상황에서 신앙은 사치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그는 “노숙 쪽에서 선교라는 이름으로 신앙적인 면과 밥을 거래하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건 밀가루 신앙에 지나지 않게 되요.”라고 비판했다. 신앙생활을 강조하면 그렇게 비춰지는 것 같아 부담이 되었다고 했다.

본질은 같지만 접근방식이 다른 것을 고민하다가 인문학으로 수렴되었다. 인문학이 지닌 성찰의 측면을 뒤집으면 신앙의 성찰과 맞닿는다. 하지만 신앙과 인문학 모두 성찰이라는 내용은 없이 결실만 따먹으려는 태도가 만연해서 학문의 위기, 신앙의 위기로 이어졌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고민과 동떨어져 잡다한 학문 나열, 흥미 위주의 이야기들만 남은 인문학은 본질적인 것이 빠진 ‘지적 유희’가 되어버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임 소장의 고민과 클레멘트 과정의 정신이 만나서 ‘성 프란시스 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과연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 효과가 있습니까?

인문학 과정을 진행하면서 “효과가 있느냐?”, “노숙인들이 바뀌느냐?”와 같은 질문을 자주 접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질문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하게 해준 일화를 들려주었다.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노숙인인데, 밥도 안 되는 허공의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 때문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있었다. 근데 그 사람은 과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신부님. 밥이 나오는 일도 아니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그러려고 하면 이상하게 또 하고 싶어요.”

이 사람은 열심히 나오더니 한 두어 달 뒤쯤 또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 이 사람은 이번에는 전과 다른 이유로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부를 하면서 제 속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과거가 들여다보이는데 그래서 미치겠더라고요. 제가 왜 그리 모자라게 살았을까 후회가 되요. 그런데 못 때려 치겠어요. 왠지 이걸 때려 치면 마지막 희망 하나가 사라질 것 같은 걱정이 들어요.”

이 사람은 졸업한 이후에 택시운전기사로 취직을 했다. 그 이후에도 센터 앞에 일주일에 세 번을 강의를 들으러 왔다. 사납금을 채우려면 운전만 해도 바쁜데 이 사람은 인문학 공부는 꼭 하고 싶다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참가했다.

임 소장은 노숙인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다면서,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1년 만에 크게 뭔가 바뀌기를 바란다면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노숙인들처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지 못한 이들에게서는 변화가 더 쉽다고 했다.

“대신 하나하나 존중하는 방식으로 다가갔어요. 강의실 배치부터 여러모로 준비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대접받을만한 사람들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것이 효과가 있었나 봐요.”

그는 ‘내가 이렇게 배려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내가 다른 사람들도 배려하고 살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게 된 이들 덕분에,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이 필요하고 효과도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한다. 여기에, 같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통 능력도 인문학 과정의 중요한 목표라고 덧붙였다. ‘나’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세계관처럼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자존감의 회복이다. 단순한 지식나열과 인문학을 통한 자존감의 차이는 여기에서 나온다.

“당신도 변하던가요?”


인문학 과정에는 “효과가 있던가요?”같은 질문에 대한 중요한 대답이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사회는 노숙인들에 대해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 굶지 않고 병들지만 않도록 사회가 보장하면 그만이라는 식으로 생각한다. 인문학 과정은 이 사회에 대한 메시지이다. 사람은 단지 먹고, 자고, 입고,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고 싶은 욕구, 삶을 좀 더 풍부하게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 노숙인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사회가 언제까지 그렇게만 이들을 대할 것인가, 우리 사회에 묻고 싶다. 그들이 변하던가요, 라고만 묻는 이들에게 ‘당신도 변하던가요?’라고 묻고 싶다.” 

/ 백승덕 2008-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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