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영국의 세상만사 인생사]

물론 더욱 더 인간적인 분위기가 풍기고, 서민스럽고, 나아가 이웃끼리 전혀 흉허물 없이 지내고 어디 외출하면서 자물쇠도 채우지 않는 동네가 많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나, 공해가 찌뿌드드하게 내리 누르는 공단 옆의 20여 평짜리 꾀죄죄한 아파트에 사는 나로서는 그런 것까지 바랄 수 없는 노릇이고 보면 우리 동네는 그런대로 살만 하다.

왜 살만 하냐 하면... 뭐랄까... 나는 이 동네에서 관용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나’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천하의 몹쓸 인간을 개조한 것은 우선 우리 마누라요, 그 다음이 우리 동네다. (물론 우리 성당도 포함시켜야 하겠지만 워낙 완고한 보수 우익의 집결지가 바로 우리 성당인 고로 집어치우련다. 궁금한 것 하나, 다른 성당도 그런가?)
아무튼 각설하고...


생물갈치 타령 때문에

뭐 대단한 글을 쓴다고,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마치 담배 하나 꼬나문 김수영이나 된 것처럼 ‘날카로움’을 빙자한 주접을 떨곤 하던 차에 ‘목포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생물갈치’를 ‘스무 마리 한 상자에 오천원’에 판다는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때마침 희곡의 마무리가 잘 안 돼 담배를 두 갑째 뜯고 있었고 당연히 그 ‘생물갈치 장사’의 확성기 소리가 내 귀를 예리하게 후벼 파고 있었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그저 한 5분 떠들고 나면 지나가곤 했는데 이 양반은 날을 잡았는지 20분이 지나도록 ‘생물갈치’타령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확성기가 떠드는 곳은 불행하게도 내가 컴퓨터를 치고 있는 바로 앞이었다. 뚜껑이 열리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경찰을 부르려고 핸드폰을 들었다. 허나 다음 순간, 80년대 이후 지금처럼 경찰을 증오한 적이 없는데 그 사악한 동포들에게 도움을 청하느니 내 직접 해결하리라 마음먹고 반바지에 런닝을 휘날리며 뛰어 내려갔다.

“똑똑똑...” (갈치 장사가 앉아 있는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왜 그러십니까?”
“벌써 이십분 째 여기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계십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당신 이거 중국산이지?

뭐 어쨌냐니, 나는 지금 죽을 지경인데... 다음 순간 극도로 화가 난 나는 다음과 같이 소리쳤다.
“당신 이거 중국산이지? 이양반아. 어떻게 목포 생물 갈치가 한 마리에 250원이라는 거야. 엉?”
“이거 뭐하는 인간이 대낮에 난닝구 차림으로 와서 행패야 행패가.”
“행패? 당신 확성기 소리가 행패지 내가 무슨 행패를 부렸다는 거야. 당장 확성기 끄던지 여기서 꺼져. 그렇지 않으면 중국산 냉동 갈치 급 해동해서 목포 산으로 팔아먹는다고 주안에 있는 식약청에 정식으로 고발 접수할 테니까. 차 넘버 다 외웠어.”

신기하게도 갈치 장사는 금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그 때까지 옆에서 그 사단을 다 보고 있던 우리 아파트 302동 할머니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거 뭐 그렇게 냉정하게 쫓아버리누? 한 상자 사려고 그랬더만...”
“할머니 저거 믿을 수 없는 갈치예요. 보세요. 금방 줄행랑을 놓잖아요.”
“믿을 수 있는 갈치를 어떻게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사먹어? 저거 먹는다고 죽지는 않아. 그건 그렇고 젊은이는 뭐하는 양반인데 그렇게 민감한 거야?”

왠지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네 어쩌네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거짓말을 했다.

“그저 뭐랄까...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직업입니다.”
“그랬구먼. 에휴... 아무튼 젊은 사람들이 고생이야. 살기가 팍팍해...”

고단한 민중의 삶에 ‘거짓말로’ 동참한 나는 두 번 접은 오천원짜리를 쥐고 힘겹게 걸어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마치 성자의 그것인 양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뒷모습을 마치 성자의 그것인 양

아, 세월의 고단함을 딛고 내게 관용을 가르치는 인생의 선배님. 죄송합니다. 뭣도 아닌 룸펜 주제에 두 어깨로 세상을 지탱하는 갈치 장사를 모욕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한 우리 동네에는 우리 아파트와 그 역사를 같이하는, 말하자면 18년 된 의원이 하나 있는데 이 의원이 똑 우리 동네를 닮았다. 몇 년 전 내가 심하지는 않지만 고혈압이라서 약을 먹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던 날이었다.

“약을 먹어야 되겠습니다.”
“술도 끊어야 되나요?”
“그러시면 좋지요. 그런데 끊을 수 있으십니까?”
“담배는요?”
“그거... 정말 끊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요. 끊지 않을 작정입니다.”
“뭐 그럼 알아서 하십시오. 허나 끊으셔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럼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 대단하십니다.”
“운동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금상첨화지요.”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나는 그 편안함 덕택에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정상이다. 물론 담배는 그 전에 비해 삼분의 일 정도로 줄였다. 모두들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나발을 부는 통에 심술이 나서 그렇지 마음만 먹으면 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두 다 그 널널하고 편안한 의사양반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 바로 옆에는 돼지 부속 집도 있다. 아주 오랜만에 일행을 데리고 그 곳에 갔던 날, 10만원이 나온 계산을 술 취한 김에 내가 하겠다고 우기고 카운터로 갔을 때의 선문답이다.

“작가님. (그 집 사장은 나를 이렇게 부른다. 참 술 먹고 별 얘기를 다 했나보다) 거 얼마나 버신다고 그 계산을 다 하십니까? 반 만 내십시오.”
“아니 이 양반이. 사람을 뭘로 보고...”
“술이야 제가 대접할 수도 있고요.”
“나는 자주 오지도 않았소.”
“금액의 반이 술값이거든요. 괜찮습니다.”
“나는 십만원을 내겠소.”
“저는 오만원만 받겠습니다.”

아마도 계산은 우리 색시가 한 모양이지만 그 대화는 다 기억이 난다.

장마철, 비도 오고...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아파트 마당이 마치 지중해 휴양지 어느 콘도의 안마당 같다.

/변영국 2008-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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