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사진출처: http://cafe.daum.net/jawolfising

어렸을 때 꽤 긴 세월을 공주군 의당 면, 그리고 공주 읍 (지금은 공주시가 됐지만) 등지, 말하자면 금강 줄기를 벗하여 산 적이 있는 나는 낚시질, 투망질, 어항 놓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좋아했었다.

떨림으로 낚시하던 그때 그 시절

찌가 벌떡 올라서는 모습을 보는 것이나, 낚싯대를 당겼을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물고기의 떨림을 느껴보는 것이나, 혹은 투망질 한 그물을 끌어 올리면서 거기에 걸려 있는 물고기를 확인하는 일들이 짜릿하도록 좋았고 그 무엇보다 강가에 솥단지를 걸어놓고 고추장 된장 풀어 호박에 고추 넣고 끓인 매운탕에 수제비를 뜯어 던지던 기억이야 말로 압권이었다. 다 끓인 매운탕을 그저 숟갈 하나씩 들고 둘러서서 퍼 먹던 기억이 떠오르면 지금도 침이 고이고 미치도록 금강변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지금의 공주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금강이 완전 똥물이 되어 산업사회의 각종 오물을 도도히 실어 나르고 있다) 각설하고......

한 칠팔년 전 우리 부부는 아주 친한 다른 두 부부와 함께 강원도 평창의 이름이 꽤 길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어느 펜션으로 놀러 갔었다. 나는 그 날 고기를 잡겠다고 선언했고 견지낚시 (강이나 개울 가운데 서서 작은 얼레에 줄을 감아 파리 모양의 털이 달린 바늘로 작은 고기를 잡는 낚싯대다) 하나를 마련하여 개울의 적절한 곳을 골라 낚시를 시작했다. 전 날 비가 왔기 때문에 개울은 그런대로 수량이 풍부했고 유속도 적절히 빨라서 견지낚시 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먼저 산란철이 되면 옆구리에 무지개 빛을 띠는 예쁜 고기, 피라미 수컷이 올라왔다. 크기도 중치를 넘어 길이가 15센티는 충분히 되는 놈이었고 그 놈이 들어간 어죽의 맛을 알고 있는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고 놈을 꾸미에 꿰어 걸었다. (도시 출신 조사(釣士)들이야 잡은 고기를 살림망에 집어넣겠지만 제대로 된 우리 촌사람들은 칡넝쿨을 떼어 고기의 아가미를 꿰어 허리춤에 차는 것이 제 격식인 법이다) 그렇게 몇 마리의 피라미와 갈견이(일명 갈갈이라고도 한다) 누치를 잡아 걸고 있는데 어느 틈엔가 마누라가 옆에 와서 서 있었다. 나는 꽤 풍성한 나의 조과를 들어 보이며 자랑했다.

“음무핫핫핫... 이걸 보라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어탕을 끓일 수 있어. 당신 서방 낚시 정말 잘 하지 않아?”
“고기들 죽기 전에 당장 놔줘.”
“엥? 그게 무슨 다 된 어죽에 쉬야하는 소리야? 오늘 저녁에 여기서 천렵하기로 했잖아. 사람들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
“나는 정말로 이렇게 고기를 잡을 줄은 몰랐어.”
“아 이 사람아 그럼 정말로 잡지 가짜로 잡아, 고기를?”
“당장 놔줘.”
“왜 이러는 거야, 당신. 어떻게 잡은 고긴데.”

미처 손 써 볼 기회도 없이 마누라는 고기들을 잡아채서 하나하나 빼 도로 놔줬다. “에구 불쌍한 것들. 엄마 말씀 듣지 않고 싸돌아다니니까 이렇게 죽을 뻔 했잖아. 다시는 낚시 바늘 같은 건 물지 말아라.” 어쩌구 해 가면서 고기를 놔준 마누라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절규했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고기를 놔줘. 혼자서 한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게 잡은 건데. 당신이 부처님이야? 당신 생선 좋아하잖아. 그렇게 불쌍하면 생선을 먹지 말아야지. 이게 무슨 행패야.”


토마스 형,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며

내 절규가 끝날 때 쯤 마누라는 이미 개울 건너 저쪽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나는 하릴 없이 낚시대를 걷어 그 뒤를 따랐다. 이윽고 마누라의 행패를 낱낱이 까발리겠다 다짐하면서 일행이 모여 있는 방의 문을 여는 순간 이상하게도 왁자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토마스 형.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며. 내 그럴 줄 알았지. 무슨 고기를 잡아.”
“뭐? 아니 그게 아니고...”
“카타리나 형수가 다 얘기 했어. 한 마리도 못 잡고 있더라고. 그러게 왜 그런 고생을 해. 민물고기 매운탕이야 사 먹으면 되지.”
“아니 이 사람아 그게 아니고......”

아무리 그게 아니고 나는 고기를 잡았노라고 이야기를 해도 나는 결국 ‘뻥쟁이 낚시꾼’으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그 이후로도 그 일행을 만날 때면 어김없이 당시 그 매우 억울한 과거로 인한 ‘모욕’을 감내해야 했다. (어쩌겠는가. 나는 마누라랑 싸워 가면서까지 나의 정당함을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기회가 왔다. 무슨 맘을 먹었는지 딸네미가 갑자기 아빠 낚시 하는 거 보고 싶다고 한데다가 마누라도 딱히 반대하지 않아서 형님 집 근처의 진천 초평 낚시터로 좌대 낚시를 떠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에는 내 사랑하는 딸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고기가 안 잡히면 들어가서라도 잡아와야 한다.’
하지만 밤이 되어 케미라이트를 꽂은 찌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밤낚시를 공치는 것을 보면서 마누라가 시비를 걸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어. 무슨 고기를 잡아 잡기는.”
“아 이 사람아. 그 때 평창에서 내가 잡았던 고기 기억 안나?”
“어쩌다 눈 먼 고기가 한두 마리 걸린 거지 그게 실력일까, 아무리.”

아 억울했다. 진정 억울했다. 나는 밤을 밝히고 낚시에 몰입했다. 그리고는 새벽녘... 드디어 입질이 왔고 그럴 듯한 붕어들을 걸어내기 시작했다. 감격스럽고 또 감격스러웠다. 기쁨에 겨워 울고 싶었다. ‘이 놈의 여편네 일어나기만 해 봐라. 그렇잖아도 납작한 코를 더욱 납작하게 해 주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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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은 방생

미친 듯이 고기를 걸어내고 있는데 인기척이 들렸다.

“와 아빠 고기 잡네.”
“그렇다. 딸아. 이 아빠, 네 엄마를 향한 정의의 펀치를 이렇게 다듬고 있다. 보아라. 이것이야말로 중국산 떡붕어가 아닌 조선의 참붕어니라.”
“와 신기하다.”

잠시 후...

“그런데 아빠. 웬만하면 엄마 일어나기 전에 놔 주지 그래?”

허거거걱......

“뭐라구? 놔 주라구, 왜?”
“나는 괜찮지만 알잖아 아빠. 엄마는 아마 저 붕어 눈알을 보면 울지도 몰라. 공연히 평지풍파 일으키지 말고 놔줘.”
“네 엄마... 그거... 이중인격이다. 생선회나 초밥은 미친 듯이 좋아하면서 유독 왜 내가 잡은 고기만 그리 연민지정으로 바라보냐 이거다.”
“맞아 아빠. 엄마는 좀 그래. 그러니까 놔줘.”
“딸아. 저 붕어를 잡기 위해 아빠는 밤을 샜단다.”
“알아, 아빠. 수고했어. 그러니까 이제 놔줘.”

아... 나는 또 원치 않는 방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일어난 마누라에게 딸네미가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아빠가 고기 많이 잡았는데 내가 놔주라고 해서 다 놔줬어.”
“한 마리도 못 잡아 놓고 애한테 거짓말까지 시키는구려. 쯧쯧...”
“정말이야 엄마. 아빠 많이 잡았어.”
“그래그래.. 많이 잡았다고 치자. 아무튼 이제 슬슬 갈 준비 해야지.”

좌대 주인의 배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그저 담배나 피워 문 나는 이제 다시는 낚시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이번 휴가 때,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는 후배 부부 덕택에 숙박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청평의 모 콘도에 놀러간 나의 눈에 콘도 바로 곁을 흐르는 개울이 보였다. 동시에 그 개울 속을 유영하는 민물고기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매점에서는 견지 낚시대를 3000원 정도에 팔고 있었고 나는 물놀이 하는 일행 몰래 빠져나와 한적한 샛강에서 바야흐로 견지낚시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이 행복, 이 환희, 이 손 맛...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공기와 물살...

꾸미에는 피라미와 끄리가 매달리고 나는 모닥불을 피워 요 놈들을 구워낼 생각으로 행복했다. 미리 소금까지 준비한 터라 마음은 마냥 넉넉했다. ‘설마 구워 놓은 생선을 놔주라고는 못하겠지... 키득키득...’ 이제 한두 마리만 더 잡으면 모닥불을 피워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라, 결국은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저 언덕 너머로 마누라의 얼굴이 보이더니 이내 이쪽을 향해 잰 걸음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토마스! 고기 많이 잡았어?”
“아니야 아니야. 오지 마.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았어. 그리고 여기는 물살이 세서 위험해. 나 조금 있다가 갈 거야.”
“괜찮아. 저기 얕은 데 있으니까 건너가면 돼. 고기 많이 잡았어?”
“아니야 한 마리도 못 잡았다니까. 피라미도 못 잡고 끄리도 못 잡았어. 에이 여기 뭐 이래. 고기가 한 마리도 없잖아. 당신 여기 올 필요 없어. 나 고기 못 잡았단 말이야.”

아... 내 고기....
나는 또 방생을 하고 말았다. 생명을 사랑하는 내 마누라 덕분에 내게 잡힌 고기, 너희들은 지상에서 가장 안전하다. 암 그렇고 말고.

 

/변영국 2008-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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